많은 사람이 길일(吉日) 즉 좋은 날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날에 결혼하고 싶고 손 없는 좋은 날에 이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결혼식은 윤달이 들면 그달은 피합니다. 윤달이란 날짜상의 계절과 실제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게 하는 달입니다. 일 년으로 환산하면 양력 365일이 음력 354일보다 11일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메꾸기 위해 양력은 4년에 한 번씩 2월 29일로 하고 음력은 2년 내지 3년에 한 번 윤달을 둡니다. 올해는 윤달이 9월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윤달엔 묘지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만들어 두기엔 좋으나 결혼식은 피하는(?) 달입니다. 그래서 윤달이 들면 그달은 웨딩홀 대관료가 쌉니다.
결혼식을 왜 피하는 것 같습니까? 윤달은 원래 없는 달을 끼워 넣었으므로 조상들의 덕을 못 받는다. 결혼하면 잘 못 산다는 등의 말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2014년 올해 윤달기간은 10월 24일~11월 21일까지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성경은 따로 어느 달, 어느 날이 좋다고 말하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단 우리가 말씀의 인도함을 받을 때 좋은 날이 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에 의해 기독교의 박해가 시작될 무렵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아가는 성도들이 박해를 잘 극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주로 살아가면서 하여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지침입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시편 34:12~16절을 인용하여 권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특별히 좋은 날이 있음을 안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합니다. 장래가 암담하기를 바라는 자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좋은 날 보기를 원합니다.」로 정하고 강론하겠습니다.
1. 좋은 날은 좋은 말에서 옵니다. |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에 대한 지침이 이렇게 나옵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사람의 인생은 놀랍게도 그 말하는 대로 잘 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면 정말 안 될 것이고, 죽겠다, 죽겠다 하면 정말 죽을 것이고, 망한다, 망한다고 하면 정말 망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떠난 말은 굉장한 힘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겨냥한 곳에 그대로 꽂히기 때문에 악한 말과 거짓의 술수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좋은 날이 바로 진실한 말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혀가 문제입니까? 입이 문제입니까? 우리의 혀와 입은 머리가 통제하는 곳으로서 실상은 인격의 문제요, 진실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한때 만났던 경제 위기도 정직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지 돈이 없어서, 기술력이 부족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진실과 정직이 실종됨으로 왔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에 의하면 우리의 혀는 이상한 샘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셈이 한 곳에서 단물과 쓴 물을 동시에 내놓지 못한 데 비해 사람은 한 입에서 복과 저주를 막 내놓기 때문입니다.
약 0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셈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미국 테네시주 작은 마을에 벤 후퍼(Ben Hooper)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체구가 작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입니다. 친구들은 놀리며 멸시를 하였는데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젊은 목사님이 교회에 부임해 오셨습니다.
설교에 많은 사람이 힘을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후퍼도 늦게 예배당에 들어가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끝나면 살짝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몇 주가 지난 어느 주일에 후퍼가 설교의 감동에 젖어 있는 사이에 예배가 끝이 났습니다. 할 수 없이 교인들 틈에 섞여 나오면서 목사님과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이 후퍼를 보고 말하기를, 누구 아들이더라?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환한 얼굴로 말합니다.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알겠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그러자 당황하며 빠져나가는 후퍼의 등을 향해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월이 흘러 벤 후퍼는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목사님을 만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그 날이 바로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입니다. 그는 주지사에 두 번씩이나 당선되는 좋은 날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한번 씨를 뿌린 후 다른 일을 해도 그 씨는 계속 자라는 것처럼, 오늘 내가 한마디 해 놓은 후에는 나는 몰라도 그 말이 씨가 되어 점점 자랍니다.
말은 공동체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장 주위 분들에게 속삭이듯 따뜻하게 해 주는 말을 해 봅시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참 잘했어. 기도할게. 넌 잘될 거야, 네가 참 좋아. 오늘 곁에 있는 분이 나로 인해 행복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을 보게 해 주십니다.
반면 우리가 좋은 날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입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들으면 단번에 생각을 알 수 있고, 사는 방식까지도 짐작합니다.
이제부터 어떤 말을 하며 살겠습니까? 모여서 무슨 말을 하렵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사람은 사건을 이야기하나,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날 보기를 이야기합니다.
2. 좋은 날은 좋은 관계에서 옵니다. |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화평을 구하는 말은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화평을 구하는 자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평을 원한다고 모두 화평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11절 말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화평을 넘어서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물론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비난도 있고, 손해도 있습니다. 고통도 있고, 아픔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들을 안고 현장에 들어가서 화평의 카펫을 까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불행의 원인을 재물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화려하게 꾸미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더 수입이 적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남들보다 더 나은 지위를 얻고, 남들보다 더 비싼 명품으로 치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허무함을 맛보는 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악에서 떠나 화평을 구하는 자가 좋은 날을 볼 것이라고. 좋은 날은 소유가 아니라 좋은 관계에서 옵니다. 좋은 관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김삼일 가족의 이웃입니다.
원래 이웃이라는 말은 이와 웃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라는 말은 가까이 있다는 뜻이고 웃이라는 말은 위라는 뜻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윗사람으로 높이는 배려가 좋은 관계를 만듭니다. 여러분은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요.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에 우선순위를 둡시다. 혹 나와 친밀한 사람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복을 비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마 05:23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거지는 아브라함 품에 즉 천국으로, 부자는 지옥(음부)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중의 하나가 나사로라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상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들에 대한 배려를 독려하십니다.
그런데도 부자는 자기 집 앞의 거지에게 그런 배려를 외면하였습니다. 집 앞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라. 이런 식으로 대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웃사촌이란 말을 합니다. 그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까운 이웃과 친구와 동료들 다 귀한 분들 아닙니까?
이분들과 좋은 관계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풀어가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섭섭함을 안고 살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면 이때는 당연히 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는 말은 노력하고 추구해서 화평을 만들라는 의미로 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좋은 날을 불러오는 열쇠가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세계사의 이야기 한 토막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두 나라가 어찌나 심하게 싸웠던지 더 싸우다간 두 나라가 함께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 하나가 중간에 나서서 먼저 한쪽 나라의 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비유해서 말하면 왕은 보름달 같고 저쪽 나라는 초승달 같은데 굳이 큰 나라가 조그만 나라를 치려고 합니까? 하자 왕이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러면 그만두지, 뭐 까짓것 하면서 전쟁을 그만두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시 반대쪽에 오니 이곳 왕이 하는 말이 아니 그 나라는 보름달이고 우리는 초승달이라고? 우리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하면서 화를 냅니다.
그러자 조정자로 나선 사람이 보름달은 이제 기우는 일만 남았고, 초승달은 이제 점점 더 커질 일만 남았는데 뭘 그러십니까? 하자 이 말에 왕이 기분이 좋아 전쟁을 그쳤다고 합니다.
3. 좋은 날은 간절한 기도에서 옵니다. |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도를 통한 신령한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 기도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일, 없는 일을 야릇한 말로 미혹하는 선동자의 기도에는 귀를 막으십니다.
대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크게 뉘우치는 죄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는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되, 주여, 제가 죽을 죄인입니다. 라고 허물을 고백하는 그 매달림으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여기 의인이란 말이 두 번 나오죠? 이 자리에 내 이름이 들어가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우리는 자존심이나 사람의 눈치 보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간구가 더 필요합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기(잠 15:29)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의가 가득하다 해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고, 생명입니다.
악한 자를 제압하는 무기는 총칼이 아니라 기도여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그 순간에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는 기도로 사울을 굴복시켰습니다(행 07:60).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좋은 말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한 셈에서 쓴 물과 단물이 나올 수 없지만, 마음의 샘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때는 기도가 되고, 어떤 때는 형제를 원망하는 넋두리일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인도받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입술에서 축복이 흘러넘치게 합시다.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생명수의 기도를 드립시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자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눅 15장에 보면 일명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마지막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한 후 불행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불행한 원인이 재산을 다 탕진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친구를 다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진짜 불행해진 이유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처지를 돌아보는 중에 비로소 자기가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에 불행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면 좋은 날이 아니라 불행한 날만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깨달은 둘째 아들은 곧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실패한 아들을 외면하지 않고 기쁘게 맞아 잔치를 열어 놓고선,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악행 한 자를 심판의 눈으로 보시고, 믿음의 의지가 약하여 악에 기울어진 자가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애매하게 고난 겪는 자는 긍휼의 눈으로 보십니다.
당연히 몰래 지은 죄악도 밝게 보십니다. 못 보시는 것이 없으므로 악행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레이저로 계속 추적하십니다.
죄인이 동서남북 어디를 간들, 세상 끝 안전하다고 여기는 그곳까지 간들 결국은 추적하여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 그분과 게임을 하지 말고 항복하여 기도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의 기독교 잡지 무디지에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대표 사례를 실었습니다. 교회를 망하게 하고, 자신을 망하게 하고, 우리 모두를 망하게 하는 사례입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불만의 씨를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오직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만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 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외국인이 한국인을 놓고 평가할 때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친절이나 도움에도 God bless you!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합니다. 축복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전통이 얼마나 좋습니까?
믿음의 사람인 우리도 좋은 말, 좋은 관계, 간절한 기도가 내 삶 속에서 흘러나오게 하여 좋은 날, 복된 날, 행복한 날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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