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선언문 기초자이며 제3대 대통령 Thomas Jefferson(1743.4.13.~1826.7.4)의 당선 축하장에서 그의 한 친구가 이런 축사를 했습니다.
오늘 각하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 힘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청년 시절 각하와 나는 함께 다니던 교회의 십자가 위에 피뢰침을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첨탑 위에서 각하는 엎드렸고 나는 각하의 등 위로 올라가 작업하던 중 그만 내가 들고 있던 납통이 기울어 뜨거운 납 물이 각하의 손등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각하는 등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하여 꼼짝도 하지 않고 참아 주었습니다. 당신의 이 인내와 성실이 오늘 각하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과 인내심으로 앞을 바라보고 나아간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던 제퍼슨의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
믿음과 확신은 기적을 생산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듣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어떤 처분이라도 받겠다는 인내의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28) 라는 복을 주십니다. 인내 끝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참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합시다」로 정했습니다. 가나안 여자가 사모한 그 부스러기의 은혜를 김삼일 가족도 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가나안 여자의 신분과 현재의 처지를 봅시다. |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예수님은 활발했던 갈릴리 사역을(마 04:12~15:20) 마치고 갈릴리 호수로부터 50~6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전도하러 가셨습니다.
이때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고쳐 주십시오. 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애원합니다.
이 여자의 신분을 22절은 가나안 여자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과 평행 본문인 막 07:26에서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밝힙니다.
가나안 여자는 무엇이고 수로보니게(Syria Phoenicia) 족속은 무슨 말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간단한 이해가 필요 합니다.
이 여자가 현재 사는 곳은 시리아에 속한 페니키아입니다. 마가는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합성하여 그냥 수로보니게(Συροφοίνισσα)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가나안이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의 땅 팔레스타인에 들어오기 전 이름으로서 저자 마태는 이 여자의 옛 조상을(민 13:29) 기억하여 가나안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옛날로 따지면 가나안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후손의 하나가 은혜를 받기 위해 유대인의 메시아에게 나아왔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지금 예수님께서 방문하신 두로의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가장 나쁜 감정을 품었다고 합니다.
시돈은 북 왕국 아합왕 때 바알 신을 끌고 와 나라의 신으로 섬기게 한 악한 왕비 이세벨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후일 2세기 말쯤 클레멘트(clement) 설교에 의하면 가나안 여자의 이름은 유스타(Justa)요 그의 딸은 베레니케(Berenice)였다고 전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예가 아닌 이방인 여자를 헬라인이라고 했으니 헬라의 신들을 섬기는 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질 만한 신앙의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 나와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나아왔습니다(22, 25, 27). 무엇 하러 나왔습니까? 자기 딸이 귀신에 사로잡혀 고통당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왔습니다.
흉악하다는 말은 유스타의 딸이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간다는 뜻입니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한지 짐작은 됩니다. 자식 때문에 아픈 마음을 가진 한 엄마의 예를 들겠습니다.
2010년 3월 호주에서 케이트 오그(Kate Ogg) 산모가 생후 27주 만에 쌍둥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런데 딸 에이미는 비교적 건강했으나 아들 제이미는 1킬로의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호흡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숨이 멎고 말았습니다.
의료진은 제이미를 살리려고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20분이 지나도록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담당 의사는 아기가 죽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기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아기를 한 번만 안아보겠다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의사가 마지못해 허락하자 엄마는 축 늘어진 아기를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볼을 쓰다듬으면서 마지막으로 아기의 입을 열어 젖을 물리고는 기도합니다. 아기를 살려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젖을 물린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아기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면서 떠집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움직입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의사를 불렀습니다. 달려온 의사가 아기의 생존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후 아기는 건강을 회복해서 또래의 아기들처럼 잘 자랐습니다.
2. 문제 해결은 예수님께 계속 매달려야 합니다. |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자가 안고 있는 절박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당장 죽어 가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06) 하신 주님께로 나오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마침내 이 가나안 여자는 자기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수 있는 주님께로 나아 왔습니다.
22절에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딸의 절박한 문제를 놓고 주님께 나와 처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지요? 이 고백은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의 전통적 메시아를 대망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기 가나안 여자가 주라는 말을 다윗의 자손이란 말과 연결하는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마 12:23)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분이 내 한 많은 인생살이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지 못하고 배척하였으나 이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자기 지역에 오심을 보고 즉각 나아와 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복 중의 복이요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으로 믿어지고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는다면 그때부터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이 고백 하나만 있으면 다 됩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문제가 풀리기까지에는 상황에 따라 시간이 지체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봅시다.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님께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지나가자 이 여자는 뒤에서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이 일을 놓고 제자들이 뭐라고 말을 합니다.
선생님 고쳐줍시다. 라는 말일까요? 호의의 말이 아니라 절망의 말을 합니다. 시끄럽고 성가시니 돌려보냅시다. 무척 야속하죠.
드디어 예수님께서 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당신을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것으로 믿기 힘들 정도의 말입니다. 그래도 이 여자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절을 하며 말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딸의 문제로 이렇게 애원하며 절까지 하는데 이쯤 되면 주님도 조금 양보해 주셔야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더 심하게 말씀하십니다.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자를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처럼 취급하십니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습니까? 매우 굴욕의 말입니다.
이 여자는 지금 딸의 병 문제를 놓고 자존심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이지 자존심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은 당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관용어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한 여자에게 악담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나안 여자의 처지에서 보면 분명 무시하는 표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3. 마침내 영육 간의 복을 받았습니다. |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가나안 여자는 두 가지 복을 받았습니다. ①첫째 복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는 신령한 복입니다. 이 크다는(μέγας) 말에서 파생된 말이 메가톤(megaton)입니다. 가장 큰 것 즉 메가톤급 믿음이라고 인정하십니다.
②둘째 복이,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육신의 복입니다. 네가 원하는 것만큼 받을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믿음의 그릇 크기만큼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복을 받는 과정에서 이 여자는 상당한 시련과 마음고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계속되는 외면과 제자들의 비협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외면과 침묵으로 이 여자를 대하셨습니까?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말로 테스트하십니까?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예,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 여자가 가진 작은 믿음의 씨앗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점점 자라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최고의 믿음으로 자라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는 신령한 복을 받는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가운데 가버나움의 백부장과(눅 07:09) 이 여자만이 이런 믿음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줄기찬 인내력, 예수님에 대한 신뢰도, 예수님에 대한 집중도, 끈기 있는 믿음,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신앙, 자존심을 내려놓는 이 모든 것이 합격 점수를 맞은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람의 됨됨이는 직분이나, 신앙의 연식이나 지식의 규모, 돈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은 왜 이 여자에 대하여 매몰차게 대하면서 눈길 한 번도 제대로 안 주실까요? 이 여자가 구하는 것이 잘못되어서입니까?
아니면 그녀의 간절함이 모자랍니까? 그녀의 경우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침묵하십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이 여자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심이고 다음으로 이 이방인 여자의 큰 믿음을 만인에게 공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든 한 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자 첫째 사람은 하나님, 나는 별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별(Star)이 되었습니다.
둘째 사람은 하나님, 나는 왕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역시 소원대로 왕(King)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욕심이 좀 많아서 하나님, 나는 별도 되고 싶고 왕도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소원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사람은 별(Star)과 왕(king) 스타킹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신는 스타킹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욕심 많은 소원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가를 잘 말해 주는 유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특별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을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먼저 나와서, 다음으로 간구하되, 그 응답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인내하는 조건입니다.
약 0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에픽테토스(Ἐπίκτητος, 55년경~135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이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만들어지는 데도 과정이 있고 세월이 걸린다. 우선 꽃이 피게 해야 하고 다음에는 열매를 맺게 해야 하고, 또 그다음에 여물게 한다.
이 말은 무슨 일에나 차근차근 단계를 충실히 거치면서 인내로써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되고, 너무 결과에만 집착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처음으로 목장에 견학 가서 돼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와 돼지 저금통 크다.
잠시 후 젖소가 풀을 뜯는 넓은 초원으로 갔습니다. 마침 젖소들이 시냇물을 마시고 있자 그걸 본 학생이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어머, 우유에다 물을 타다니. 얼마나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인드를 가진 학생입니까?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주님의 부스러기 이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는 나에게 대박이 될 수 있고, 주님의 부스러기 하나면 내 건강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 한 토막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 한 토막이면 나에게 지옥문은 닫히고 천국 문은 활짝 열립니다.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 한 토막이면 우리 교회에 성령님의 불이 임하고, 전도의 불길도 강하게 일어납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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