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읍시다.(아 02:10~15)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2. 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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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시의 남쪽 약 25km 되는 곳 도노라 시에 거대한 댐을 건설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쥐 한 마리가 댐 밑에 구멍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조그만 금이 가기 시작하자 전문가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댐의 붕괴를 예측하고 온 마을에 경고를 하였습니다. 주민 여러분, 아무래도 위험하니 피하여야 합니다. 속히 피하십시오. 이 경고의 말을 듣고 긴급 대피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비웃기를, 저렇게 단단한 댐이 작은 균열에 무너지겠느냐? 하며 방심하였는데 얼마 후 굉음과 함께 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하지 못한 이들은 미쳐 손을 쓸 틈 없이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는데 바로 작은 쥐 한 마리가 거대한 댐을 파괴하였습니다.

 

아가(雅歌)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솔로몬 왕에 의해 기록된 노래로서 천 다섯 노래 중에서 가려 뽑았다고 해서(왕상 04:32) 노래 중의 노래라 부릅니다. 이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시골 처녀 술람미 여자와의 러브스토리를 기록한 책으로서,

러브스토리의 무대가 된 평화로운 동산에 뜻밖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자가 포도원에서 살짝 만나 사랑을 나누는데 어떤 작은 틈이 있어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작은 여우 한 마리가 갑자기 뛰쳐나와 사랑의 무드를 깨뜨립니다. 이에 솔로몬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이 여우를 잡으라는 뜻이 그냥 외적인 현실문제만인지 아니면 또 다른 영적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많은 여우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꽃피는 봄이 되면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땅을 파고까지 포도원에 들어와 포도 줄기까지도 갉아먹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의 무법자 혹은 파괴자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 또 연인들이 살짝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우는 계절에 여우들이 종종 나타나 방해를 하니 사람들은 이 여우를 골치 아픈 동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농부는 봄이 오면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 잡는 일을 우선으로 합니다.

꽃이 한창 피어있는 포도원에 작은 여우가 숨어 들어와 포도원을 헐기 시작하였다면 이는 반드시 잡아야 할 암 세포와 같은 동물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은유적 표현으로 본다면 신앙생활을 해()하는 어떤 불순한 요소가 있는데, 이 불순한 요소를 꼭 제거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을 개인이나 가정, 교회에 적용한다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여우와 같은 세력 즉 사탄의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됩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술람미 여자는 성도를, 포도원은 넓게는 교회, 좁게는 가정,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은혜 받은 성도의 심령으로 적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포도원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신령한 의미를 먼저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포도원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05:0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 에로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와서 포도나무는 마 20장의 포도원 비유를 교회로 비유하며, 15:01절에서는 포도나무 가지를 성도에 비유합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좀 더 넓게 해석한다면 포도원은 우리 개인의 심령이요, 교회요,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도 됩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여기 큰 여우나 늙은 여우가 아니라 작은 여우입니다. 작으니까 포도원에 발생한 작은 틈으로 교묘히 잠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는 건데 작은 여우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기 작다는 말은 우리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들, 쉽게 지나쳐 소홀히 하기 쉬운 일로 볼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는 큰 것에서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것에서 일어나게 마련인데 즉 소홀히 여기기 쉬운 것에서부터 경계의 자세를 늦추지 말고 또 예사로이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런 작은 것에서 잘 터집니다. 아주 사소한 것,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사랑이 멀어지고 결국 파경에 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도원 울타리에 난 틈새를 타고 살짝 들어와서 숨은 여우라면 잘 감지될까요? 힘이 들 것입니다.

이 작은 여우와 같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하는 사탄의 요소가 우리의 심령에 역시 들어와 영혼을 갉아먹으면 결국은 그 독소에 오염되어 쓰러집니다. 성도는 이런 세력을 대적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데(벧전 05:08, 09), 만일 깨어 있지 못하면 믿음을 도둑질 당하여 형식적인 신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2. 작은 여우는 심령의 포도원을 헐기 위해 열등감으로 찾아옵니다.

 

01:0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작은 여우라고 했으니 결코 크지 않은 여우일 것인데 이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오면 문제가 좀 심각해집니다. 겨울이 지나고 한참 꽃이 피는 계절,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따 먹으며 가지까지도 갉아 먹어서 포도나무를 죽게 합니다.

이런 여우를 그대로 방치해 두면 결국 포도원은 점점 황폐화 되어 못쓰게 되겠지요? 그래서 꽃피는 계절이 되면 포도원 지기들은 우선 포도원에 숨어든 여우가 있는 지를 살핍니다. 여기 포도원을 앞서 넓게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만 보다 더 좁게 적용을 해 본다면 개인의 심령으로 비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심령의 포도원을 깨뜨리는 작은 여우는 어떤 것일까요? 여러 각도에서 봐야겠지만 솔로몬과 술람미 여자와 밀회를 방해하는 어쩌면 술람미 여자의 열등감일 수 있습니다. 아가서를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술람미 여자의 열등감이 조금은 보입니다.

 

01:0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열등감이 묻어나오는 장면 아닙니까?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라고 부탁하는 술람미 여자, 이 여자는 검은 피부에 대한 열등감에다 오빠들이 포도원 가꾸는 일까지도 자신에게 시켰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포도원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피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검게 탄 피부를 게달의 장막을 삼은 검은 염소 가죽에다 비유합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자는 자신의 검은 피부의 열등감을 게달의 장막에 비유해 놓고는 이내 그 피부를 솔로몬의 휘장에 다시 비유합니다. 나의 피부는 게달의 장막 같이 검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자신에게 검은 피부의 열등감이 있지만 솔로몬의 사랑으로 인해 열등감을 치료받고 도리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이 고백이 바로 내면의 작은 여우의 세력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열등감을 지적하여 힘을 빼거나 지치게 하는 분이 아니라 그런 작은 여우와 같은 세력을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술람미와 여자와 같은 열등감과 약함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품어주셔서 아름다운 솔로몬의 휘장처럼 행복으로 바꿔 주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예외 없이 행복의 울타리를 깨뜨릴 수 있는 열등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문제점들을 다 기도와 믿음으로 풀어 나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 내가 여러 열등감들 때문에 믿음의 자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심령의 포도원이 훼손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거목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천하를 호령하는 천둥이나 번개 벼락 이런 것들이 아니라 나무속에 사는 조그만 딱정벌레임을 아십시오.

술람미 여자는 열등감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교제하는 남자 솔로몬의 사랑의 힘으로 이겨냈던 것처럼 우리도 약함이나 단점 같은 열등감을 나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힘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0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3. 작은 여우는 교회를 헐기 위하여 천사로 가장하여 찾아옵니다.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은 옛날 에덴동산에 들어가서 낙원을 파괴하였고, 이 시대에는 신령한 교회에 들어와서 부흥이 되고 은혜의 꽃이 필 때 쯤 설쳐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작은 여우와 같이 역사하는 마귀의 전략에 대한 방어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동물 가운데 여우보다 더 의심 많은 짐승은 없다고 하죠. 이 여우는 주인도 의심을 하며, 날마다 먹이를 가져다주는 조련사도 잘 믿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의심하게 하는 여우와 같은 사탄이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때부터 믿음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서로를 의심하게 하여 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고후 11: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결국 신앙이 파괴되고, 평화롭던 가정이 파괴되고, 남편도 의심하고, 아내도 의심하고, 또 부모도 의심하고, 자녀도 의심하는 불신앙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였는지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교회도 마찬가지로 먼저 믿은 분은 새로 오신 분과 연약한 분들에게 사랑과 겸손으로서 교회 생활의 적응을 위하여 잘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된 자가 자기 기득권을 행사하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고, 오히려 은혜가 떨어질 것입니다. 믿었으면 그 믿은 만큼, 직분자는 직분만큼 더 봉사를 잘 하십시오.

만일 성도를 의심하고, 소속한 모든 곳에서 분란과 원망 그리고 비판을 일삼는 일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분명 잡아내어야 할 작은 여우의 세력으로 비교해도 될 것입니다.

 

여우의 특색이 무엇일까요? 잘 변하는 겁니다. 여우는 하룻밤에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작은 여우와 같은 마귀의 세력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를 잡기만 하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심을 하게 하여 불신앙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네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첫째는 부정적인 말을 하는 자신입니다. 둘째는 부정적인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부정적인 말의 대상입니다. 네 번째는 부정적인 말을 하고 듣는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월간지에 깨진 유리창(제임스 윌슨과 조지 캘링이 발표, 1982)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이를 본 사람들은 나머지 유리창도 깨뜨리거나 심지어 건물에 불을 질러도 된다는 신호로 여긴다.

이는 사소한 침해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더 큰 행위로 발전한다는 내용입니다. 나아가 이런 행태를 방치한 조직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망가지고, 사소한 공권력 무시가 국가의 근간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다는 게 깨진 유리창 법칙입니다. 사소하다고 여겨 방치하면 결국 다 망가지듯 작다고, 별것 아니라고 무시하면 큰 화근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다가 아주 큰 문제를 만났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 교인들끼리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목사님이 보니 기도 시간에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일어섰고, 나머지 교인들은 앉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맞은편을 향하여 자기들이 교회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데 아무리 목사님이 설득하고 말려도 양측의 대립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을 하던 목사님이 이 교회를 세울 때 있었던 창립 교인인 99세 된 노 신자 한 분을 만나기 위해서 양로원에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이 할아버지 교인에게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할아버지, 통성 기도 시간에 회중들이 일어서는 것이 이 교회의 전통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기도 중에 앉아 있는 것이 전통이겠군요? 그것도 아닙니다.

아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교회의 전통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할아버지 교인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우리 교회의 전통은 절반은 일어서고, 절반은 앉아서 서로 고함을 지르는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예배하기를 좋아하며, 그 예배가 틀려 있어도 굳이 고치려 잘 안 합니다. 어쩌면 삶의 스타일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편의적으로 행동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만 받아들이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것들이 공동체를 해치는 작은 여우의 세력 아닐까요? 그렇다면 작은 여우의 세력은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은 내 입맛대로 사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과의 관계를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갈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잘 지키는 쪽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여우의 세력, 즉 의심하게 하는 마귀,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마귀, 변심하게 하는 마귀를 잡는 길은 우리 모두가 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할렐루야,

작은 여우를 잡으라. 명령사입니다. 또 어떤 영어 번역에 보면 Let us catch, 우리가 함께 잡자로 나옵니다. 이 여우의 세력을 함께 잡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힘으로 작은 여우의 세력을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다 잡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