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4년 말씀

인생의 헛됨과 심판을 전하십시오.(전 12:08~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4. 2. 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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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 48대 경문 왕의 귀를 빗댄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삼국유사). 경문 왕의 귀가 당나귀 귀를 닮았다는 내용인데 이는 경문왕이 왕위에 오른 뒤부터 귀가 계속 자라더니 마침내 당나귀 귀만큼 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궁중에서조차 거의 모르는 특급 비밀에 붙여지게 되었고, 다만 왕의 의관을 만드는 노인만이 이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 일을 감추기 위해 평소에는 두건 같은 것으로 귀를 감추고 있었는데 하루는 왕이 의관 제작자에게 내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크다는 것을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라. 만약 그리하면 죽을 줄 알아라. 이렇게 지엄하게 분부를 내린 후 두 귀를 꼭꼭 숨기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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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에는 목숨이 아까워 비밀을 잘 간직하던 노인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엄청난 비밀을 혼자서만 알고 있자니 점점 병이 커져 가자 참다못한 노인은 어느 날 밤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으로 혼자 숨어들어가서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만큼 크다. 이렇게 마음껏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병이 다 나은 것 아닙니까?

반면 노인의 병은 나았는데 소리를 치는 바람에 대나무 숲이 술렁이면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만큼 크다. 하며 전해지는 바람에 모두가 알게 되어 임금님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가 체험한 것을 전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본능이 있어서 그 본능을 전하지 못하면 병이 오기까지 합니다. 반면 꼭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때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일을 소문내지 못해 입이 간질간질하고 애가 탑니까? 혹 남의 허물입니까? 오늘 말씀은 솔로몬 왕이 경우에 합당한 말, 꼭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1. 인생사는 결국은 모든 것이 헛됩니다.

 

0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기 전도자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자, 설교자라는 뜻으로서 09,10절을 보면 전도자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즉흥적인 생각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말을 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가져야 할 마음이요 자세입니다.

 

08절에 헛되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이뿐 아니라 전 01:02절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전도서 전체로는 무려 27번 나오는데 그러면 사람들의 하는 일들 모두가 다 헛되다는 뉘앙스가 풍기지 않습니까? 과연 그런 뜻으로 받아도 되는 말씀인지 성경으로 점검해 봅시다.

0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사람의 행하는 모든 일이 무조건 헛되다는 말이 아니라 해 아래에서 행하는 일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고 제한하여 말을 합니다. 해 아래에서 란 본서에 29번이나 나오는 말로서 해 위에서라는 말이나 하나님 아래서() 라는 말과 대조되는 문구입니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말은 하나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수고는 헛되다는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본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으로 이 말씀을 기록했는지 그 저변에 깔려있는 사상을 추적해 보면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도서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자기의 인생철학을 정리한 책입니다.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성경으로서 이런 문서는 하나님 없이 접근하면 허무주의 사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며, 또 불신자의 인공문명을 쌓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되다는 단어는 두 가지의 뜻을 지니는데 무너지는 헛됨과 없어지는 헛됨입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한 가닥 연기와 같은 것이지요.

전도서는 여러 곳에서 이것도 헛되다, 저것도 헛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는 헛되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헛되다는 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어떤 이는 전도서를 허무주의의 교과서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전도자로 지칭되는 솔로몬 왕입니다. 이 솔로몬이 청소년이나 아니면 인생의 풋내기입니까? 인류 역사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이며, 또 전도서 02장에 비추어 보면 많은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여러 많은 것을 체험해 보고 난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 라고 말을 한다면 무언가 새겨들을 만한 가치 있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없는 인공문명을 쌓는 수고를 왜 하고 있느냐? 속히 그 일을 그치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헛된 일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수고, 좀 더 잘 살려는 부요의 수고, 남에게 인정을 받거나 다스리고 싶은 명예의 수고 이런 것들이 결국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자기중심과 자기 목적의 사업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믿음의 사업으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헛되지 않는 수고가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 재물을 쌓는 일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하늘에 쌓는 상급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헛되지 않는 수고가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잠깐 지나는 삶 속에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열정을 품고 드리십시오. 그러면 헛되지 않는 수고가 될 것입니다.

 

또 무엇이 그렇게 헛되다는 말입니까? , 젊음이 헛되고, 건강하고, 곱고, 아름다운 외모도 세월 앞에서는 다 무너진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설명하여 헛되다. 라고 합니다.

 

0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남다른 엄청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인생의 말년에 내린 결론이 다 헛되다. 라고 한다면 이는 놀라운 결론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솔로몬은 적어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 인생은 정말 멋있었도다. 아름다웠도다. 신났도다. 그러나 솔로몬은 결국 하나님 없는 인생살이는 헛되다. 라고 결론 내립니다.

 

 

 2. 마지막엔 심판이 있습니다.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솔로몬 왕이 또 하나 간절히 전하고 싶어 했던 것은 현재의 심판이 있고, 죽은 이후에 미래의 심판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놓고 표현하기를, 한 낮의 그림자와 같고(144:04),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04:14), 풀의 꽃과 같다고(벧전 01:02)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하늘에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는 구름과 같고, 나그네의 삶과도 같은 아주 짧은 존재입니다. 인생의 삶이 그 길이가 좀 길다거나 아니면 좀 짧다 할지라도 결국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을 때가 있습니다(03:02).

 

이렇게 죽음이라는 사실이 남의 얘기 같다가도 갑작스런 사고나 병을 얻게 되면 죽음은 나에게 매우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종말을 논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종말도 언제 어느 때 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미리 미리 준비를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가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하는 인사말이 아침 드셨습니까? 점심때 만나면 점심 드셨습니까? 저녁에 만나면 저녁 드셨습니까? 이었습니다. 요즘에도 이런 인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더러 보는데, 그러나 옛날 희랍의 철인들은 아침에 하는 인사말이 죽음을 준비하셨습니까? 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고작 자기가 묻힐 묘지나 수의, 관 정도와 재산 분배, 유언을 남기는 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죽음의 준비란 이런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천국을 위한 준비이어야 합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내가 가서 지낼 그곳을 위하여 준비를 한다는 말입니다.

 

0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너와 나 할 것 없이 이제 앞으로 몇 십 년, 아니 넉넉잡고 백년 후면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TV를 보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표시판에 어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를 표시해 놓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죽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갑자기 당하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천재지변이나, 교통사고, 강도, 전쟁, 심장마비 등 거의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죽음인데 이때는 더 이상 회개하거나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만일 죽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형벌의 심판대 앞에 갔다고 합시다. 그 누구의 탓이라고 원망하며 또 후회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죽음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교회가 있고, 성경이 있으며,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라디오와 TV를 통하여 전 세계에 선포되고, 또 인터넷을 통하여서도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을 잘 몰랐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은 한국처럼 복음의 물결이 세차게 일고 있는 곳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노인이 갑자기 염라대왕에게 불리어 갔습니다. 노인은 당황하면서 염라대왕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부르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요. 내가 정리할 것도 있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좀 하고 와야 되지 않소. 왜 예고라도 해주지 않는 거요. 요즘은 날씨도 다 예고 해주는데 합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말하기를, 이 사람 기가 막히는군. 내가 5차례나 예고해 주었지 않던가? 아니 언제 5차례나 예고해 주었단 말이요. 잘 들어보게나. 먼저 눈 밑에 잔주름이 있게 한 것이 1차 예고, 귀 밑에 머리색갈이 희어지게 된 것이 2차 예고, 입가에 잔주름이 3차 예고, 목주름이 생기게 된 것이 4, 그리고 마지막 5차는 뱃가죽을 당기면 30cm나 늘어나도록 한 것일세. 그런데 무슨 핑계를 하는가?

 

16:19~29절에 보면, 세상에서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를 하며 지내던 부자가 불행하게도 지옥에 와 있습니다. 반면 거지 생활을 하던 나사로는 천국에 와 있습니다. 그러자 부자로 지냈던 자가 아브라함에게 세상에 있는 가족들이 이 뜨거운 지옥에 오지 않도록 구원의 소식을 나사로를 살려 보내어 전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뭐라고 답을 합니까?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무슨 뜻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죽은 자가 살아가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육체에 찾아온 죄의 형벌(03:19; 06:23)로서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음으로 심판에서 제외가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죽음은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죽음 이후에 오는 심판의 실존을 못 느끼면 지극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에게 두 길 곧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07:13,14).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33:11). 아버지 품으로 갑시다.

 

14: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였던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왕이 지혜로운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그 신하는 죽은 해골을 가지고 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해골을 책상 위에 놓고 정치를 하십시오.

그 후 알렉산더는 해골을 책상 위에 놓고 정치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을 합니다.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니 다 버리고 오직 정치만 잘 하자. 어차피 해골이 될 몸이니 전리품은 하나도 갖지 말고 잘 싸운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자 이렇게 하면서 정말 깨끗한 정치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알렉산더 대왕이 20세에 왕위에 올라 페르시아, 이집트, 이란을 정복한 뒤 인도를 정복하려 했으나 열병과 장마로 인해 바벨론으로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4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지나간 죽음의 길을 앞두고 허무함을 절감하면서 내가 죽거든 내 손을 빈손으로 관 밖에 내어놓아 성을 돌면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외치라 했습니다마지막 죽음 앞에서 인생은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관에서 양손을 내놓게 한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후세에 기억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죽은 당사자에게 무슨 유익이 되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죽고 난 다음에 그 모든 것은 죽은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묘지 앞에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찬양하고, 칭찬하며, 박수를 친다한들 죽은 사람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는 바람과 같을 뿐입니다.

이 세상엔 오직 소유에 목적을 둔 사람들, 소유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만이 오직 목적입니다. 돈이면 다다. 돈이면 다다. 돈이면 다다. 그 소리를 빨리 하다 보니 돈다가 됩니다. 돈에 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번만 살다가 죽음으로 향하여 갑니다. 죽음 후에는 또 다른 기회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누가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0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이제부터 죽음과 심판 예비하되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면서 삽시다(10:28~31). 머잖아 알곡과 쭉정이, 가라지를 구별하는 추수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13:2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