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신앙인의 인간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롬 12:19~21)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12. 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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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낸 링컨(Abraham Lincoln,1809,2,12~1865,4,15)이 젊은 시절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정견발표회에서 그의 경쟁 후보가 링컨을 향해 당신은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오. 라고 비난하고는 청중을 향해 여러분, 천당에 가고 싶은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고 외쳤습니다. 모두들 높이 손을 들었으나 링컨은 손을 들지 않자 그 후보는 링컨을 향해 미스터 링컨, 당신은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럼 지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웃으면서 천만에요. 나는 지금 천당도, 지옥도 가고 싶지 않소. 나는 국회로 가고 싶소. 이렇게 응수해서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이어서 링컨의 연설 차례가 되자 링컨은 나의 상대방 후보는 피뢰침까지 달린 호화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벼락을 무서워할 정도로 죄를 많이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조크를 해서 또 한 번 청중을 웃겼습니다. 물론 링컨은 당선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상대에게서 비난거리를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입술에 비난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향해 비난하는 마음을 절제하고, 도리어 상대방에게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이 내게는 없는지를 살핀다면 오히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내 영혼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은 일 아닐까요? 하나님, 나의 입술에 파수꾼을 두사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이 나오려 할 때 막아 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할 때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이웃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가는 평화의 사람이 되도록 적극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인의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으로 보겠습니다.

 

 

 1. 주변의 원수거리들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이 말은 사랑을 입은 자들아. 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속량을 통하여 측량할 수 없는 큰 빚을 탕감 받은 자들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 줍니다. 당신들이 직접 원수 갚는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나님이 당신의 입장을 잘 아시므로 대신 알아서 분노하시고 처리할 테니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 말입니다.

이런 말씀을 일찍부터 깨달은 다윗은 그가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박해를 당하다 복수의 기회를 만났을 때 자신이 직접 칼을 들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예를 한번 불까요? 사울 왕이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 정적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삼천 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엔게디 광야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러다 사울이 생리현상으로 용변을 보러 혼자 자연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동굴 속에 다윗과 그 일행이 먼저 와 있는 것 아닙니까?

동굴의 내부는 지척을 분간 못할 만큼 매우 캄캄했으며, 다윗과 그 일행은 캄캄한 그 굴의 깊숙한 곳에 은신하면서 사울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용변을 보면서 옷자락을 뒤로 걷어 젖혀 놓은 채 그저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다윗의 부하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삼상 24:0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 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 대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의 생명에 손을 대지 않고 겉옷 자락을 뒤에서 살짝 베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은 사울에게 다윗이 십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전해주자 즉각 삼천 명의 특공대로 추격을 하였으나 잡지 못한 채 광야의 진영 한 가운데서 자고 있을 때입니다.

다윗의 수하에 있는 아비새 장군이 사울의 진영을 살핀 후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왕을 비롯하여 경계병 모두가 잠들어 있습니다. 치려 갑시다. 하고 권합니다. 이에 다윗이 직접 가보니 그대로 완전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 아닙니까?

드디어 아비새 장군이 다윗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저 사울을 하나님이 붙여주셨습니다. 제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끝내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이에 다윗이,

 

삼상 26:0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03:10), 죄인의 신분인 우리로서는 감히 남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도 없습니다. 심판하는 권세는 우리 주님께만 있으므로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또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교만을 나타내서도 아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원수가 있다면 이를 친히 갚는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다 갚아 주심을 믿고 오직 주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이웃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 감정 조절을 잘 하여야 합니다.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절제할 줄 모르는 본능적인 감정에만 의존해 자신의 감정을 충동적으로 표출시키는 자의 심리를 말합니다. 미련한 자의 우매한 특성인 이런 즉각적인 감정의 표현은 그 동기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피해와 손해를 유발시키기 마련입니다(20:10~12; 삼상 06:19).

12:16절은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감정이 치솟을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웃과의 문제가 발생 하였을 때 적절한 말씀을 주십니다.

 

0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인생살이의 한 모퉁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한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말씀으로서 주님은 이런 자들에 대하여 감정을 잘 조절하라 하십니다감정이 격해져서 다투거나 미워하기보다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일어납니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다윗도 왕이 되었지만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맨발로 피난을 가고 있을 때 사울의 집 족속 중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를 해 댑니다.

 

삼하 16:0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 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0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 지라.

 

한 나라의 왕에게 이런 행동을 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고 그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상 02:09절을 보면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여러 부탁을 하면서 마지막에 시므이를 죽이라고 유언하며 임종합니다.

 

왕상 02:0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 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이 일은 다윗이 해묵은 감정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한 결과인데 그렇게까지 아니했어도 시므이는 쌓은 그 악으로 인해 저절로 멸망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로마서를 기록할 때 억울하여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일을 만나도,

다윗처럼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교훈을 전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인해 추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는데 결과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삼상 3101절 이하를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아비나답,말기수아가 죽임을 당하고,사울 역시 그 전쟁터에서 자기의 칼로 자결하는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다. 성경 곳곳을 보면 본인들이 심판하고 처리하기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을 때에 하나님이 다 알아서 처리해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3. 악한 도전은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용서하는 것조차도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원수에게 먹이고 마시게 하라니 안 그래도 미워 죽겠는데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숯불을 냄비에 넣어서 냄비채로 머리에 올려놓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숯불이 들어있는 냄비가 얼마나 뜨겁습니까. 머리에 올려놓으면 머리가 타들어 갈 것인데 그런 고통스러운 고문을 비유해서 바울이 20절 말씀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뜨거운 것을 앞에 놓으면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듯이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선을 베풀므로 그들이 마음에 후끈거리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겠습니까? 가장 좋은 복수의 방법은 원수에게 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적절한 말인 것 같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 애굽이 총리가 되었을 때 자기를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노예로 처지로 전락한 가운데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45:0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50장에 보면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난후 그 유언을 따라 가나안에서 장례식을 치릅니다. 이후 요셉의 형제들이 혹시 요셉이 우리를 미워하여 과거의 악한 일들로 인해 우리에게 보복을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염려를 합니다.

그때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제들과 그 자녀들을 책임지고 좋은 학교에 보내서 공부를 시켜 훌륭한 인물로 키워주겠습니다 하고 약속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마음입니다. , 우리도 원수에게 친히 복수하지 말고 선대를 하십시오.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남이 잘 될 때 오히려 축복해주고 격려해 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그 악을 제압하라고 말입니다. 복수란 원수를 해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해치는 것이며, 미워하고 저주하고 악으로 갚는 것은 자기 자신이 먼저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격언 중에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자기를 괴롭히고 때리던 친구가 있으면 나중에 그 친구보다도 훨씬 잘 살게 되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는 것보다 더 통쾌한 복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거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우리는 용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고, 잘 대접해 주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 라고 여기면 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때로는 성도들 사이에, 이웃 사이에 어떤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함으로 인해 오해와 다툼이 생기고, 심하면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기도로, 때로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맡기면 그 결과는 분명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방을 무릎을 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딤후 0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한 고조(劉邦, B. C 247~195) 유방이 낙양 남궁에 있으면서 보니 매일 여러 장수들이 한데 모여 무엇인지 그냥 수군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이상해 장량을 불러 물어봅니다. 왜 이리도 어수선한가? 그러자 장량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평민 출신으로 태어나 지금 이렇게 천자의 자리에 오르셨고 폐하의 오랜 벗들은 모두 봉분을 받았으며 폐하와 원수를 진 자들은 모두 주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장수들은 모두 자기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한데 모여 역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자 한 고조는 놀라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대책을 물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평소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신들도 그 사실을 다 아는 사람 말입니다. 장량이 묻자 과인은 누구보다도 웅치를 미워하지. 그 자는 이편저편을 여러 번 오가면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단 말일세.

나는 그자를 죽이려고 했으나 공로 또한 적지 않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지. 그러시다면 폐하께서 웅치한테 후작을 봉해 주십시오. 그러면 죽여야 할 웅치를 치하했으니 대신들과 장수들 모두 다른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 고조는 장량의 말대로 웅치를 십방후로 봉했더니 다른 장수들과 대신들은 웅치가 다 후작이 되었는데 우리야 더 말할 게 있는가? 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존 칼빈과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교리 문제로 한 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루터가 나를 마귀라 한다고 해도 나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높이리라. 고 말했다 합니다. 여기서 잠깐, 성도 여러분의 모습과 칼빈의 모습을 비교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 여러분께서 어떤 사람을 몹시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큰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 05:0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