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3년 말씀

초막절 행사의 영적 의미.(요 07:37~39; 08:12~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3. 11. 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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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큰 기쁨으로 지키는 세 절기 가운데 초막절이 있습니다. 모든 추수가 끝난 다음 한 주간 동안 느긋하게 행하는 축제로서 오늘날 우리의 추수 감사절 정도에 해당되는 절기인데 보통 장막절이라 부릅니다(대하 08:13).

이 기간 동안은 각자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약 32km 경내에는 광야든 사막이든 오두막이나 천막을 치는데 심지어는 길거리나 성전 부근까지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절기 때는 12세 이상 되는 온 가족들이 천막이나 오두막에 거하면서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일주일을 지냅니다.

 

특별히 과거 40년 광야 생활동안 그 조상들이 경험했던 고난과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추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토론하며 예배드리고 또 기도 시간을 갖는 등 철저한 신앙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때 신앙 교육의 주제는 만나와 메추라기 조상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일 불신앙적인 일 반석에서 물이 솟아난 일 등 주로 율법서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모이는 군중의 수도 무려 30만 명 정도의 군중이 각 지방으로부터 와서 회집 되었다고 하니 그 시대에서는 대단한 인파가 아니겠습니까? 초막절 일주일 동안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두 가지의 특별한 행사 즉 실로암에서의 물 긷는 일과 성전에서의 등놀이를 하며 8일째는 절기를 마감하는 대성회를 엽니다(23:34,36).

 

이처럼 초막절을 두 가지 행사로 진행하는 것은 조상들의 광야생활 경험을 추억하면서 그때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체험하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1. 첫째 행사, 실로암으로부터 물 길어 오는 행렬.

 

0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매년 이 초막절 절기를 맞으면 예루살렘에 모인 수십만 유대인들은 먼저 항상 손에 들고 다니는 나뭇가지 다발을 세 묶음 만듭니다. 이것을 룰라브(LULAB)라고 하는데 두 묶음은 버드나무 가지로 만들고 한 묶음은 종려나 야자 잎으로 만들어서 손에 놓지 않고 절기 동안 들고 다니면서 흔듭니다.

다음으로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10리 밖에 있는 실로암 못으로 행렬을 지어 물을 길러 가는 일을 합니다. 이때 제사장들은 순금 항아리를 들고 실로암에 가서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긴 행렬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12:03). 라는 찬송을 부르고 무리들은 찬양과 감사의 내용이 담긴 시편 113편과 118편 두 편을 찬송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두 편으로 나뉘어 찬송을 부르며 물 항아리를 가지고 오는 긴 행렬이 성전으로 들어오면 초막절 행사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사가 시작됩니다. 물을 떠 온 제사장은 제단을 한 바퀴 돌고 제단 옆에 있는 통에 물을 붓습니다.

이렇게 물을 붓는 것을 헌수(獻水)라고 하며, 부어진 물은 관을 통해서 제단 아래로 옮겨집니다. 이런 의식을 날마다 하는 것은 조상들이 광야생활 때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매일 매일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성문에서는 나팔을 불고, 사람들은 손에 룰라브를 흔들면서 제단을 중심으로 흥겹게 춤을 추고 찬양을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제단을 일곱 번 돌았으며, 이 날은 제사장들이 행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높이 흔드는 것이 아니라 땅을 쳐서 잎을 떨굽니다.

 

왜냐하면 절기가 마쳐짐을 나타내기 위해서인데, 이 마지막 날에는 호산나를 높이 불렀으므로 큰 호산나의 날 혹은 버드나무의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감격스러운 찬양과 군중의 함성이 있는 이 장소야말로 감격의 물결과 영적인 은혜의 충만함이 가득 찬 곳 아닙니까? 바로 이곳에서 주님은 집회가 마쳐지는 날 이렇게 외칩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에왜 큰 날이라고 불렀느냐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대 월력으로 7월은 명절의 달입니다7월은 1일은 가을 농작물을 마지막으로 거두게 되는 초막절의 시작으로 나팔을 불어 속죄일의 준비로 성회를 열어 거룩하게 지키는 절기입니다(23:24). 다음으로 10일은 대속죄일, 15일부터 21일까지 한주간은 초막절로서(16:13; 23:36)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기 때문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씀 아닙니까? 메시야로서만이 할 수 있는 말씀으로서 이 말씀의 권위는 사 55:01절과도 같습니다.

 

55:0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러므로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말씀은 주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해갈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확인하는 말씀으로 적어도 한 번만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로 오라는 초청입니다.

 

 

 2. 둘째 행사, 등놀이 행사와 예수님의 메시지.

 

0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초막절 행사의 두 번째 행사는 밤에 거행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뜰 여인의 뜰로 불리는 곳에 높은 대()가 세워지고 그 위의 네 개의 금 촛대에 제사장들의 낡은 의복으로 만든 큰 심지를 끼어서 등불을 밝힙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등불 아래서 피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레위인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를 부르면서 이스라엘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내려갑니다.

이 두 뜰 사이에는 15개의 계단이 있어서 매 계단마다 노래 하나씩을 부르면서 내려가는 밤의 축제도 낮의 물 긷는 행사와 같이 동일하게 7일간이나 계속하였습니다. 밤이 되면 어두움이 임하지만 대형 등불 네 개에 불이 밝혀지면 그 불빛으로 인해 온 예루살렘을 환하게 비추어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그 불빛 아래서 바느질까지 했다고 합니다.

 

등놀이 행사란 이렇게 밝은 불빛 아래서 제사장과 바리새인 또 종교 지도자들이 춤을 추고 일반 백성들은 둘러앉아서 구경을 하다 마침내 어울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행사도 이제 때가 되니 막을 내립니다.

초막절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인 안식일 저녁이 되자 네 개의 촛대 불이 가물가물 꺼져가고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아주 한적하고도 엄숙한 순간, 주님께서 갑자기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의 뜰의 한 복판에 들어서서 무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둠을 물리치려면 밝은 불이 필요하듯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 역시 빛이 필요합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초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 도성을 비추던 모든 불빛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 등장하셔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을 하시는 이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나를 찾아오신 메시야로서 그 분이 지금 친히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시는 겁니다. 주님은 빛을 기념하는 등놀이의 마지막 날, 옛날 그 시절의 불기둥을 기념하는 것보다 현재 살아 있는 빛과 또한 미래의 빛이 더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 속에 살면서도 그 빛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와 허물로 영안이 가리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신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입니다. 세상의 빛은 곧 생명의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빛, 생명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며 또 풍요롭고 하는 빛이라는 말이지요. 바로 우리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라는 뜻입니다. 달빛을 생각해 보십시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햇빛을 받아 반사하게 되면 대낮만큼은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는 사물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특히나 보름달의 경우는 상당히 밝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예루살렘의 등놀이가 다시 불타올라 찬란하고 밝을지라도 그 불꽃이 사라지면 다시 어두움이 계속 될 것입니다. 세상의 불꽃놀이는 이렇게 어두운 밤하늘을 무대로 해서 순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 눈을 황홀하게 만들다가도 곧 꺼져 버립니다.

이런 세상의 불꽃들은 육신의 눈만 밝으면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영의 눈이 멀어지면 신령한 불꽃이신 주님을 볼 수가 없어서 암흑 속에 갇혀 살게 될 것입니다.

 

27:0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지금 어떤 위협이나 어려움, 어떤 시험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다 물러갔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기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거하면 능히 그 모든 문제들을 넘어서서 새로운 길, 복된 길로 나갈 수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두 가지 행사는 각각 영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물을 볼까요? 물은 곧 생존 수단이며 생명입니다. 우리야 1급수, 2급수, 3급수 등을 따지지만 사막에서는 따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물이 생명이라는 물의 소중함을 아는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의 6일 전쟁 때 유대인들은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 지대를 빼앗아서 영토로 합병해버렸습니다. 애굽의 거대한 지역 시나이 반도를 차지해 놓고도 이내 내어주면서 골란 고원만은 사수한 것은 이스라엘의 물탱크라고 할 수 있는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 행사에서 실로암 못의 물을 성전 제단에 길어다 부으면서 풍성한 물을 갈망했습니다.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와 나를 막론하고 그 무엇인가에 끊임없이 목말라 합니다.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갈증을 느끼고, 사랑 때문에 갈증을 느끼고, 때로는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에 무작정 목말라 합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0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너희가 마시고 또 너희 조상들이 마신 물은 먹어도 다시 갈증을 느끼게 하지만 내가 주는 물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향해 생명의 빛을 비추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의 빛을 비추는 자가 되고, 다음에 우리 김해삼일교회가 예수님을 그 머리로 모시고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겨울이 긴 캐나다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해가 짧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자주 햇볕에 벌거벗고 누워 햇볕을 쪼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북유럽의 경우 흐린 날이 많고 해가 짧기 때문에 갠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팅을 오래 합니다. 육체적 건강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하면 병들게 되고 그것이 오래 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게 될 때 우리가 주님의 빛을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비출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밝아지고 다음으로 교회가 밝아져야 합니다. 웃을 일이 없어도 웃어야 합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는데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많이 웃읍시다. 얼굴만 봐도 웃고, 이름만 불러도 웃고, 생각만 해도 웃읍시다. 서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모신 교회는 그렇게 웃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