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대의 국가 간 전쟁은 곧 그들이 섬기는 신들 사이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한 나라의 신은 패전 한 나라의 신을 이긴 것이라고 믿었고, 패전 한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이긴 나라의 신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바로 그런 일을 당하자 그들은 많은 갈등을 합니다. ①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신 마르둑(벨, 바람과 폭풍을 주관)에게 질 수 있는가? ②일찍이 솔로몬 성전 봉헌 때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왕상 06:13)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서 이방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버티는 사람들도 성전이 없고 성전 제사도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후 이스라엘)은 바벨론 신 마르둑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믿음의 단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세월이 흐르면서부터 믿음의 단은 황폐화되어 그 어떤 신앙의 역사도 일어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회복시키고자 제사장 출신 에스겔을 선지자로 불러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그 현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에스겔은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일에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
겔 01:0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 부시의 아들로서(겔 01:03), 당시의 세습적 전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B. C. 605~562)이 세계 패권자로 등장하였을 때로서, 이때 북 왕국 이스라엘은 패망한지 이미 오래 되었고(B. C. 721),
남 왕국 유다도 벌써 멸망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였습니다. 에스겔은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제사장이지만 바벨론의 세 차례 침략 중 2차 침략 때 25세의 젊은 나이로 많은 고관들과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포로 된지 5년 되던 30세에 그가 거주했던 그발강변(유프라테스 강에서 흘러나와 Nippur 남동쪽으로 거쳐 다시 Erech이라는 곳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합류하는 운하)의 델아빕에서 모두가 이제는 다 끝났다. 우리의 꿈도 사라지고 조국의 미래도 없다는 자포자기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22년간 예언사역을 하였습니다(겔 01:01~03:21).
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특별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 환상은 에스겔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한 골짜기로 갔는데 그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마른 뼈들이 가득히 쌓여 있고 거기서 하나님과 에스겔 사이에 신비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하되 주께서 아시나이다(03). 너는 이 모든 뼈에게 이르기를(04)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05).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왜 마른 뼈의 환상을 보여주십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 장차 회복해 주실 꿈을 가지게 함입니다. 꿈이란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에 찬 믿음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미래의 에너지인 셈이지요. 사람은 꿈을 통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이지, 만일 비전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여 마지막엔 어쩌면 허망한 생으로 마감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가슴에 어떤 비전을 품고 있습니까? 에스겔 선지자는 오늘 말씀 01절에서 성령님께 사로잡혔다고 증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의 이끌림으로 인해 확고하고 분명한 비전을 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나님의 놀라우신 목적을 여러분의 비전으로 품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영광이 되게 하십시오. 저는 우리 교회의 위치가 앞 건물에 가려 갑갑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넓은 가슴으로 좌우를 바라보면 땅은 넉넉히 있습니다. 또 앞 동의 건물 때문에 불편함도 많지만 앞 동 바깥쪽 부분을 매입하여 교회와 연결시키면 더욱 아름답게 활용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품는 비전은 앞 동 한 부분을 주시옵소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꿈을 품지 못함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꿈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2. 여기 마른 뼈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처지를 상징합니다. |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에스겔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본문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먼저 0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입니다. 오늘 설교를 이끌어 가는 아주 중요한 구절로서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심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또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 임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 뼈의 환상을 보게 하셨고, 에스겔은 그 마른 뼈들이 서로 결합되어 마지막엔 새생명을 얻게 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1절은 이 뼈들을 온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바벨론에 멸망당한 민족, 포로로 끌려와 고난 받는 민족, 내일의 꿈도 없이 절망으로 보내는 온 이스라엘을 마른 뼈들로 상징합니다. 그러면 그 뼈들의 상태를 봅시다.
0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아주 말랐더라. 그 죽음의 상태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말입니다. 말랐더라는 말은 작은 생명의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절망과 죽음의 상태로서 이는 당시 포로 된 이스라엘의 내적 정황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왜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같은 생명도 희망도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통치자의 부패와, 무능력과, 백성들의 우상 숭배 및 불신앙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처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마음대로 방황하며 지내는 가장 가까운 나의 이웃, 친척, 더 나아가서 혹 나 자신에 비유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유럽의 중세시대 미인의 기준을 들어보셨지요. 토실토실하고, 발목이나 팔이 굵고, 입술도 두툼하고, 얼굴은 둥글납작해야 했습니다. 바짝 마른 사람은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여 아예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까요?
요즘은 보기에 처량할 만큼 가늘고 쇄골이 확 들어나서 바싹 말라야 미인 대우를 받습니다. 오드리 헵번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위해서 살 빼는 약을 먹고, 살 빼는 운동도 하지만 요요현상 때문에 눈물겨운 전쟁을 합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비만이 모든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씬해야 미인이라는 미의 기준의 변화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아셔야 하는 것은 바짝 마르면 죽음을 앞당기기기 쉽습니다. 너무 깡마른 외형적인 미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저 생긴 대로 살면 되지 먹지 못해서 병들고 마른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본문 11절의 경우처럼 너무 말라서 소망이 없어지면 곤란합니다.
영적으로, 신앙적으로도 마른 뼈가 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른 뼈들의 세계에는 기도도 없고, 찬양도 없고, 감사거리도 없고, 감격도 없고, 생명도 없어요.
11절의 이 뼈들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말씀을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돌아보니 나는 지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상의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보다 육의 양식을 더 탐하는 영적으로는 죽은 뼈와 같은 자입니다. 하고 먼저 간절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영적으로 심히 말랐습니다. 믿음이 말랐고, 사랑이 말랐고, 감동이 말랐고, 은혜가 메말라 지금 마른 뼈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자라는 고백도 하여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마른 뼈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영의 살을 입혀주소서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영의 건강을 주소서 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3.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면 살아납니다. |
0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생기(*루아흐). 생기란 바람, 영, 성령, 숨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불어 넣으셨던 생기(*네솨마, 창 02:07)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의 생명에 해당하는 생기와 견주는 겁니까? 예, 이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회복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생기가 없으면 그 사람은 공동묘지에 있는 주검과 다를 바 없는 흙덩어리이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영적 생명이 없으면 이는 불신자와 다름없습니다. 문제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생기가 들어가도록 명령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명합니다.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시는 생기에 의해서 생동감 있는 큰 군대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아멘입니다. 누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으며, 누가 소망과 꿈을 잃어버린 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자 있습니까?
누가 주님의 일에 다시 일어서는 군대가 되게 할 수 있습니까? 오직 나의 주님 되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절망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탄의 무덤에서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기로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생기가 없는 미인이라면 이는 백화점에 서 있는 마네킹이며, 생기가 없는 영웅이라면 이 역시 동상 아닙니까? 흙으로 만든 아담도 생기로 인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가 들어갈 때 힘 있는 군대가 되었듯이(0) 우리 모두에게 생기 운동, 영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 심령과 내 가정과 우리 김해삼일교회에 신령한 바람, 성령님의 바람이 들어와야 하며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힘을 주시고 살려 주셔야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말 자주 들어 보셨지요. 물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예, 저는 마지막에 이렇게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생기를 잃으면 영원까지도 잃는 것이라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아무리 겉을 번지러하게 치장하였어도 생기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는 곳에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선 말씀을 듣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심령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치유되는 역사,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떤 나라에서 여행자가 목이 몹시 말라 콜라 한 병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못사는 나라라도 콜라는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입니다. 주인이 들고 온 병은 콜라병인데 그 내용물의 음료 색은 콜라 특유의 검정색이 아니라 주황빛의 환타색 아닙니까?
그래서 여행자가 아니 콜라 색이 왜 이렇게 주황색입니까? 하고 물으니 예, 원래 그렇습니다. 콜라 병을 들고 뚜껑을 본 여행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병뚜껑은 세븐업인데요? 그러자 그 주인이 하는 말이 우리나라는 병이 콜라병이면 다 콜라라고 한답니다.
모양만 크리스천인 신자에 빗대어 나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문제도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단 하나 하나님의 백성인 저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것, 그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부터 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병 모양이 콜라병이면 다 콜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무조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노예의 처지입니다. 이제 소망이 없다고, 이제 끝장났다고 포기를 한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하나님은 시작하십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며 인간이 포기할 때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인간이 항복할 그때 하나님은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는 마네킹처럼, 마른 뼈다귀처럼 아무 능력도 없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제는 돌아서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12절 합독합시다.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end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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