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의 저자 릭 워렌 목사의 아들 매튜 워렌(27)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릭 워렌 목사가 시무하는 새들백밸리 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매튜 워렌은 특별히 다정하고 친절한 성품의 청년으로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약 10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서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며 매튜의 자살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릭 워렌 목사도 교회 관계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서 사고 당일 아내와 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들이 순간적 절망에 휩싸여 자살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약시대의 사울도 온 백성의 지지를 받고 왕으로 등극했지만 은혜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무너지고 마침내 불행한 인생을 맞고 말았습니다(삼상 31장).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누구나가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혜를 매일매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은혜의 삶을 날마다 누리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신령한 생활에서 끊어지는 삶, 어쩌면 안타까운 삶으로 그 인생이 마무리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은혜의 삶을 잘 유지했습니까? 앞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잘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읍시다. 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
히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이는 자신의 불신앙적인 행동 때문에 어떤 신령한 혜택으로 부터 제외됨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함에도 자신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거나 포기하는 것을 표현하는 문구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또 도움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철학적 용어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난 죽어도 남의 도움을 안 받고 살아간다. 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지극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며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아직도 인생의 철이 들 든 사람 아니겠습니까? 조금 된 것, 또는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지금의 자기가 있기까지 자기를 도왔던 수많은 도움의 손길들을 미처 보지 못한다면 주위로부터 눈총 받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알고 보면 사람은 아주 큰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주 작은 미세한 소리도 듣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대단히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그런 뜻이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부족해서 외부의 도움 없이는 한시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약 0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도움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도움을 찾기 위하여 이곳저곳을 막 다닙니다. 애써 찾아다녀 보니 그런 도움이 세상 어느 곳에 있던가요? 때로는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다가가 보면 신기루 현상과 같은 것일 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말씀이 레 21장에 나옵니다. 그곳에 보면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성소에 들어가는 규례가 나오는데 그때 제사장도, 가지고 들어가는 제물도 흠이 없고 깨끗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가는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구약시대 사람들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로 나와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자리에 이르기만 하면 됩니다.
시 121:0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0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2. 꼭 필요할 때 받는 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
호 14:0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이슬과 같으리니. 이슬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수증기가 밤 동안에 식어서 물체의 겉면에 물방울이 되어 붙어있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서쪽 지역은 지중해와 접하고 있어서 항상 대기 중에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일교차로 인해 수분이 많은 이슬이 비가 오지 않는 동안 지면을 듬뿍 적셔줍니다. 식물이 한낮의 더위를 버텨내는 것도 이런 이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슬은 년 중 6개월 정도 비가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절대 필요한 생명수이며, 이 이슬을 영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은혜로 상징합니다.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백합화와 백향목은 성도의 아름다움과 미래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꼭 필요할 때 아름답고 든든함과 견고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적절한 은혜, 꼭 필요한 은혜를 입으면 이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믿음의 길을 잘 가려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힘을 반드시 힘입도록 하십시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에 로맨 털스키(Roman Tulsky)라는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돌아가려 할 즈음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털스키는 조국을 위해 싸우기로 하고 비행기를 몰고 조국으로 돌아가다 이상이 생겨 그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수리를 마치고 출발하려 할 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독일의 나치에 쫓기고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털스키는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비행기에 태우고 폴란드로 갔습니다. 그 후 털스키는 나치의 세력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확산될 때 폴란드 조종사로 독일과 싸우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털스키의 비행기는 포격을 맞고 추락을 하게 됩니다. 낙하산으로 탈출은 하였으나 뇌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얼마 후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의사가 그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저를 아시겠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비엔나에서 받았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그런데 오늘 당신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뇌신경 전문의사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가 전 날에 구해 주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 스코틀랜드 육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털스키를 의료진이 포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와 수술을 하고 그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적절 할 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일생동안 끊임없이 믿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며 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녹녹하지를 않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를 실족하게 하거나 시험에 들게 하는 요소로 다가오기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 믿다가 낙심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나는 오늘부터 낙심하니 그렇게 아십시오. 이렇게 광고를 하고 낙심하는 줄 아십니까?
아니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방심하다 그대로 무너진 겁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제대로 해 보려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 꼭 필요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세계 선교의 기초를 놓은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모든 고난의 현장들을 무난하게 이겨내었던 그 힘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어떤 능력이나 지혜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순간 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받습니다. |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는 자유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와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제한적으로 만나주셨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를 힘입은 성도는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주셨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어찌하여야 합니까? 여기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했는데 이 말의 의미를 우리가 잘 새겨들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갈 것이니라. 뜻은 가까이 다가가다. 입니다. 상대를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만질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깝고 친밀하게 접근한다는 말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겁니까?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찬양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기도의 보좌 앞으로, 예배의 보좌 앞으로, 찬양의 보좌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의 보좌를 떠나지 않도록 각자가 순종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보좌, 예배의 보좌, 찬양의 보좌가 없이는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설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도움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신앙의 형식을 버리고 전심을 다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기도와 예배와 찬양의 보좌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나아간다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로서 계속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즉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크게는 하늘나라의 보좌요, 좁게는 성전 혹은 교회를 뜻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교회로 나아가는 것임을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늦게 와서 설교만 듣고 축도할 때 빠져나가는 살짝 교인이 있습니다. 헌금할 필요도 없고, 다른 예배나 모임에 참석할 필요가 없던 그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고의 유익을 구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예배는 드리니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고, 물질이나 시간도 손해 보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한 이 분이 중병에 걸려 입원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자 하나님께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주일날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왜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성전에 와서 얼굴만 살짝 비치고 가지 않았느냐? 그래서 나도 병실에 가서 살짝 얼굴만 비치고 나온 것뿐이란다. 너는 항상 바빠서 내게 드릴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네게 만큼은 바빠서 안수할 시간이 없구나.
지나간 시절 죄 중에 거하면서 인간적인 내 모습 이대로, 불신앙과 게으름과 태만으로 얼룩졌던 내 모습 이대로 살았지 않습니까? 진실하지 못했고 성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 이대로, 거역했고 불평했던 내 모습 이대로, 미워했고 질투했고 분쟁했던 내 모습 이대로, 오만했던 내 모습 이대로 살았지 않습니까? 이제 이 시간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 분의 은혜를 갈망합시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합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존을 도우시며, 죄와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영광을 나타내게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한 유명한 강사 목사님이 시골 지역의 연합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집회를 마치고 헤어질 때쯤 할머니 한 분이 치마를 들 춰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강사 목사님께 주면서 하는 말이 그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제가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가시다가 담배라도 한 갑 사서 피우세요. 하더랍니다. 은혜가 뭔지를 모르니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하며 말을 하는데 어떤 분들은 은혜라는 말을 오해를 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었고, 마귀를 좇아 살던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겨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고, 때를 따라 돕는 좋은 것을 계속 주시니 이런 일이야말로 은혜 아닙니까?
어떤 분이 오늘 설교가 참 은혜로웠습니다. 하고 인사해서, 오늘 무엇이 은혜가 되던가요? 하고 물으니 너무 웃겨서 은혜로웠습니다. 설교가 아주 짧고 쌈빡하게 끝내서 은혜로웠습니다. 모두 은혜라는 말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무슨 단어이든지 간에 그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령한 것으로서 심령에 위로와 평안이 뒷받침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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