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추운 겨울날 저녁에 연탄을 아궁이에 피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 밤중 쯤에 너무 추워 부엌에 가보니 아궁이에서 그토록 잘 피던 연탄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분명히 세를 든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교회 다니는 집사가 싸울 수도 없고 해서 참고는 다음날 저녁에 잠을 자는 척 하고 살짝 나가보았습니다. 역시 생각대로 건너 방 부인이 잘 피고 있는 연탄을 살짝 빼내 가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뛰어나가 잡을 까도 했으나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간신히 진정하여 참고 들어왔습니다.
이런 일이 무려 두 주간이나 계속 되었는데 한 날은 건너 방 부인이 찾아와서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 하고 묻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사실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점쟁이한테 물었더니 누구와 실컷 싸우면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해서 싸움하려고 연탄을 고의로 빼내 갔습니다. 그런데도 도저히 싸움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제 이해해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그녀에게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 가정을 구원시켰다고 합니다.
인내심이란 이만큼 중요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롬 08:18) 확신하는 사람만이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가장 귀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내하는 믿음일 것입니다. 만일 인내하는 믿음이 없다면, 오래 참는 신앙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삶의 뿌리가 흔들려 낙심의 자리에 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각자 주어진 십자가의 사명을 인내로서 감당하십시오.
오늘 말씀은 시험 많은 두아디라교회 안에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들에게 우상의 세력들, 이단의 사상들을 물리칠 수 있는 인내의 힘을 잘 유지하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1. 두아디라교회의 지리적 위치 및 문화, 종교의 배경입니다. |
지리적으로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약 64Km에 위치한 조그마한 공업도시로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입니다. 두아디라라는 지역 자체가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며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입니다.
옛 이름은 펠로피아(Pelopia) 혹은 유힙피아(Euhippia)이며, 현재는 아킷살(Akhissar)로 불리는데 주님께서 이처럼 초라한 도시에 위치한 두아디라교회를 기억하신 이유는 외적인 조건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믿음의 요소는 더 중요함을 가리키기 위해서 입니다.
정치적으로 소아시아의 수도 격인 버가모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두아디라가 존재하는 이유는 버가모에 이르는 카이쿠스 강 유역 입구를 방어하는 제 일차 방어선이라는 수비대 역할에 두고 있었습니다. B. C 290년에 설립된 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영향으로 다소의 발전을 하였으나 B. C 19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우스(태양신)의 아들 아폴로(Apollo)의 신당이 두아디라에 있으며 아데미(Diana) 신전, 삼바다(Sambatha, 무당) 신전도 있는데 그 중에 점성술이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상인들이 모이는 상업도시이며 또한 공업도시로서 염색업과 모직 업이 성행하여 동업조합 염료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이 도시의 구성원들도 직공들과 군인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성도들도 거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교회 설립의 배경은 아마 짐작 건데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행 16:11~15) 빌립보 지역에서 전도하여 믿게 된 자색(紫色) 옷감 장사 루디아가 고향에 대한 전도의 열정과 물질적 배려를 함으로서 설립되었을 것이라는 설입니다.
2. 두아디라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두아디라 지방에서 숭배하던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세벨(20절)과는 견줄 수도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냅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이 외적으로 태양신이나 황제 예배, 아데미, 삼바다 등의 우상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속으로는 이미 우상과 미신의 요소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수사관과 심판자의 모습으로서 징계하시겠다는 말씀인데 즉 주님 앞에서는 어떤 요소든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그 눈이 불꽃같고 라는 말은 이세벨의 사상을 모방하고 있는 모든 속셈을 아신다는 말이며 이세벨의 유혹으로 방황하는 영혼들까지도 다 파악하셨다는 뜻입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청동 업이 발달한 사회였으므로 성도들은 이런 주님의 모습이야말로 오늘날에 있어서 거울 앞에 물체를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의미로 느꼈을 것입니다.
3.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다섯 가지의 목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사업.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하는 말씀으로 교회가 해야 할 사업들 즉 구제와 봉사와 선교 등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②사랑.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규범으로서(마 22:37~40; 고전 12:31~13:03) 에베소교회는 이것을 갖추지 못함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처음 사랑을 버림).
③믿음.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 되는 삶으로서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우선으로 강조한 듯합니다.
④섬김.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서 대단히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에 속합니다.
⑤인내.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4번째 열매로서(갈 05:22)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버팀목입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에베소교회와는 정 반대되는 현상으로(04절) 두아디라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두아디라교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교회이고 주님도 이처럼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발전하는 교회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 김해삼일교회도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발전하여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정체와 퇴보를 좋아하지 않으시며 오직 일하는 교회, 범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힘이 넘치는 교회를 기억해 주십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십시오. 좋은 모습으로 시작하였다가 나중은 추한 모습으로 매듭지어짐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대단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갈 03:0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구약 성경에서 이세벨은 이방 나라 시돈의 왕녀로서(왕상 16:31)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정략적 차원에서 결혼을 함으로 그녀가 섬기는 바알 신이 이스라엘에 도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간 왕래를 하다 보니 이스라엘은 갑작스럽게 경제적 번영과 부를 누립니다.
그러니 아합 왕과 그 백성이 이세벨에 의해 매료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을 기회로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정치에 일일이 관여하여 마침내 하나님 대신 바알 신을 섬기게 하는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야 선지자가 이 이세벨을 두고 예언하기를,
①개가 그 죽은 시체를 핥으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1:23). 과연 그대로 성취되어 예후로 말미암아 창문에서 던짐이 되어 떨어져 죽었고(왕하 09:33),
②그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멸망시키리라고 하였는데(왕상 21:21) 과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왕하 09:06~37).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두아디라교회에 있는 그 여성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지만 아마 기득권층이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이 여인이 대단한 매력과 정열로서 교회를 이끌고 봉사하였음을 짐작케 되는데 그 사람은 영지주의(그노시스)를 신봉하는 사람 이었을 것입니다.
영지주의란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집단으로서 우주만물의 이치를 이원론 사상으로 보는 주의입니다. 즉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전제 아래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악한 물질인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실 수 있는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육체로 강림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에 다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사상입니다(假現說).
구원을 얻으려면 신비한 지식을 터득해야 하는데 자신들만이 그런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그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경험해야 하고 또한 죄를 알기 위해서는 죄에 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이런 사상들이 성도들을 우상숭배와 음행에 몸을 던지게 하였습니다.
이는 옛날 이세벨 왕비의 술책과 동일한 방법으로서 이렇듯 이세벨과 유사한 인물이 두아디라교회에서 버젓이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우상 앞에 차려놓은 제물을 먹게 하며 또 하는 말이 영은 거룩하나 육은 멸하는 것이요 속 된 것이니 아무렇게 향락에 몸을 던져도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아디라교회는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속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신앙의 분별력을 잃었고, 우상 제물을 먹음으로 인해 영적 간음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도다.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졌지만 불행하게도 이세벨은 주어진 그 회개의 기회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22,23).
창 03:09,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며,
창 04:09, 하나님은 가인의 범죄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며,
창 06장, 하나님은 노아홍수 심판 직전 120년간이나 인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며,
눅 22:60~62,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였을 때는 닭 울음소리를 회개의 기회로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①어찌하여 이세벨의 세력을 용납하고 따르느냐? ②어찌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죄 중에서 나오지 않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5. 두아디라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징계하십니다. |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볼지어다. 는 감탄사로 단호한 심판의 경고에 앞서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의 주의를 먼저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①22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죄로 인한 심판과 관련되어 우상 숭배를 위한 상이나 음행을 위한 침상이 병상으로 바뀌어 짐을 암시합니다. 실지로 소아시아의 비문들은 음행의 결과로 질병에 걸려 죽은 사실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②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큰 환난 가운데 던짐을 받는 사람은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라는 말은 이세벨과 뜻을 같이하여 우상 숭배에 빠진 모든 자들은 큰 환난 가운데 던진다고 했는데 이 말은 병상에 던져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③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그의 자녀라는 말은 이세벨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는 자로서 이런 심판은 엘리야를 통해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형벌입니다. 왕하 09:06~10:11절에 의하면 아합 왕과 이세벨 그리고 그의 아들들 70명이 무참히 죽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세벨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이와 같은 무서운 심판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해 줍니다.
④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모든 교회는 본 서신이 특수한 상황 아래 있는 교회에 보내졌지만 보편적인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본 절은 주님께서 인간의 내적 생각과 사상과 감정 모두를 알고 계시며 두아디라교회 성도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⑤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너희 각 사람이라는 구절은 심판이 개개인에게 내려진다는 말로서 주님은 인간의 그 행위를 따라 일일이 보응하심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6. 주님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이기는 자와 ~ 지키는 그에게.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의 공통적인 형식으로 주님의 권면을 듣고 순종하는 승리자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통치자적 개념의 첫 번째 약속입니다(시 02:08,09).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처럼 세상 끝에 그리스도인들도 그 권세에 참여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본 절은 시 02:09절의 인용으로 철저하게 정복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나타냅니다. 이는 주님께서 재림 시에 행하실 권세가 악에 대해 심판함과 동시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임을 약속해 줍니다.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주님께서 승리자에게 주신 두 번째 약속으로 여기서 새벽 별에 대한 해석은 계 22:16절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합니다(눅 23:43).
성도 여러분, 새벽 별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단어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금까지 이 어두운 세상을 무엇을 보고 살았습니까? 혹시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살았습니까? 아니면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며 살았습니까? 지금부터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소금과 빛 된 삶을 살도록 굳게 결심을 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은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이 처음에 가졌던 주님에 대한 참된 진리와 소망과 특권을 가리킵니다. 내가 올 때까지라는 말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날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의 날을 의미합니다. 여기 굳게 잡으라는 말은 붙잡은 진리를 인내로서 변치 말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계속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개체 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귀는 성령님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냅니다(07, 11, 17, 29; 03:06, 13, 22).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지요. 귀를 가졌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영의 귀가 어두움인줄 아십시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인내의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은 진정 우리가 변화된 삶을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인내로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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