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스 치즈로 유명한 미국의 크래프트 회사가 있습니다. 설립자 크래프트(James L. Kraft)는 가난한 시절을 보냈지만 신실한 믿음으로 회사를 키우는 중에 날마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수많은 종업원들이 생겨나고 엄청난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급성장하던 회사가 갑자기 운영이 어려워지고 적자가 나더니 생산라인은 하나씩 둘씩 멈추기 시작하는 겁니다. 거기에다 종업원들도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하자 어찌 할 바를 모르던 사장 크래프트는 가까운 친구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회사에 생기고 있다고.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솔직히 자네 회사가 망할 줄 알았네. 하나님께서 자네 회사에 복을 부어 주실 때 오히려 자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 했지. 회사가 급성장한 이후로 주일 한 번 제대로 지킨 적이 있었는지 한 번 돌이켜 보게나. 급성장한다고 좋아만했지 않은가?
그리고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네 회사는 멸망의 길로 서서히 달리고 있었던 것일세.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고 돌아온 크래프트는 결국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두 가지를 과감하게 결단을 했습니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자. 둘째, 내 수입의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후 크래프트 치즈회사는 다시금 회복되면서 총자산이 54조나 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예,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런 회복의 삶을 살 수 있고 역전 드라마 같은 은혜의 삶, 전화위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슬 같은 복된 삶을 소개합니다. 함께 은혜의 삶으로 들어가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보이지 않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
0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중동지역 이스라엘에서는 10월부터 4월까지 약 6개월 정도 비가 내립니다. 이때를 우기라고 하고 4월 이후부터는 거의 비가 없기 때문에 건기라고 합니다. 또 10월경에 시작되는 비를 이른 비, 4월경의 끝나는 비를 늦은 비라고 부릅니다.
농부들은 이른 비가 올 때를 기다려 씨를 뿌리고, 늦은 비가 내리고 나면 곡식이 여물어 추수를 하게 되는데 비가 없는 이스라엘 지방은 대단히 건조하고 메마릅니다.
그럼 비가 없는 6개월 정도의 메마른 기간을 어떻게 식물과 초목이 자랄 수 있습니까? 바로 이슬 때문입니다. 이슬이 무엇입니까? 공기가 식어 이슬점 이하로 내려 갈 때 수증기가 작은 물방울이 되어 물체의 표면에 맺히는 것으로 이 이슬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물질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슬이란 신앙적인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리시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여러분은 이슬이 언제, 어떻게 내리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또 비가 내리는 것처럼 육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까?
이슬이란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밤에만 내리는 자연의 섭리로서 이는 영적 감각으로 볼 때 분명히 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라고 말씀 하셨는데 바로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때에 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내 능력으로 돌릴 때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있는 것일까? 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임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도 가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눈으로 보려고 하기 전에 먼저 믿음으로 체험하면서 느끼고 누려야지 다른 방법으로 느끼려 하면 미혹의 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민 11:0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이슬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살 수 있게 한 생명의 양식인 만나도 품고 있으며, 만나는 보이지 않게 내리는 이슬 속에 덮여 있습니다. 즉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기도하는 중에 임하는 것이어서 우리의 영적 감각이 살아 있을 때 이런 은혜를 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역경의 밤에서는 평안을, 환란의 밤에서는 평정을, 시험의 밤에서는 감당을, 슬픔의 밤에서는 새로운 기쁨을, 질병의 밤에서는 치료를 누리게 합니다.
신 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2.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
0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이제부터는 보이지 않게 내리던 하나님의 은혜가 07절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슬이 내린 것을 어떻게 압니까? 아침 풀잎에 맺혀있는 물방울을 보고 압니다.
은혜는 보이지 않으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타난 결과로서 하나님의 열매를 확인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예배당의 건축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어진지가 벌써 6년째입니다.
이런 결과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가 임한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이슬처럼 임할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시되 이 은혜가 중단되지 않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심령에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이 나의 삶을 견고히 하는 열쇠임을 믿으십시오. 믿으면 믿음대로 됩니다. 믿음으로 살면 삶의 결과에서 은혜의 열매가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데는 거기에 따르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회개의 생활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회개는 방향전향이요 변화로서 주님 편에 서서 내 삶의 목적을 바꾸어 은혜의 세계로 가는 동작이며, 이슬과 같은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어떤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다들 구경만 하고 서 있는데 한 아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물에 빠진 아이를 극적으로 구조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구조를 하였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아이가 대답하기를, 저 아이가 제 스케이트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라고 답을 합니다. 예, 우리도 이 아이처럼 세상적인 보이는 것들만 구하는 삶을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백과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라는 고백이고, 하나님, 이슬과 같은 복을 우리에게 끊어짐 없이 주소서 라는 소원입니다.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을 구하는 이런 은혜의 삶에 우리의 믿음의 에너지를 투입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국의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이 전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기대 수명, 삶의 만족도, 환경오염지표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했습니다(2010년). 그 결과 중앙아메리카 소국 코스타리카가 1위로, 2위 베트남, 3위 콜롬비아, 4위 벨리즈, 5위 엘살바도르, 일본 45위, 한국 63위, 미국 105위 순위였습니다. 신경제단이 발표한 행복지수는 GDP(국내총생산) 같은 경제의 부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의 평균 수명은 약 79세로 상위 그룹에 속했으나 삶의 만족도와 환경 발자국은 중간 점수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결과로 행복지수의 date는 GDP 같은 경제의 부나 소비수준과 관계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불안정 속에 있습니다. 지정학으로, 정치로, 경제로 많이 흔들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 임하면 그때부터는 나로 인해서 내 삶의 질도, 우리나라의 국가 질도, 내 주변의 삶의 질도 높아져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3. 나도 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
0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이슬 같은 은혜는 우리에게 매일매일 내려주시며 매일 매일 햇빛을 주시는 것처럼 이 은혜로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은 5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는 혹독한 여름철, 뜨거운 태양열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지속됩니다만 식물이 죽지 않고 잘 버텨 냅니다.
어떤 이유로 해서 잘 버티느냐고요? 비록 한낮의 더위로 완전히 푹 시들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지만 밤마다 듬뿍 내리는 이슬 때문에 소생하는 겁니다. 우리도 때로는 믿음이 다운되어 불신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푹 입음으로 인해 믿음의 소생함을 입게 됩니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능력을 이슬에 비유하는 말씀입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에 농작물을 위해서는 이슬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 은혜가 고갈 될 때는 역시 이 빛난 이슬이 임하여야 합니다. 안개나 비는 그것이 계속될 때 농작물에게 해로운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나 이슬은 식물에게 유익만 주고 해를 주지 아니하는 대단히 중요한 생명수 입니다.
이슬은 소낙비처럼 요란하게 내려 잎을 상하게 하지도 않고, 모든 식물에 골고루 생기를 주듯이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만 안겨줍니다. 그러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결과가 어떠합니까?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자는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고, 레바논 백향목 같은 향기가 그윽할 것이라고 말합니다(05,06). 레바논이란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이곳은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으로 형성된 지역으로 백향목, 잣나무, 소나무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 백향목은 레바논에서 생산되는 나무가 가장 크고 견고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징이 있다면 좀이 먹지 않는 나무입니다. 또한 건축 자재로도 많이 쓰였으며 뿌리도 깊고 넓게 사방으로 뻗다 보니 아무리 광풍이 몰려와도 넘어져 뽑히지를 않는 나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서 말씀을 잘 먹고 신앙이 굳건하여 믿음의 가지와 믿음의 뿌리를 사방으로 잘 뻗쳐 나갈 때 백향목 같은 성도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
훠니 제인 크로스비(F. J. Crosby) 여사가 아름다운 신앙의 마음으로 살면서 쓴 수많은 찬송 시 가운데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가 있습니다. 그녀가 점자 성경으로 시편 57편을 읽다가 감동을 받고 지은 찬송인데 이렇게 시작됩니다.
①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훠니 제인 크로스비, 억울하게 남의 실수로 눈이 멀어 평생 맹인이 된 그 가냘픈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맞으면서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피곤치 않다고 노래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상처투성이 일지라도, 우리가 죄인 중의 괴수일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메마른 땅일지라도, 우리의 육신이 깨어진 옹기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지내놓고 보니 나야말로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아닙니까? 환란의 인생길에서도, 고통의 밤에서도, 위기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로 지내왔습니다. 모세는 이런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출 19:0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이 혹 환난의 밤이라고 여겨집니까? 밤은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가장 좋은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의 밤을 만납니까? 신유은사를 주실 것이며,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의 밤을 통과한 자에게는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물질의 시험의 밤을 통과한자에게는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창 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즘은 좋은 스팀다리미가 있어서 다림질하기가 무척 편합니다만 제가 어릴 때 어머니의 빨래 다리는 시절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때는 빨래 감을 어떻게 했을까요? 입으로 물을 품어서 눅눅하게 하여 다리든지 아니면 저녁 즈음 마당의 빨래 줄에 두 시간 정도 걸어 놓았다가 눅눅해지면 걷어다 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밤에 내리는 이슬을 맞혀서 눅눅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는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이 은혜는 받는 자만이 알 수 있고 받는 사람끼리는 통합니다.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받는다 싶으면 내 모습을 옆의 분에게 물어 보십시오. 또 은혜 받는 옆의 분 표정도 보십시오. 무척 아름답습니다.
고후 06:0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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