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이제는 거의 일반화 되었습니다. 편리한 기능이 얼마나 잘 갖추어 졌는지 상상을 초월하죠. 컴퓨터를 손에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가끔씩 다운이 됩니다. 제가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죠? 좀 성가시지만 뚜껑을 열고 배터리를 다시 끼우는 번거로운 일을 함으로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 있어서 우리의 신앙상태가 배터리 방전되듯 소진되어 버리면 그때는 문제가 좀 심각해집니다.
자신의 신앙 가치가 다운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에 차치하고라도 그 영적 파장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실망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다운이 발생해서는 아니 되겠지만 더러는 발생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까? 사탄의 역사 때문에, 죄 때문에 세상적인 욕망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신앙인의 삶이 어떠해야 합니까? 영적상태가 충만하고 활기가 있어야 합니다만 반대로 심령이 메마르고 위태위태한 신앙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찌해야 합니까? 흔히 말하는 영적 재충전, 재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저는 이런 영적 재충전을 받기 위한 일들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모두가 영적 무장 해제된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예수님께서 영적 무장이 해제되어 비틀거리는 세상을 진단한 말씀입니다. 지금 세상은 끝없이 방탕하고 타락하여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비틀거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염려거리가 뭘까요?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비틀거리게 한다는 점입니다. 방탕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아도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게 한다는 말이에요.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일정기간 동안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지배를 하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신령한 눈으로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벧전 05:0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를 비틀거리게 하는 세상, 모두가 한결같이 비틀거린다고 했으니 이 시대야말로 가치관의 혼돈 시대, 영적 무장 해제의 시대가 아닙니까? 비틀거리는 것의 정점(頂點)에는 향락이 도사리고 있고, 또한 비틀거리는 자리의 귀빈석을 알고 보니 바로 자신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혼돈되는 곳, 비틀거림이 있는 곳에는 물질 만능주의의 사고와 외모를 다듬는 일들이 지배하다보니 영적인 요소들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2월이니 곧 춘계방학이 오겠지요? 겨울 방학 중에 외모를 다듬지 못한 분들이 다시 각종 성형 수술에 도전하기 위해 성형외과 병원은 사전 예약에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주로 쌍꺼풀 수술, 코뼈 세우는 수술, 가슴확대 수술, 주름살 제거 수술, 도톰한 입술 수술 등입니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갖기 위하여 온갖 고통과 물질과 희생을 기울이는데 좋은 일이죠. 저는 이런 일 하는 자체를 꼭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온 육체를 특별한 기형의 경우가 아닌 이상 자꾸 바꾸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반 찬성하지 않고요.
왜냐하면 창조 원리에 입각하여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하여 우리의 형질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고 여자고 간에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아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십시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흔들리고 비틀거린 지 오래입니다. 사람의 외모만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사회로 전환되었다는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영혼의 유익과 성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지나치게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세는 분명히 극복해야 할 요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가치관에 대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마 05:13,14)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만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비틀거리는 세상, 혼돈 된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또 혼돈의 세계를 정상의 자리로 돌릴 수 있는 겁니다.
2. 세상을 이기려면 먼저 영적 재충전을 받아야 합니다. |
엡 0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비틀거리는 세상, 혼돈 된 세상에서 영적 재충전의 요소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아주 충만히 말입니다. 영적인 힘이 소진되니 무기력하고, 신앙의 권태기가 오고, 교회생활에서도 아웃사이드 되는 것 아닐까요? 사도 요한은 비틀거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비결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남의 머리의 지혜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예, 건강이 제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건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믿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강건해야 하는데 이는 육신의 건강이 아니라 심령의 건강 말입니다.
요삼 01:0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지금 세상은 끝없이 방탕하고, 타락해서 그 비틀거리는 모습을 우리가 영안으로도 보고, 육안으로 능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인은 우선적으로 내가 먼저 영적 재충전을 해야 하는데 영적 재충전을 하는 동안 우리와 세상은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을 달리 영적인 씨름이라고도 합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성도 여러분, 영적 재충전의 힘이 어떠한지 아십니까? 늘 깨어 있어서 영성을 일깨우는 사람은 느낄 수가 있고, 체험할 수가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세상은 생존경쟁 아닙니까?
경쟁에는 힘이 없으면 능히 이기지 못하잖아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존경쟁만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영적 전투, 살벌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비틀거리는 세상 한 가운데서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계속 하고 있는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이 영적 싸움은 졸업도 없습니다. 그 힘의 능력으로 인하여 마침내 승리할 수 있을 뿐 이 세상을 마치는 날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도무지 이 싸움을 피할 수가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싸움이기에 영적인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신앙의 싸움을 막 시작한 새가족입니까? 주님 안에서 강건하십시오. 신앙의 싸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노련한 성도입니까? 주님 안에서 무장하십시오. 영적인 싸움, 사탄과 싸움에는 휴전이 없습니다. 영적 재충전은 영성 고갈을 회복하는 길이요, 영혼을 윤택하게 하는 생기가 들어오는 것임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영혼이 잘 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내 지식이나 내 지혜로 압니까? 내 경험으로 압니까? 세상적 방법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된다고 했으니 영적 재충전을 위해 적당한 날 잡아 한 번 산으로, 기도원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뿌리를 뽑으시기 바랍니다.
3. 영적 재충전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의 영적 싸움의 무기는 사람의 지식과 힘, 권력과 경험이 아닙니다. 고후 10:04절에 보면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능력 가지고 사탄과의 싸움을 하는 겁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는데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전신갑주는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입는 갑옷으로서 앞뒤로 감싸는 옷에다 투구와 방패와 창 칼로 무장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영적 싸움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장비를 로마 병사의 전투복에서 착안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표현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진리(眞理)의 허리띠를 띠고.(14)
고대의 그림들을 보면 거의가 로마의 병사들은 치마와 비슷한 바지(?) 같은 것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옷의 특성상 허리에 띠를 띠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띠가 없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그래서 싸우러 나갈 때에는 제일 먼저 허리띠를 착용했던 것입니다.
②의의 호심경을 붙이고.(14)
로마의 병사들이 가슴과 등에 대던 단단한 고무나 쇠 철판 따위를 말합니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방탄복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③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평화이신 주님 안에서 구현된 것으로 하나님과 수직적, 인간과의 수평적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이 이제는 허물어져 우주적 통일성을 이룬 만큼(엡 01:10; 02:14) 핍박하는 세력에 대하여 적대관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나가라는 메시지입니다.
④믿음의 방패를 가지고.(16)
방패. 온몸을 가릴 수 있는 긴 방패이고 이어서 불화살이 나오는데 고대 전쟁에서 불화살을 막으려면 그 무엇보다도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전쟁은 상당한 지장을 받습니다.
⑤구원의 투구(鬪毆)를 쓰고.(17)
투구란 오늘날의 철모와 같은 역할을 하는 병기로서 병사들이 투구를 쓰는 이유는 생명과 같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투구를 쓴다고 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⑥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7)
전신갑주의 6가지 병기 중에서 공격을 위한 무기는 유일하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의 검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히 0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성도들은 영적 싸움의 대상인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먼 곳에서 전투를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 바로 나의 심령, 나의 가정, 나의 사업장, 나의 일터에서 나와 내 가족을 상대로 벌이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찾아올 때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요? 무시무시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만화나 영화의 모습에 나오는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하고, 아주 그럴듯한 모습으로 웃음을 띠고 찾아옵니다.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엄마가 5살 난 작은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한참 있다 아들이 엄마, 초콜릿 쿠키 좀 사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엄마가 말합니다. 내가 묻지도 말라고 했지? 절대 안 돼. 아이는 할 수 없이 수레에 도로 주저앉았습니다. 계속 통로를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구입할 품목을 찾다가 다시 쿠키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또 말합니다.
엄마. 제발 이번만 초콜릿 쿠키 사주시면 안 돼요? 엄마가 또 단호하게 말합니다. 안 된다고 했지? 더 이상 그 얘기 꺼내지도 말아. 너무 단호하게 말하니까 아이는 기가 죽어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쇼핑이 거의 끝나고 계산대로 갈 때 아이는 마지막 기회라고 느끼고는 계산대에 들어서기 직전에 수레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엄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초콜릿 쿠키 좀 사주시면 안 돼요? 그 장면을 보고 계산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박수까지 쳤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귀엽다고 여기저기에서 초콜릿 쿠키를 사주어서 그때 아이는 23박스의 쿠키를 얻었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했던 5살 아이가 이긴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도 이런 정도의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리면서 영적 무장과 영적 충전을 원한다면 은혜의 사람 믿음의 성도로 무장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며, 나들이를 하면서 한가하게 노니는 사람이 아닌 분명히 영적인 긴장감으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딤전 0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싸움은 잠깐 출전해서 쉽게 이기고 금세 잊고 마는 한나절의 운동 경기가 아니라 마귀와 그 수하들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영적 싸움은 이번에 졌으니 다음에 이기면 되지 하는 운동 경기가 아니라 이번에 지면 안 되고, 다음에도 지면 안 되는 싸움입니다.
요일 05:0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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