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 먹을거리를 놓고 어떻게 하면 잘 먹을까에 대하여 목숨을 거는 것처럼 사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라도 그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 속된 표현을 하자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은 질병이 생길 때 유심히 보면 스스로 치유함을 볼 수 있습니다. 편안한 장소를 택해 사나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단식하는데 이는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여 면역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자연 속에서 사는 동물은 왜 질병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까요? 사람처럼 욕심을 부리면서 시도 때도 없는 과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웰빙푸드란 용어가 유행했습니다. 요즘은 먹을거리와 관련된 각종 질환이 증가하다 보니 웰빙푸드 대신 힐링푸드란 용어를 많이 씁니다.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 할까요? 치유를 위한 음식, 병에 도움이 되는 음식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식사 문제를 놓고 대화가 오고 가는데 예수님이 말하는 식사와 제자들이 생각하는 식사의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식사는 무엇입니까? 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내가 구하여야 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제자들이 구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남쪽 유대를 떠나서 북쪽 갈릴리로 이동 중 사마리아 지역을 직접 통과하고 있었습니다(03, 04).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며 이방인을 대하는 것처럼 상종을 금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수가성 우물가에 도착하였을 때 시간이 정오입니다. 제자들이 식사 거리를 구하기 위해 동네로 들어간 후 예수님은 우물가에 물 길으러 온 한 여자와 진지하게 육신의 문제부터 영의 부분까지 인생 상담을 하였습니다.
곧 물 길으러 온 여자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영의 눈이 열립니다. 이내 동네로 들어가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한 번 와서 보라고 열심히 전도합니다(29).
사마리아 여자가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러 간 사이 제자들이 식사를 준비해 놓고 예수님께 드시라고 권합니다. 식사래야 간단한 마른 빵 정도이겠지만 이것을 구하러 동네까지 갔다 왔으니 배가 좀 고팠을 것입니다. 구해온 음식을 예수님께 드리고 자신들도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모습에서 제자들의 예의 바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사하려는 모습 말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뜻밖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 이 말씀은 제자들로서는 좀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동네에 가서 힘써 먹을 것을 구해왔는데 먹을 것이 따로 있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처음부터 있다고 하시지 왜 우리를 동네에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우리 말고 누가 예수님께 먹을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육신의 양식이 아닌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또 다른 양식을 제쳐놓은 것으로 짐작하였습니다.
요즘 우리의 주위를 보십시오. 신령한 양식을 아는 사람이 별반 없고 그저 육신의 양식만을 탐닉하기 위해 먹을거리 사냥을 나서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식도락(食道樂)가라고 합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생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육신의 배를 채우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교회를 다니려 해도 배가 불러야 정신 차리고 믿을 것이 아니냐? 예수님의 말씀도 옳고,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맞지만 어떻게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느냐? 현실을 고려한 상태에서 믿음생활을 해야지 우리가 다 예수님처럼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얼핏 들으면 상당히 그럴듯한 말로 들립니다.
마 0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예수님이 구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제자들의 생각이나 마음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34절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하심은 실제로 먹는 음식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우리 몰래 음식을 갖다 드린 사람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혹이 풀렸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심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신령한 양식인 것을.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영혼 구원의 배고픔으로서 사마리아 여자의 구원과 수가성 마을을 전도하는 것으로 그 양식을 채우셨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살았던 여자, 자신의 허물로 인해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대인기피증에 있는 여자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마리아 여자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며 마을로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이 바로 주님의 양식이었습니다. 영혼의 배고픔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신령한 일은 식욕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 초점을 항상 아버지의 뜻에 맞추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때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자신의 사명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가두려 해도 사명을 중단하지 않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 일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눅 13: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축구 대표 팀 감독이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앞두고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회자합니다.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2008 유럽축구 선수권대회(유로 2008)에서 러시아의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끈 후 한동대학교의 제2호 히딩크 드림필드 준공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공항의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승리에 배가 고프다.
주님께서 배고픔을 채우는 양식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에게는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고, 그 양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이 예배에 오면 양식을 얻습니다. 낙심된 사람이 새 힘을 얻습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이 희망을 품고 돌아갑니다. 절망하던 사람이 용기를 얻습니다. 예배에 승리자가 되어야 가정생활에 승리자가 될 수 있고, 사업에도 성공자도 될 수 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내가 구하여야 할 양식은 무엇입니까? |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직역하면 그 밭들을 눈여겨보라 입니다. 여기 밭은 보리나 밀을 재배하는 일반 농토가 아니라 세상으로서 영혼의 밭을 문학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눈에 들어온 수가성 우물 주위의 들판에는 곡식들이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는 아직 넉 달이 더 지나야만 추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에는 수가성 마을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오는 모습과 사마리아 지역 전체의 영혼이 이미 추수할 때가 된 들판의 곡식처럼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말씀은 육신의 시각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라 영의 시각으로, 영의 이해력을 가지고 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심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을 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보는 관점과 주님이 보시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양식을 얻기 위한 추수의 때는 아직 넉 달이 남아 있지만, 영의 양식을 얻는 영혼의 추수의 때는 넉 달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 하면서 핑계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치 아직 추수의 때가 넉 달이나 남은 것처럼 행동하며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집사님, 봉사 좀 하시지요? 하면 주로 어떤 대답을 합니까?
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은 아직도 추수하려면 넉 달이나 남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 넉 달이나 남았는데 추수를 재촉합니까? 그냥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은 자신도 핑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령한 추수는 때가 없습니다. 넉 달을 기다리다간 오히려 낭패를 만나기 알맞습니다. 가만히 넉 달을 기다리면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닙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현실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다음에 하겠다는 생각은 영혼 추수나 신령한 일을 우선순위로 보지 않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의 강력한 메시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도 영혼 추수하는 일에 머뭇거리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을 주님의 관심으로 전환합시다. 때로는 우리에게 육신의 배고픔이 아닌 영의 배고픔, 신령한 배고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도 쳐야 하고요. 육신의 빼고픔은 육신의 양식을 먹으면 채워지며, 영의 배고픔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매달리면 채워집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일에 배고픔을 느낍니까?
먹는 음식 샌드위치의 유래를 아십니까? 빵조각 속에 치즈나 햄 혹은 잼을 넣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을 샌드위치라고 합니다. 옛날 샌드위치라는 백작이 있었는데 카드놀이를 얼마나 즐겼는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빵에 치즈 한 조각을 싸서 먹으며 카드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때부터 이 빵을 샌드위치라 불렀습니다.
나는 영의 양식을 위하여, 영혼의 추수를 위하여 얼마나 바쁩니까? 식사 시간이 아까워 샌드위치를 먹어가면서까지 가치 있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어떤 사람이 죽어 아주 평온한 땅에 갔습니다. 뭐든지 원하는 것은 척척 쏟아집니다. 뭐가 먹고 싶다 그러면 상(床)이 뚝 떨어지고, 어떤 옷을 입고 싶다 그러면 옷이 뚝 떨어지니 매우 신이 납니다. 그런데 한 달쯤 그러고 나니 너무 심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여기 뭐 할 일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여기는 절대로 할 일이 없습니다. 일해서는 안 되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6개월쯤 그렇게 살고 나니 미칠 지경이 되어서 큰소리를 바락바락 지릅니다. 차라리 나를 지옥으로 보내라.
그러자 심부름하는 사람이 여기가 지옥이다. 하더랍니다. 할 일이 많습니까? 바빠 죽겠습니까? 가정에서도 바쁘고 직장에서도 바쁩니까? 교회 일로 월요일에서 주일까지 한 주간 내내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많이 성가십니까? 그러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행복할 때가 언제일까요?
①할 일이 있을 때입니다(Something to do).
②꿈이 있을 때입니다(Something to hope).
③사랑할 사람이 있을 때입니다(Something to love).
성도 여러분, 미치도록 좋아서 하고픈 일이 있습니까? 생명을 걸 만큼 소중한 일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그 일이라면 밥을 안 먹어도 좋은 일입니까? 예수님도 식사하는 것을 잊으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행복하게 했던 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우리의 에너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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