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외로운 사람의 친구 다비다.(행 09:36~4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12. 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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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1929.1.15.~1968.4.4.)이라는 인물을 그리워합니다. 이분은 침례교 목사로서 흑인해방 운동과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공민권 운동을 전개한 공로로 1964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그러나 196840세에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 1928.3.10.~1998.4.23.)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업적과 정신은 대단합니다.

그가 죽은 후 18년 지난 1986년 미국 의회는 흑인 해방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준 삶을 기리기 위함입니다개인의 출생일이 전국으로 휴일이 된 것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 일입니다. 지금도 미국인들은 마틴 루터킹 목사를 그리워합니다.

 

우리 모두 삶의 길이가 길든지 짧든지 간에 생전에 남긴 흔적으로 인해 후세의 사람들에게 평가받을 때가 옵니다. 그리워지는 사람 아니면 기억도 하기 싫은 사람으로 말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흔적을 남기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 있을 때 길이길이 기억될 만한 일을 하면 그 이름이 후세에까지 빛납니다. 신앙인은 신앙으로 품위 있는 삶을 살고 갈 때 그 삶의 가치가 돋보입니다.

 

전 07:0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신앙의 향기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제사나 특별예식에 사용하는 기름보다 더 낫다는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김삼일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자기의 일생을 마친 다비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여러 사람이 이 다비다의 죽음에 대하여 안타까워합니다.다비다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합니까?

 그의 삶을 한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외로운 사람의 친구 다비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다비다가 끼친 신앙 행적을 보겠습니다.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다비다(Ταβιθά 암양). 사회 활동에서는 주로 헬라 식 이름 도르가(Δορκάς)를 사용하였고 일상생활에서는 히브리식 이름 다비다를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정황을 보아 다비다는 과부인 듯합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도 심히 많았습니다그런데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마침 욥바에서 17km 떨어진 룻다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그러자 다비다 측에서 두 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냈습니다.

베드로가 다비다의 장례식에 와서 혹 기적 베풀기를 기대한 것 같습니다 이 연락을 받은 베드로가 급히 다비다의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다비다의 사랑을 많이 입은 사람들이 베드로 앞에서 다비다의 사랑의 흔적을 실물로 내어 보입니다(39).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이 옷 다비다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며 옷을 내어 보입니다. 이렇게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죽었다며 하염없는 눈물만 흘립니다.

아마 욥바 지역 모든 과부와 소외된 사람이 다비다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여겨집니다그 시절은 가난한 사람이 옷을 장만하는 건 힘이 드는 때입니다.

겉옷은 가난한 사람이 밤에 덮고 자는 이부자리로도 사용되었습니다재산 목록 1호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겉옷과 속옷은 다비다가 외로운 사람의 친구로 산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비다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의 대리자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예수님의 발이 되어 연약한 자들을 찾아가고, 예수님의 손이 되어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는 대리자 말입니다.

 

요일 0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믿음의 사람은 말이 아닌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을(10:17, 18) 좋아하십니다.

이런 이웃 사랑이 이스라엘 정신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제의 현장을 어느 민족보다 강하게 실천합니다. 우리도 꼭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다비다처럼 선행하는 모습이 있는가를 말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자기가 몸담은 교회에서 또한 생활권에서 신앙의 흔적을 남기고 또 보여줍니까? 신앙의 행적을 얼마나 아름답게 수놓는 삶인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세상을 떠난 후에 누군가가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이 분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를 하신 분입니다.
또 내가 공부시킨 사람이 찾아와서, 이 분이 나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공부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이런 좋은 일을 하신 분입니다. 라고 증언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2. 다비다의 삶은 여 제자로 압축됩니다.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다비다가 선행으로 인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평가한 여 제자라는 수식어입니다. 당시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비다를 일컬어 여 제자라고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에 속합니다.
성경은 남자에게 제자라는(μαθητής 마데테스)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다비다에게 사용된 제자(μαθήτρια 여성형 마데트리아)는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다비다에게 여 제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보십시오. 아주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비다는 그만큼 믿음의 중심에 있는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비다가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까? 돈이 많아서입니까? 학식이 많아서입니까? 아니면 가문이 좋아서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그만큼 다비다가 예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명칭을 얻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만을 위하여 살면 예수님의 제자라 불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에게만 제자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비다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여 제자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진정 복된 자입니다.


세상 명예는 물거품 같아 얼마 안 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예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면류관과도 같은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의 크리스천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 둘째는 성도, 셋째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면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은 구원받았던지, 거듭난 체험이 있던지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그저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연히 신발만 닳는 피곤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사람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의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있습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말에나 행동이나 모든 삶에서 신, 불신 간에 저 사람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야, 저 사람을 보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진정 닮아야 할 사람입니다.

 

눅 0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성경에 믿음이 좋아 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대접하는 일이나, 구제하는 일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는 길손을 부지중에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벗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18).

사르밧 과부(왕상 17:06~22), 수넴 여인(왕하 04:08~37), 다비다는 감동을 주는 선행으로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린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 복음의 문이 열림을 기억하십시오. 단순히 가난한 이웃을 돕고 구제하는 일로 끝나면 그것은 인도주의 정도입니다. 신앙인은 영혼을 건지는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3. 다비다는 다시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다비다가 병이 들어 죽자 성도들은 즉시 장례를 하지 않고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먼저 시신을 씻어서 다락방에 안치했습니다(37).
유대인이 장례를 치르는 관습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 치릅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사흘까지 두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 삼일장 정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말씀을 드릴 때 욥바의 성도들이 인근 도시 룻다에서 사역하던 베드로를 청했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청했습니까? 룻다에서 일어난 기적(09:32~35) 때문입니다.

 

8년이나 중풍으로 누워있던 애니아를 베드로가 일으킨 기적입니다. 다비다 측도 베드로라면 죽은 다비다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였고 베드로도 급히 다비다의 죽음 현장에 달려왔습니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지 못할지라도 베드로가 위로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비다를 살리셨습니까? 욥바 지역 복음화를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비다의 손길을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에 하던 구제와 선행의 일을 다시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잘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때가 되면 모두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나를 아는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이 갔다고 하며 아쉬워하겠습니까? 아니면 에이, 그 사람 잘 갔단 말이야? 라고 말하겠습니까?


유대 나라의 헤롯 왕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잘 죽었다며 축하회를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룟 유다가 물욕에 눈이 감겨 주님을 팔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죽었을 때 아무도 울어 주는 사람이 없이 오명만 남기고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30일 동안이나 애곡하였고(34:08), 전도자 스데반이 순교했을 때 경건한 신자들이 크게 울었습니다(08:0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비다가 죽음에서 살림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죽음 이후에 한 번쯤은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에서 삶을 좀 등한히 해도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시간을 값지게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남을 구제합니까?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 것을 준다고도 생각 마십시오. 이렇게만 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신 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제 죽음을 조금 당겨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고 난 후에 내 가족 외에 어떤 사람이 죽음을 애도하며 하나님 아까운 사람 죽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하겠는가를 말입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할수록 그런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 세상을 마감할 때가 가까워져 옵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행한 대로 심판받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었을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책에 나의 선한 행적이 기록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겠습니까? 돈을 좀 많이 번 사람입니까? 유명한 인생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고후 0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