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추수감사>감사를 회복하기 원합니다.(시 54: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11. 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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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나귀를 타고 한 마리의 닭과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해가 저물자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 묶어 두었는데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 하면서 아침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천막 안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와 등잔의 불이 꺼지자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만 밤사이에 맹수가 와서 천막을 찢고 밖에 있던 나귀와 닭을 물어 가고 만 것 아닙니까? 랍비는 찢어진 천막을 챙기면서 마음이 무척 상하였는데 그러다가 주위를 보니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잠을 잤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들이 보여서 가까이 가 보니 여기 저기 사람들의 시체와 물건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었는데 이는 지난밤에 강도들이 약탈해 간 흔적이었습니다. 그때 랍비가 생각해 보니 만일 어제 밤에 자기 천막에 등불이 켜져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기도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터인데 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 바람에 등불이 꺼진 것과 맹수가 와서 자기 나귀와 닭을 잡아 간 것이 오히려 자기의 목숨을 건진 것이라 여겨져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결 같이 경제의 위기라고들 말하며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들이 계속 급증하고 있습니다. 성도라고 예외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도는 이때에 감사를 잃지 않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감사해야 이유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고, 또한 말할 수 없는 감사 거리를 주실 것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08:28).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다음주일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와 예물을 드리는 시간 갖기를 축복합니다.

 


 1.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06 내가 낙헌제(樂獻祭)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오늘 본문의 서두를 여는 설명입니다
.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말씀인데 삼상 23:07,19절과 26장이 그 이해를 돕는 자료가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준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사울 왕 편에 서서 은신처를 밀고하자 위험을 피하여 황무지 길을 떠돌아 다녀야만 했습니다.
이런 배신 속에 다윗은 또 밀고를 당하는데 이번에는 은혜를 입었던 십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다윗의 은신처를 고해바쳤습니다. 대단히 비통한 일이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수하의 사람들과 십 광야 지역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고 맙니다
.
그러면서도 하나님, 내가 더욱 감사의 생활을 하겠습니다. 라는 다짐을 합니다. 여기 낙헌제란 일반적인 감사 예물보다도 훨씬 더 자발적인 성격의 제물로서(15:03) 다윗은 하나님께서 결국은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은혜를 아십니까
?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부합니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찬양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예물을 드리십시오. 누가 뭐래도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 아닙니까?

감사를 하되 좋을 때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괴로울 때도, 편할 때만 아니라 어려울 때도 감사를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하박국 03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5가지가 없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이 적군의 침략으로 인해 황폐해진 경제 현실 그대로를 나타냅니다. 이는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위기이지요. 거기에다 심령에 불안감까지 계속 엄습하고 있습니다.

 

0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하박국은 경제문제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생활을 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이요,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믿음 아닙니까? 욥기를 보면 욥은 만사가 형통할 때에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지만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왔을 때도 역시 감사의 생활을 계속 하였습니다(01:21; 02:08~10). 우리에게도 현실에 닥친 일들만 우선 생각하면 원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일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을 통하여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는 줄을 알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는 감사의 생활이 그다지 많지 못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알고 또한 감사할 능력은 있으면서도 실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은 너무나 초라한 것 같습니다.



 2. 나는 감사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0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 13권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복음의 열매와 모든 수고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충성하고 감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신령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령한 일을 하라고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기에 충성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신령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신령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이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신령한 일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 아닐까요?

나병에 걸리면 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지워지기 때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적 불감증도 걸리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은혜와 사랑을 역시 느낄 줄 모릅니다. 그러면 나도 영적 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으로 느끼고 영으로 느끼면서 보답할 줄 아는 믿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무서운 불치병에서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은 보답할 줄 몰랐고 다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그 은혜를 알고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17:11~19).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살며,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말씀 앞에 나는 어떤 감사의 표현을 할 것인지 자신을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6: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합니까? 하나님께 정성으로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감사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If(조건부 감사). 무엇을 주시면 드리겠다는 1차원적인 감사.

Because(왜냐하면, 때문에) 감사. 무엇이 이루어졌으니 드리는 2차원적인 감사.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어려운 환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3차원적인 감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주일을 앞두고 나는 어떻게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받은 것이 많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영적 불감증 인생으로 살렵니까?

지금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넉넉하게 받을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살기를 바랍니다. 미리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구원의 은혜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3. 감사는 은혜를 회복하는 기회입니다.


0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07절은 다윗이 하나님의 선하심(06)으로 인하여 사울 왕으로부터의 위기 상황에서 마침내 구원을 이루게 된 은혜의 체험절(體驗節)입니다. 다윗은 훗날 왕의 위치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오늘의 시편 54편을 기록하였는데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회복하면 그때부터 내 영적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바꾸는 일이 참 많지요. 살던 집도 바꾸고, 자동차도 바꾸고, 모든 문화시설도, 심지어는 사람도 잘 바꿉니다
.
성도 여러분, 혹 내가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내가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분명히 바꾸어야지요? 감사와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잘못된 인생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기 때문에, 그 분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주심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가 뒷받침 되면 분명히 바꾸어 주십니다. 사자 굴속에서 죽을 환경에 처하였던 다니엘이 기도와 감사로 환경이 바뀌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지(06:10~28) 않습니까?

 

20115월 서울 성수고등학교 권정은 선생님은 아이들과 말의 힘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하여 2개의 유리병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한쪽 유리병에는 감사합니다와 다른 한쪽은 짜증나 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교실 뒤에 놓고 학생들이 지나다닐 때 마다 한쪽에는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 라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하고, 다른 한쪽 병에는 미워, 싫어, 짜증나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게 했습니다.

3주 동안의 실험결과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병을 열어보니 구수한 냄새가 나는 누룩곰팡이가 피었고, 짜증나. 라는 병은 열어보니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 감사는 작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환난까지도 바꾸는 힘을 발휘합니다. 모든 것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믿으시면 그 믿음이 더욱 감사 거리를 가져옵니다. 아직도 감사를 회복하지 못하여 은혜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까? 신앙인의 감사는 조건이 없어야 하며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감사를 앞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0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무슨 일이든지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은혜를 입어야만 하나님의 은총과 복이 성도 여러분의 가정위에, 사업위에, 직장위에 임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와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감사할 마음이 식어졌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심히 고민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고 식어졌다는 것은 나의 신앙이 시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요 하나님으로부터 서서히 이탈되어 가는 표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얼마 전에 KBS 뉴스 현장추적 시간에 보도가 된 내용인데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 많은 돈을 들여 가로수를 심었는데 나무들이 자꾸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영양제를 주사하고, 거름과 물도 주고 정성껏 관리하는데도 살아나지 않고 시들시들 말라만 가자 보다 못하여 기중기로 가로수 한 그루를 뽑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보니 현장까지 이송할 때 뿌리에서 흙이 떨어지지 말라고 고무밧줄로 동여 놨는데 심을 때 그것을 끄르거나 자르지 않은 채로 그냥 묻은 것입니다.
속사정이 그러한데도 흙이 덮여 있으니 알 턱이 없는 거죠.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나무는 잎이 마르는 증상을 보이면서 비슷한 시기에 거의가 다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근거해서 처방을 했지만 뿌리에 문제가 있으니 밖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여러분
, 가로수가 고사되었던 문제는 뿌리를 감은 고무 밧줄에 있었듯이, 우리가 감사가 넘치는 은혜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도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옥죄고 있는 불평이나 불신앙의 바이러스 때문 아닐까요?
이런 것은 속히 잘라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감사의 생활이 나타나지 않고 외식적인 모습, 생명 없는 모습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불편한 것만 생각한다면 계속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있기에 어려움을 감수하고 인내하면서 살아갑니다
.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큰 것 보다는 적은 것에서 감사를 발견하십시오.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재 있는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기적적인 사건이 없어도 매일 일어난 일 가운데서 감사를 찾으십시오.

감사를 계속하여야만 축복이 따라오고 반대로 불평도 원망도 사라집니다.

감사하는 순간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 고백 따라서 감사를 회복하고 은혜를 회복하여 능력 있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