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나도 복음의 열정을 품고 있습니까? (행 14:01~0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10. 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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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두 옷을 갈아입느라 정신이 없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받습니다.
휴대폰 성능이 워낙 좋아 옆에 있어도 상대방 목소리가 다 들립니다. 통화 내용은 상대방에서 아빠, 나 게임기 사도 돼? 그러자 남자는 아~ 그래.

아빠, 나 신형 스마트폰 사도 돼? 역시 남자가 그럼. 아빠, 나 새로 나온 컴퓨터도 사도 돼? 게임을 하기엔 속도가 너무 늦단 말이야?

옆에서 들어도 컴퓨터는 무리라고 생각할 때 남자는 너 사고 싶은 건 다 사. 와 신난다. 인터넷으로 지금 주문한다? 그러자 남자는 알았어. 하며 부탁을 다 들어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합니다. 이 휴대폰 주인 누구요?

 

, 남의 것이기에 인심 후하게 부담 없이 주문하라고 한 거지 만일 내 통장에서 돈이 인출된다면 어디 그 정도를 하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은 내 것은 아끼고 귀하게 여기지만 남의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없습니다. 헤프게 쓰기 마련입니다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삶의 길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즐거운 삶을 산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이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01:08). 이 삶이 가장 복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저 받은 구원의 도리를 전하기 위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자원해서 나섰습니다. 그 결과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반면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시기와 질투, 모함과 박해 등 죽음과 다름없는 현장을 만났습니다.

 

행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이고니온에 도착한 바울 선교팀은 또 열심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계속 전합니다.
우리도 복음 전하는 일에 열정을 품고 조금 전 말씀 드린 한 남자의 인심 좋은 모습처럼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말씀 제목을 나도 복음의 열정을 품고 있습니까?로 정했습니다.

 

 

1. 바울 선교팀은 복음을 우선 회당 중심으로 전합니다.

 

0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이 옮겨온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부터 동남쪽으로 140km나 되는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바울이 곧 가게 될 루가오니아의 수도입니다. 바울 일행이 이곳까지 도보로 이동하였으니 대단한 전도의 열정 아닙니까?

이제 이고니온에서 선교가 시작됩니다. 먼저 바울 선교팀은 이전 전략처럼 이번에도 복음 전파의 장소로 먼저 유대교의 회당을 정했습니다. 바울 선교팀의 복음 전파 기본 원리입니다.

9:20(다메섹), 13:05(구브로), 13:14(비시디아 안디옥), 14:01(이고니온), 17:01(데살로니가), 17:10(베뢰아), 18:04(고린도), 18:19(에베소) .

 

왜 회당을 우선 활용합니까? 비록 유대인의 회당이지만 그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 더러 있기 때문이며, 구약성경 낭독과 그것에 대한 해설 등 설교하기에 알맞은 공간 시간 엄수 등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교 회당에는 사역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주로 회당장(장로)이 예배를 인도하였고 간혹 회당 방문자 중에 율법에 능통한 서기관급 해설자가 있으면 맡기기도 하였습니다. 마침 바울 선교팀이 회당을 방문하였습니다.

 

회당장은 방문자의 의상(衣裳)과 히브리어 구사 능력을 보고 유대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회당장은 즉각 설교나 율법 해설을 요청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본서에서 어떤 곳이든 복음을 전할 때 기본 두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행동이 다름없음을 나타내는 부사 이와 같이(17:29, 19:20, 28:14) 입니다. 또 하나의 기본 문구는 ~말하니 라는 동사입니다(14:01, 03, 21:19, 21:40).

 

이 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전한 그 방법대로 여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전한다는 뜻입니다. 회당에 들어가면 이런 상황에 맞추어 성경을 읽었습니다.

당연히 하나의 주제가 성립됩니다. 어떤 주제입니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로 설정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은 타 종교의 행위와 다는 오직 순수한 말씀이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런 원칙을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선교팀의 메시지는 어디를 가든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전에 전했던 그 방법대로 이고니온에 회당에서도 전했습니다.

 

어떤 결과들이 나타납니까? 가물어 메마른 땅에 생명의 단비가 내리는 것처럼 그들 영혼에 성령님의 구원 역사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고 했으니 많은 사람이 믿었다는 말입니다. 반면 04절을 보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복음을 배척하여 유대인을 추종하는 무리로 나누어집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빛과 어두움이 갈라집니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사도들을 따랐고 적대적인 사람들은 더욱 핍박합니다.

바울 선교팀은 오직 예수님 한 분으로 승부를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고전 02:0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 복음 전파에는 언제나 도전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0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02절 말씀을 보십시오. 꼭 같은 시간 꼭 같은 장소에서 꼭 같은 복음을 전하였는데도 은혜받는 사람과 반대로 핍박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기뻐하고 찬양하는 사람과 비판하고 힐난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거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같이 예수님을 보는데 어떻게 반응이 이렇게 다르게 나타납니까? 메시지가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0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전에 이미 그 마음이 불순종의 영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는 마귀의 영, 불순종의 영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미 마음이 삐뚤어져 있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영이 그 사람 속에 도사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반항하며, 무슨 일이든지 거역하므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일단 거부 반응이 먼저 일어납니다.

 

가끔 인간관계에서 겪는 현상인데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거의 비비 꼬아서 말합니다. 한 마디로 힘 드는 사람입니다. 또 은근히 긁으면서 말하는 사람과는 한 시간만 이야기하면 진액이 다 빠져 버립니다. 계속 후벼 파기만 합니다.

왜 그럽니까? 불순종 영이 그 사람의 심령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뒤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불순종하는 영에 사로잡힐까 염려하고 자기관리 잘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복음이 확장되면 으레 뒤따르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 마귀의 세력이 가만 있겠습니다악한 영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 일행에게 반기를 들게 합니다

여기 선동(ἐπεγείρω)이라는 단어는 교묘한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고 함께 대항하는 매우 나쁜 행위입니다행여나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다 무엇인가 잘못될 때 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가 싫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선동하여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지라도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선동은 멸망하는 길목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바울 일행은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예수 복음이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예레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열정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렘 20: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복음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신앙의 열정과 목적을 품고 사십시오. 복을 반드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환경이 되면 자기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환경이 나쁘면 자기의 인생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주어진 환경이 불편할지라도 그 환경을 신앙으로 바꾸어 살아갑시다.

 

 

3. 복음 전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0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불순종하는 사람들, 복음에 악감을 품고 대항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바울 선교팀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①두 사도가 오래 있어. 반항하는 사람, 대적하는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은 많지만, 그 일로 인해 도피하지 않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왜 생명조차 보장받기 힘든 그 자리를 계속 지킵니까? 이방 종교나 유대교에서 개종하는 약한 신앙인을 보호하고 대적자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좀 힘들다고 전하는 삶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전도 대상자가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편하게만 일하려 마십시오.

신앙생활에 참고 인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상대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의 현장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일하다 혹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생명의 위협을 당할 정도로 힘이 듭니까?

 

그 일을 더 하면 죽을 것 같습니까? 힘들어도 참을 때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살릴 수 있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잘 감당할 때 교회가 든든히 서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이 있습니까? 혹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②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의 대적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였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말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바울 선교팀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담대 하십시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탄은 약자에게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약합니다. 악한 세력에게 밀리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③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표적과 기사란 두 단어를 사용합니다.

표적과 기사는 이적을 가리키는 성경 용어로서 전자는 주로 그 외형상 증거를, 후자는 그 속에 내재해있는 신비스러운 요소를 말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고, 청각장애인의 귀가 열리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광풍이 잔잔해지는 것들은 다 눈에 보이는 실제 기적입니다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도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기적도 있습니다.

 

이런 표적과 기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사람의 심령에 구원의 말씀으로 깊게 심어져서 결실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내용이 사실임을 보증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에서 또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표적이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기적이 나타나라, 표적이 나타나라. 하며 소리친다고 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직 전도의 현장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주님을 힘입을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이런 기적을 많이 체험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0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프랑스 요리 가운데 삶은 개구리 요리가 있습니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합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튀어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냄비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부어 둡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 때문에 가만히 엎드려 있습니다.

이때부터 약한 불로 물을 서서히 데웁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 갑니다.

 

사람도 같은 원리입니다. 당장 먹고사는 걱정이 없고, 다른 사람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가끔 듣고, 친구도 많고, 큰 걱정거리도 없으니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함에 빠집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아십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영의 모습이 마치 냄비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다 죽어 가는 개구리의 모습과도 같지 않습니까?

복음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에 머물면 안 됩니다. 설교를 듣는 데도 심령이 안 변한다면 이것은 좀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의 특징은 자기 신분에 맞는 일을 하는 데 있습니다. 예배당에 나오고도 얼굴에 내 천()자를 그리고 있으면 계속 심령이 메말라 갑니다.

 

많은 사람이 지난 과거를 현재에 끌어들여 고민합니다. 우주의 고민을 홀로 다 지고 있는 것처럼 고민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끌어들여 고민합니다.

알고 보면 현재 고민거리는 별로 없는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신분을 점검하십시오. 자기 위치를 찾으십시오. 그리하여 그 내 신분과 위치에 자리 잡고 일하십시오. 그러면 복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