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습니다. 정치도 변하고, 기업도 변하고, 학교 교육도 변하고, 군대도 변하고, 이제는 고질적인 정치도 조금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는 무한경쟁을 낳게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에 시대에 적절한 대처를 하여야 합니다. 교회도 시대가 원하는 교회로 진입하려면 변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신뢰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선 변해야 합니다. 교회가 변해야 하는 주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고, 그저 신앙의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에 맞추기 위해서 변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실의 안주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서 이탈하는 함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 생활을 돌아볼 때 너무 안일하게 지내 왔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좀 변하여야 되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화를 위하여 바쁘게 움직이는 시점에서 만일 변화를 계속 거부하는 생활을 한다면 어쩌면 도태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신앙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으로, 그리고 교회가 신앙의 체질을 개선하여 주님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신앙 체질을 개선 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1. 신앙의 체질 개선은 하나님께 맡길 때 가능합니다. |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1절 전후의 문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부흥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교회는 이 죄악 된 세상에 유일한 빛이요 등대인데 만일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신령한 가치를 잃어버리면 그것은 한낮 쓸모없는 골동품과 같습니다. 지금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관광객들이 붐비는 장소로 전락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가치는 예배를 드리는 건물의 사이즈가 얼마나 크고 화려 하느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기준이 된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 김해삼일교회가 21절 말씀처럼 주님의 손이 함께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외형 성장을 논하면서 베드로의 한 번 설교에 3천명이 회개한 것을 더러 이야기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땅히 외형 성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예, 당연히 외형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3천명이 돌아오는 일이 단 번에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120여명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심령을 열어놓고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 3천 명의 회개도 그저 단순히 베드로의 설교 한 번이 아주 기가 막혀서가 아니라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어찌할꼬? 라고 회개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가슴을 찢으면서 이 일을 어찌할꼬? 라고 진실 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을 더 이상 자랑치 말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잠 16:0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는 교회의 특성은 사랑과 친교,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는 격려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령한 은혜와 행복은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로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때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누릴 은혜와 행복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앞세우고 있으면 충만히 누릴 수 있으며 동시에 나의 앞날도 잘 풀려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2. 신앙의 체질 개선은 믿음으로 움직일 때 가능합니다. |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물론 주님의 손에 맡기고,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부흥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21절 말씀을 눈 여겨 보십시오. 먼저 믿음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 바로 그 성도들이 살아 움직임으로 인해 부흥이 이루어졌음을 말해 줍니다. 전도하는 일에 우리 함께 동참합시다. 할 때 그렇게 합시다. 하면서 적극적 자세로 전도의 일에 동참하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냐? 그렇지 못하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 교회의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냐? 얼마나 적극 사고의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전도에 대한 반응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입니다. 축복과 부흥의 역사는 결코 인도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란 대단히 중요합니다만 그 지도자 혼자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평신도가 살아 있는 교회, 평신도에 의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날마다 창출되는 교회가 될 때 능력 있는 교회가 됩니다. 초대교회 시절 교회를 향한 평신도들의 활동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이어서 누가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데도 충성을 하였고, 핍박이 올 때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복음을 확산하는 일에 목숨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된 것도 숨어서 봉사하며 뒷받침 했던 이런 평신도들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실라, 디모데, 아볼로, 누가, 디도 등의 지도자급들을 제하더라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오네시모, 두기고, 루디아 등 수많은 도우미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성경 마지막엔 항상 뒤에서 숨어 봉사하였던 여러 인물들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들을 꼭 알아주라고 권합니다.
고전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오늘날의 교회를 놓고 말하기를, 평신도가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교회는 각 분야별로 사역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누가 성도들의 다양한 요구를 채워주겠습니까?
인도자 보다는 성령님의 은사와 달란트를 받은 평신도들이며, 평신도 사역은 시대의 정신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가운데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인도자가 잘하고 헌신해도 부족하며 그 능력에 한계가 있고, 아무리 훌륭한 인도자라 할지라도 은사를 다 갖춘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평신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오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힘은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평신도가 지닌 다양한 은사가 곧 교회의 힘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인도자는 주로 전체를 책임지지만 평신도는 파트에서 수고하기 때문에 전체를 감동시키지 않아도 되며, 자기의 능력에 맞게 힘을 발휘하여 수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는 성도 여러분의 움직이는 사역을 필요로 합니다. 봉사와 친교를 위해 좋은 활동을 기대합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이며 은사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필요로 하는 달란트를 받았으면 열심히 일하십시오.
달란트는 쓰면 쓸수록 개발되지 않습니까? 예배만 드리면 살짝 빠져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공동체의 지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신앙의 체질 개선이 된 교회는 에너지를 밖으로 내 보냅니다. |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교회가 세워진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서 선교의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데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이었습니다. 모체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구제헌금을 모금하여 바나바와 사울(바울) 편에 보낸 일을 우리는 선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냐? 축복이 있는 교회냐? 행복한 교회냐를 평가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의 에너지를 모아서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이라 표현한다면 적절하지 않을까요? 선교는 내가 가는 겁니다. 만일 갈 수 없으면 보내는 것이고요. 눈물을 보내고, 기도를 보내고, 나의 장점을 보내고, 물질을 보내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런 면에서 안디옥교회는 나만을 알고 내 교회만을 챙기는 교회가 아니라, 이웃 교회를 돌아보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선교의 목적을 실천해 나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이런 비전을 품을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사람들이 예루살렘교회 출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인해 큰 핍박이 일어나자 성도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그들이 안디옥까지 와서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서 설립된 안디옥교회이고 보면 영적인 에너지, 물질적인 에너지, 믿음의 에너지를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왜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 목적을 안다면 강력한 교회, 강력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의 꿈을 품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믿음생활 자체가 다르며, 목적이 있는 사람은 목적이 없는 사람에 비해 삶의 스타일이 다릅니다. 결국 비전이 없으면 망합니다.
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교회의 존재 목적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최고 장점이 선교에 있었다면 그러면 우리 김해삼일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지요.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고,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죽은 성도라는 말이 우리교회에는 적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미가 거미집을 지어놓고 지나가던 곤충들이 거미줄에 걸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오기를 기다립니까? 어, 여기에 교회가 있네. 하면서 그저 교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요행으로 앉아 있으면 교회의 부흥은 요원합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지금 바도 달려가야 합니다.
고전 0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이웃을 돌아보는 교회로,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부터 결단하여야 합니다. 선교의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드릴 각오가 되었노라고, 내가 지금까지는 부동의 자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움직이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겠노라고 신앙 체질개선을 선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남자 여러분, 민방위 훈련 점검 아시지요. 저도 몇 번 나가보았지만 정말 허무합니다. 연령이 해당되는 분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점검을 하죠. 주로 아침 7시쯤 학교나 동네 공원 같은데서 모이는데 여러 일들을 제쳐놓고 나가보면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멀뚱멀뚱 있다가 출석표 내고 오면 끝입니다. 그러니 그 시간 동안 호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담배 피는 사람, 대리출석 등 각양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것은 동네를 지키는 민방위 대원으로서 모습이 전혀 아니며 오합지졸도 그런 무리가 없어요. 한 마디로 그저 허망한 무리들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국가에서 정한 법에 따라 출석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모였을 뿐이거든요. 출석을 점검하기 위하는 정도라면 모일 필요 없습니다. 저는 교회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면 마치 민방위 대원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해 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특공대의 군기가 살아 빤짝 빤짝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신앙의 체질개선이 되어야만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좋은 교회는 거기에 모인 구성원들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힘차게 해 나갈 때 가능합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가 이제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앞세워 선교의 차원으로 체질 개선이 되는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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