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자기 인생을 돌아봅시다(시 39:01~1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9. 1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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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 젊은이가 28세 때 내란 음모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을 묶었는데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여 있습니다.
사형집행 시간을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자기가 땅 위에 살아있을 시간이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5, 사형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형장에 같이 끌려 온 사람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는데 2분을,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2분을, 남은 1분은 눈으로 자연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정리를 하고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마지막 이별의 키스를 하면서 2분을 사용하였습니다.

드디어 자기의 앞날을 놓고 나는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28년 동안 살아온 인생 세월이 후회막심합니다. 탄환을 총에 장전하는 소리가 나면서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 순간 한 병사가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러시아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적으로 이 사형수가 풀려났는데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1821.11.11.~1881.29.)입니다.
그는 사형대에서 느꼈던 그 절박한 시간의 소중함을 평생 잊지 않고 살면서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겨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대문호가 되었습니다.

 

나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혹 최후의 5분밖에 시간이 없다면 과연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인생은 5분의 연속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태어난 이상 좋은 인생의 흔적을 남기다가 세상을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믿음의 흔적을 남기자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돌아보고 마무리를 잘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저는 오늘 이스라엘의 2대 왕 다윗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모습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자기 인생을 돌아봅시다로 정했습니다.

 

 

1. 다윗은 입으로 죄를 범할 순간을 재갈 먹입니다.

 

01 내가 말 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다윗은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내가 왜 이 모양이 되었지? 하고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화가 목에까지 치밉니다(02, 03). 임종이라고 여기니 자기의 살아온 삶의 흔적이 자꾸만 뒤돌아 보입니다.

인생의 연약하고 덧없음을 절감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하나님께 죽기 전에 건강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13).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감지하면 건강을 되살리기 위하여 온갖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다윗이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는 자기의 삶을 믿음으로 잘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죽기 싫어 생명의 연장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처럼 신변 정리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01절 말씀을 보십시오다윗이 무엇을 다짐합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의 아니게 입술로 지은 죄가 생각나자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지난날 고난 중에 거하면서 입으로 죄를 범한 일들을 회상하니 마음이 아픈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혀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짐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내뱉고 나면 시원하고 좀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과 원망은 영성 훈련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입술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데 그것이 어떤 허물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원망, 악인을 대적하면서 저주한 말, 악인의 형통을 불평한 것 등일 것입니다.


약 03:0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0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사람은 고난에 처할 때나,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남을 탓하기를 잘합니다. 만일 맞장구를 칠 사람이 있으면 한순간 불평 동지가 됩니다.

그런 불평 동지는 순간에야 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의 전염성과 오염성이 강해서 이내 상대방을 올무로 이끌어 가기 마련입니다(11:04, 05).

 

민 11:0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0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김삼일 가족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으로 전환합시다. 범사에 불평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지 맙시다. 입술을 더욱 잘 관리하며 삽시다.

 

 

2. 다윗은 자기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0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종말은 누구나 맞이합니다. 종말은 죽는 날, 인생이 끝나는 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반드시 사람은 죽는 날이 오게 마련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알고 사는 것은 지혜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이 세상을 곧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연한이란 나이를 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지 알려 주십시오. 하고 묻는 말입니다. 자기의 종말을 내다보는 자세 매우 귀한 일입니다.

생명의 길이를 알고자 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알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왜냐고요? 오히려 알면 사고가 나기 때문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연약함을 아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허무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란 말입니다. 다윗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05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0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한 뼘 길이만큼. 손가락을 가지런히 포갠 한 손바닥 폭의 직선 길이로 약 20cm 정도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수명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몹시 짧다는 것 즉 없는 것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약 0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세상 것은 다 지나갑니다. 우리 인생의 한때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들의 꽃처럼 시들고 마는 환경 가운데 우리는 살아갑니다.

인간은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든든히 선 것 같아도 역시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시 90: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우리의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여러분의 사는 날도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종말을 알아야 하고 연약함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 에 대해서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모든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좋습니다. 옛 시인은 인생을 놓고 초로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생은 아침 이슬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3. 다윗은 자기의 인생을 점검합니다.

 

0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알고 보면 가장 어리석은 것이 인간입니다. 지혜가 있고, 좀 날고 긴다고 해도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백지장 한 장 차이입니다.

보잘것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속에 믿음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지혜로운 삶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 시편은 다윗이 인생의 황혼기에 쓴 글입니다.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의 글입니다. 즉 인생 실체에 대해 자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덧없는 인생을 고백합니다. 누구나 그 삶은 결국은 늙어가다가 마지막엔 죽게 마련 아닙니까? 그러나 그 늙음 자체가 비참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면 오히려 복이 됩니다.

반면 계속해서 육신만을 위한 삶, 향락의 인생을 산다면 그때는 그 인생이 자체가 정말 비참해질 것입니다누구나가 중년기 노년기를 거치면서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그 인생이 기우뚱거리기도 합니다. 다윗도 말년에 비록 병상에서지만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을 서서히 믿음으로 바꾸는 성숙 된 인생을 산다는 말입니다.

고정된 자기의 인생관을 어느 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다윗은 그의 인생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이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 손에 있는 재물, 내가 왕으로서 쌓아놓은 부귀영화가 언제 곁을 떠날지 모르는 것을 깨닫고 07절을 고백합니다.

다윗처럼 자기의 마음에 자리 잡은 세상 것들 곧 명예, 향락, 재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는 인생 대 반전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이런 인생관으로 바꾸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 가운데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사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앙생활은 뒤로한 채 천년만년 살 것처럼 물질과 향락에 온통 마음을 집중하다 나중에는 허무 속에서 인생을 끝맺기도 합니다.

 

세상의 매력 포인트를 영원히 자기 손에서 떠나지 않을 것처럼 움켜쥐고 사는 이상은 말은 바뀌어도 생각이나 마음은 안 변하는 줄 아시지요?

혈기 왕성한 젊을 때의 인생관을 나이가 들어서 바꾸려고 할 때는 어떤 특별한 동기가 따릅니다. 다윗도 이런 내용을 시()로 쓸 때 나이가 꽤 들었습니다.

 

60대 정도 되었을까요? 마지막 13절을 보면 그가 지금 병상에 누워서 자기가 죽기 전에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병이 깊었으면 임종의 순간으로 맞이하고 있습니까? 반면 다윗이 병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다스리려 한 분 아닙니까?
그가 병중에 있는 동안 대적하는 무리는 희색이 만연하여 다윗을 비웃고 욕하면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다윗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더욱 입을 꼭 다물고 참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 잠잠하지 마옵소서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소망을 두는 생활로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해봤듯이 사람은 병실에 들어가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인생의 실제를 들여다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 0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생은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의 건강을 의지하지 말고 살라는 말입니다. 어느 날 건강이 내게서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음도 의지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유지하느라 화장품값이 만만찮지요?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자신의 젊음이 사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자기의 미모도,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내가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이것들이 머지않아 내게서 떠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내 삶을 다시 믿음으로 잘 가꿉시다. 지금까지 입술로 불평하던 모습, 원망하던 모습을 다 깨뜨려버립시다. 생명의 수한이 지극히 짧겠지만 그 시간을 잘 아껴 삽시다. 축복을 열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젊은 시절부터 늙은 나이까지 다윗 왕을 잘 섬겼지만, 마지막에 아도니야를 따르다가 결국 제사장 직분을 파면당하고 말았습니다.

군사령관 요압도 일평생을 다윗을 도와 나라를 세운 일등 공신입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의로운 두 사람 아브넬과 아마샤를 죽인 일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왕상 02:26~35).

 

아무리 인생의 초기와 중기를 잘 지냈어도 마무리를 잘못하면 사람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 온 사람 있습니까? 반대로 잘못 살아온 사람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입니다.

남은 인생을 더욱 아름답고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웃에게 풍성히 발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