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1년 말씀

하나님의 얼굴을 찾읍시다.(대하 07:11~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1. 4. 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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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이라크 등 여러 나라에는 오랫동안 셀 수 없는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자살 폭탄테러 주역들 나이가 평균 12~18세입니다

현재 탈레반은 그들이 만든 학교를 운영하면서 주로 가난한 집을 표적으로 부모에게 아이를 자신들의 학교로 보내라고 강요합니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무료로 음식과 집을 제공하고 가끔 가족에게 월별수당도 줍니다.

그곳에서 자살테러 교육을 받다가 파키스탄 군인에게 체포된 알리라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를 통하여 그곳 교육 현실이 공개되었습니다. 파키스탄 군인이 묻기를, 탈레반이 너희 지역 사람을 어떻게 가입시켰나? 알리가 말합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사원으로 불러 모아 전도를 했어요.

그다음 우리를 마드라사에 데려가서 코란의 일부 내용을 가르쳤고, 그다음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자살테러를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넌 자살테러를 실행할 생각이 있니?

 

알리가 말합니다. 알라신께서 힘을 주신다면요. 이들의 5단계 교육과정 중 3단계에 들어가면 탈레반은 아이들이 지금 사는 세상을 혐오하게 합니다.

를 들자면 가혹한 매질을 하면서 음식이라곤 마른 빵과 물만 두 번 제공하는 식입니다. 4단계에서는 어린 소년에게 순교의 영광에 대해 가르치면서 그들이 죽을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를 말해줍니다.

벽 사면에 젖과 꿀이 흐르는 호수와 72명의 처녀가 천국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모습, 끝없는 음식과 한없는 영광이 실현되어 영웅이 되는 그림으로 세뇌합니다.

 

마지막 5단계에서는 더욱 효과 있는 홍보수단으로 비디오와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이 홍보의 주된 내용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서구 사람은 일반 시민의 죽음을 신경 쓰지 않으니 서구 세력과 또 그들과 손을 잡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을 공격목표로 삼으라는 겁니다. 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현지 청소년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충분히 줄 수 있어 이들이 기꺼이 자살테러 작전에 지원하게 됩니다.

 

 

들의 관심사와 목표가 이러할진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김삼일 가족이 전심전력하여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때로는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담대히 목숨을 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 제목을 하나님의 얼굴을 찾읍시다. 로 정했습니다.

 

 

1. 무엇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내 얼굴을 찾으면(בָּקַשׁ 바카쉬).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처럼 외형의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등, 하나님의 얼굴 등으로 표현하면서 외모를 소개합니다.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의 외형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이해하고 만나기 위한 의인법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각각 타고 나지만 요즈음은 성형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다르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관상쟁이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합니다.

타고난 얼굴이 진짜 관상인데 다 뜯어고쳤기 때문에 관상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를 따라 변하고, 기후 따라 변하고, 감정 따라 변하고, 분위기 따라 변하나 하나님의 얼굴은 영원히 변치 않는 얼굴입니다. 14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할 당위성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신령한 것입니까? 아니면 육신에 관한 것입니까? 신령한 세계를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길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방책으로 두 가지 방법을 안내합니다.

 

①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악한 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악한 자의 길을 따르면 감사의 길을 잃어버립니다. 욕망의 노예로 삽니다.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릅니다. 이 길은 멸망의 길이요 진노의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악한 자의 길에서 서성입니까? 돌아서십시오. 돌아서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며 진정한 회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말하기를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합니다(03:08).

 

그런데도 선한 길로 가야 할 사람이 악한 길로 달려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한 길 보다는 악한 길이 더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악한 길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많고 또한 망하는 길은 처음에는 망하는 줄을 전혀 눈치를 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길과 악한 길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혹 악한 길에 들어섰다면 그때는 그 길에서 속히 돌아 나와야만 살길이 열립니다.

 

②스스로 낮추고(כָּנַע 카나). 단순한 일시의 겸손이 아닙니다. 나의 무력감을 고백하면서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자세를 말합니다.

감상에 젖는 겸손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은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세에서 나옵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성경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라는 자세가 진정한 낮춤입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찾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내가 하늘에서 듣고(שָׁמַע 샤마). 12절에도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셨다고 하였고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은 보고, 듣고, 말씀하시고, 오시고, 가시고, 일어나시고, 동행하시고 일하시는 분임을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느낍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느낍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단 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제일 처음 그러니까 기적의 출발점이 어디라고 보십니까?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달리 무소 부재하신 분입니다. 어느 곳이나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성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하늘에서 듣는다는 말은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믿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사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에게 향하는 자의 기도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때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왜 문제를 풀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없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데도 안 풀립니까?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기 때문 아닐까요? 풀려고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들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대상 28:08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이 보는 데에서와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사모하는 자의 눈빛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반면 싸우고 증오하는 사람의 눈빛은 독기가 서리고 무섭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전능자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들으십니다. 들으시면 그때는 응답이 옵니다.

 

 

3. 마침내 땅을 고쳐주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죄를 사하고(סָלַח 살라흐)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רָפָה 라파). 죄를 사한다는 말과 땅을 고친다는 말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 죄 사함의 은혜를 입어야만 그 땅에 평화가 임하고 고침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 땅을 고친다는 말의 의미는 토지를 바꾼다는 뜻이 아닙니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토질은 토양의 환경을 개선하면 됩니다. 박한 땅을 객토(客土)하거나 시비(施肥)를 해서 기름진 땅으로 바꾸면 됩니다.

그러나 땅을 고친다는 말은 그런 의미를 넘어서 당면한 현실과 연관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당시는 인간의 의식주를 비롯한 전반 생활이 토지의 소산물에 의존하였습니다.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여기서 말하는 땅은 거기 사는 사람과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토산물, 채소, 곡식, 과일 등 다양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토지의 소산물이 황폐해졌어도 죄 사함과 함께 땅의 소산물을 능히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땅을 고친다는 말을 좀 더 넓게 우리의 신앙생활 환경에 적용하여 살펴봅시다. 예를 들자면 경제활동, 정치활동, 사회활동 등에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육신이 살려면 문화와 환경도 고침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음으로 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우리가 아픔과 신음을 낼 때는 다 들으십니다. 국가의 당면한 상황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어떤 환난과 고통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아무리 황폐되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내 가정이 아무리 위기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내 사업이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탕자와 같은 자리에 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새롭게 아들의 자리에 앉혀주십니다. 돌아와서 기도하고 치료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꾸짖지 않고 고쳐주실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얽히고설켜서 잘 안 풀릴 것 같은 문제들을 가득 안고 있습니까? 다 고침 받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고침을 받고 기쁨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삶의 영역을 고칠 수 있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심령도 오픈하고, 내 가정도 오픈하고, 생업의 터전도 오픈하고, 우리 교회도 오픈하여 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내 안에 찌들어 있는 묵은 죄악의 때를 벗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부흥이라는 찬양을 함께 불러 볼까요? 반주에 맞추어 힘차게 부르겠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에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