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다윗을 물질로 후원한 바르실래(삼하 19:31~3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12. 1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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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임종이 가까워지면 자기를 돌아보고 사후에 될 일들을 미리 내다보며 주변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노후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더욱 주변을 잘 살펴서 믿음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다수가 마지막 장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의 선교와 관계된 사람들 이름을 거명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잘 챙겨주라는 권면입니다(로마서, 옥중서신 등).


다윗( דָּוִד)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었을 무렵(B.C. 1030년경~B.C. 970) 더는 왕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습니다.
언제쯤 인생이 끝날지도 모르는 생명 앞에서 한 날은 아들 솔로몬을 불러 놓고 앞날을 위해서 몇 가지를 유언합니다. 왕상 02장에 그의 유언이 나옵니다. 바르실래라는 한 개인을 지명하여 그 아들에게 왕의 상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 은총을 베풀라고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왕상 02:07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길르앗의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그렇게 특혜를 받을만한 귀족 출신입니까? 아니면 특별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유언합니까길르앗은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의 작은 시골 동네입니다

다윗은 이곳에 살던 바르실래가 죽자 그의 아들들을 솔로몬에게 공손하게 대접하라고 합니다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다윗을 물질로 후원한 바르실래로 정했습니다

 

 

1. 바르실래는 다윗 왕의 어려움을 물질로 섬겼습니다.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새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 하였더라.


다윗의 40년 통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아주 치욕 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한 번도 꾸짖은 적이 없을 정도로 사랑했던 셋째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 아버지를 반역하게 된 일입니다. 압살롬이 일으킨 반역 때문에 다윗이 왕궁에서 쫓겨가는(삼하 15:14~16) 일을 당했습니다.

기가 막힐 일이지요. 얼마나 황급한 일을 당하였으면 감람산 길을 갈 때 맨발로 갔다고 했겠습니까? 다윗은 여러 지방을 거쳐 요단강 건너 동편 길르앗 땅 마하나임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마땅한 거처도 없고 먹을 양식도 거의 떨어진 상황입니다심히 어려운 고통 상황에 부닥쳐 있을 때 바르실래라는 지역 부호가 많은 전쟁 물자와 식물을 가지고 다윗을 찾아왔습니다참으로 고마운 일 아닙니까

 

삼하 17: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29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바르실래가 가져온 물품 중에는 침상과 대야가 있습니다. 침상은 군사들이 야영에 필요한 담요와 침구를 뜻하며 대야는 전쟁에 필요한 야외용 가마솥입니다.
이는 바르실래의 공궤가 단순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만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물자까지 제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의 물질이면 마음과 뜻과 정성과 희생이 뒤따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바르실래의 이런 섬김은 그야말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바르실래가 이렇게 다윗을 극진히 대접할 때는 왕의 위엄을 갖추고 권세를 부리던 때가 아닙니다. 쫓겨 다니는 때입니다. 온전한 군영도 갖추지 않은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리면서 비방하고 곁을 떠날 때입니다. 사람은 알고 보면 누구나 권력과 부귀를 쫓아다니는 속성이 있지 않습니까? 힘 있는 사람에게는 찾아가서 아부도 합니다.

 

눈도장을 찍기 위해 가까이합니다. 그러다가도 그 사람이 권력에서 내려오면 그때부터 모른 체 하며 떠나 버리는 속성 말입니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힘을 잃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처지에 있을 때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이 바르실래가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 지향적인 인물입니까? 아무리 보아도 아닙니다.

 

당시 80세 고령입니다(삼하 19:35). 육신을 가누기에도 상당히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직접 많은 물품과 음식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상당한 기간 정성으로 도왔습니다. 이런 용기야말로 믿음의 행위이며 본받을 만한 행위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런 일은 믿음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잠 0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 바르실래는 세상 즐거움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4절은 바르실래가 나이가 많음을 이유(老齡)로 다윗의 보은(報恩)을 겸손히 사양합니다. 바르실래는 자기의 위치를 잘 알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모가 남이 없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 삶이 향기롭습니다.

바르실래는 부자들이 흔히 범하는 교만(삼상 25:09~38)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곤경에 처해 있던 다윗을 위문한 일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삼하 17:27~29). 바르실래의 선행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바르실래는 살아가는 삶의 목적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세계에서는 상당한 부자였습니다. 한마디로 거부입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자기가 가진 재물을 자기만을 위한 일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국가관이 뚜렷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처럼 세상 흐름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일하시는 알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잘 헤아렸습니다.

바르실래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리며 그렇게 살고자 힘쓰는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일을 풀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왕궁으로 돌아가는 일에 큰 힘이 되어준 사람입니다.
만일에 반란자 압살롬이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와준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가족 전체가 몰살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합니다.
삼상 22:16~19절을 보면 제사장 아히멜렉이 사울왕 몰래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사울왕에 의해 그 집안 식구 85명이 몰살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삼상 22: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이런 무지막지한 사건을 바르실래가 소문을 들어 능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르실래가 쫓기는 다윗과 그 수하들의 식생활까지도 돕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런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사용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지금은 비록 쫓기는 몸이지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분을 도와야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바르실래가 만일 권력에 기웃거렸다면 쫓기는 다윗보다 현재의 권력자 압살롬의 눈치를 보았을 겁니다.
길르앗 로글림의 족장인 바르실래가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권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도 그는 권력을 빼앗기고 도망 다니는 다윗을 도왔습니다. 이런 일은 생명을 건 믿음의 모험입니다. 우리는 바르실래가 행한 일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가 물질이 남아돌아서 이런 일을 한 겁니까? 아닙니다. 물질을 어떻게 선용하여야 하는 물질의 가치관을 바로 가졌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을 사는 동안 믿음의 눈을 뜨고, 시대의 흐름과 무엇이 옳은지, 믿음의 사람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3. 바르실래의 물질 후원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마침내 다윗왕의 군대가 압살롬을 진압하여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기를 위해 선한 봉사를 한 바르실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후를 나와 같이 왕궁에 가서 편안하게 살자고 요청합니다(33).

일국의 왕이 바르실래의 남은 인생길을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이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황송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 바르실래가 아주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새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바르실래는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향한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물질을 지원하였습니다. 반대급부를 바라고 도운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을 베풀 때 대가를 생각하고, 순수한 희생보다는 보상을 염두에 두면서 내가 이것을 행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저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줄까를 따져봅니다.

그래서 약자보다는 강자를 공궤하고, 가난한 자보다 부한 자 공궤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권력자 주변에 사람이 모입니다. 대가를 바라면 순순한 섬김이 아닙니다.
바르실래는 하나님께서 압살롬이 아닌 다윗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펼치시는 일을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감한 믿음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신앙의 생명력은 지식이 아니라 의로운 행동에 있습니다. 바르실래는 36절에서 왕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는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나는 왕의 우대나 상급을 받기 위해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왕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가오니 그렇게 아십시오.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고향에서 여생을 살다가 가족의 장지(葬地)에 묻히고 싶다는 부자 바르실래의 바람이 대단히 인상 깊습니다. 대단히 멋있는 삶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특히 열조의 묘를 중시합니다(49:29~31, 50:25). 조상의 묘 곁에 함께 묻힘으로써 사후에도 조상들과 연관된다고 믿었습니다.

바르실래도 자기의 최후 안식처가 다윗과 함께 지내는 안락한 왕궁이 아니라 부모의 묘 곁이기를 원했습니다. 동시에 왕이 호의를 받아 김함을 소개합니다. 이 아들을 왕의 처분대로 하십시오.

 

김함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습니다. 왕상 02:07으로 보아 바르실래의 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70인 역).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대신 왕에게 부탁하며 자기는 노후의 삶을 잘 정리합니다.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입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어느 작은 호텔에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들어와서 하룻밤 투숙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호텔의 접수 담당자는 지금 이곳 타운에서는 세 건의 컨벤션이 열려 호텔마다 초만원입니다.
저희 호텔도 만원이지만 지금 시간이 새벽 한 시인데다 비까지 내립니다. 두 분을 밖으로 나가게 할 수도 없군요. 괜찮으시다면 제 방을 사용하십시오.
작고 비좁지만, 하룻밤은 두 분께서 주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며 종업원은 노부부에게 자기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노부부는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나서면서 종업원의 인적 사항을 적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제는 참으로 고마웠네.

자네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의 최고 경영자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어. 내가 자네를 위해 호텔을 한 채 지어주지. 그 말을 듣고 종업원은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 후 2년 지난 어느 날 종업원은 뉴욕행 항공권과 함께 방문을 요청하는 그 노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종업원이 뉴욕에 도착하자 노인은 그를 데리고 시내 중심가로 가서 요정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식과 모양으로 지어진 50층짜리 호텔을 보여 주었습니다.

 

종업원이 넋을 잃고 호텔을 바라보고 있을 때 노인이 말합니다. 이 호텔은 자네에게 경영을 맡기려고 내가 새로 지은 호텔이야.
오늘부터 자네가 이 호텔의 책임자가 되어 경영을 맡아 주게. 그 종업원은 번갯불에 맞은 사람처럼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말합니다. 자기 방을 내줄 정도로 손님을 생각하는 종업원이라면 능히 호텔을 맡아서 경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자네에게 맡기는 것이니 잘해 보게. 1930년대 유명했던 Waldorf Astoria 호텔 사장과 그 호텔의 초대 지배인이 된 조지 C. 볼트의 이야기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은 이렇게 큰 복으로 다가옵니다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주변을 신앙의 눈으로 보십시오. 정의로운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들이 대단히 많습니다그러므로 세상에 사는 동안 바르실래처럼 정의로운 편에서 이웃을 바라보십시오.

조건 없이 일해 보십시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일해도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행한 대로 상급을 내려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보상을 현실에서도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