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일 아침에 어머니가 아들 방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말을 합니다. 얘야, 일어나야지 교회 갈 시간이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노크하며 일어나라고 하지만 역시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자는 아들의 귀에 대고 외칩니다.
교회 늦겠다. 그랬더니 아들은 피곤한 얼굴을 들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머니, 제가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➀교인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고요. ➁저도 교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도 가야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올 해 네 나이가 50이다. 둘째로 너는 그 교회 담임 목사이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작가요, 방송인이며 행복 전도사로 불렸던 최윤희(63) 씨가 10월 7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모텔에서 남편 김 모 씨와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지금 언론은 야단법석입니다. 최 씨가 남긴 유서에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다. 나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나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입니다.
얼마나 지병의 고통이 심했으면 죽음을 선택했겠습니까? 요즘 대다수 사람이 나는 삶에 지쳤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질환이 우울증과 무기력증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 상태 이것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소위 영의 무기력 혹은 영의 침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이런 증상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의 암과 같은 요소인 영의 무기력을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신령한 탈진을 극복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함께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지금 이스라엘 처지가 탈진 상태입니다. |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01~39장은 전반부로서 심판과 정죄의 메시지이며 40~66장까지 후반부는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후반부의 첫 장 40장은 바벨론 칠십 년 포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구원의 손길에 대한 확신의 메시지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형편이 어떤지를 보겠습니다. 이사야서 전반부 내용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우상을 섬기다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에 잡혀간다는 내용입니다.
또 그렇게 잡혀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초기에는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 속에서 억압과 고통을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등 한 세대가 흘러갔습니다. 그리하여 칠십 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긍지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사람들은 고국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해방에 대한 기대가 난망(難望)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며 절망에 사로잡힙니다. 그 표현이 27절입니다.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סָתַר 샤타르).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일에 관심이 없는 하나님,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내뱉습니다.
사실 그들이 처음 포로 생활할 때는 머지않아 이 생활이 끝이 날 것이고 그러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소원에 대해 침묵하시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분인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낙심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우리의 이 원통함, 이 사정을 하나님은 알지 못하신다는 마음이 들면서부터 그들의 삶은 더욱 피곤해졌습니다. 이제 삶의 의미와 감격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절망의 자리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무기력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지금 불평하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이런 상황에 사로잡힐 수가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중에도 혹 이런 생각이 마음을 흔들어 댑니까?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는 흔적이 나타납니까?
교회 출석은 하지만 계속 세상살이가 힘들어 좌절과 포기의 삶을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분명 해결책이 보입니다.
2. 지금 우리도 절망 중입니까? |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이스라엘이 왜 피곤합니까? 우리는 왜 피곤합니까? 앞날에 대한 예측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도 초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만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체되면서부터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들의 삶이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현실을 사는 우리도 기도가 응답 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이 벽에 막혀 있을 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를 돕지 않습니까? 이 고난의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됩니까? 라는 불평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어떤 일로 지쳐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탈진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일이 무엇입니까?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시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의기소침과 무력증에 빠져 기운을 잃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려고 이사야서 제2부를 기록하셨습니다. 동시에 바로 우리 자신의 무기력과 절망을 깨뜨리려고 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이사야 40장부터 이스라엘이 칠십 년 포로 기간이 지나면 바벨론에서 돌아와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한 많은 포로 생활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 먼 광야 길을 거뜬히 걸을 수 있는 그런 힘을 주시겠다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이 소망이 메시지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국 바벨론의 속박에서 해방을 주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만 붙잡고 나가면 마침내 승리의 자리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십니다.
이런 약속이 있는데도 왜 지쳐있습니까? 왜 절망 가운데서 피곤하게 지냅니까? 일어서십시오.30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때로는 쉽게 지칠 수 있고, 기운을 잃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젊은 청년들도 피곤하여 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일에 시달리다 보면 당연히 지치고 기진맥진할 수가 있습니다.
기운이 쇠진하면 분명히 낙담하는 자리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치지 않는 분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불어넣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임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속 사람이 피곤을 이기도록 새 힘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삶에 지친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시고, 기운을 잃은 자에게는 기력을 주십니다. 29절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시겠다 하십니다.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새 힘(כּוֹחַ 코아흐)을 얻으리니. 힘을 바꾸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방전된 건전지를 충전된 것으로 바꾸듯 새 에너지를 공급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새 힘을 공급해주신다면 이는 방전이 없는 완전 충전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런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앙망은 하나님만 믿고 그분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에 생명을 거는 자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시 27:0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뿐만 아니라 앙망은 강하게 비틀어서 꼰다는 뜻으로 밧줄의 뜻도 있습니다. 이는 여러 가닥을 엮어 꼬아서 더 튼튼한 줄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이 한데 엮어져 나의 약함은 완전 가려지고 하나님의 강한 능력만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란 나의 약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바로 여호와를 앙망함에서 나오는 힘을 얻는 일입니다. 이 힘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힘입니다(시 63:15).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교회는 나오지만 세상살이가 힘들어 좌절과 포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은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한창 자라는 소년에게는 피곤하다 곤비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장정이란 임무 수행을 위해 특별히 뽑는 일꾼을 말합니다. 이들도 넘어지며 쓰러집니다. 무기력하게 기운을 잃고 비틀거린다는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이 넘치도록 솟아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날마다 생동감 있는 삶을 삽니다. ➀올라가는 신앙을 갖습니다. ➁달려가는 신앙을 갖습니다. ➂성취하는 신앙을 갖습니다. ➃앉은뱅이를 뛰게 합니다. ➄사명을 회복시킵니다(눅 24:13~35).
조류 연구가에 의하면 독수리가 앉아 있을 때는 매나 비둘기나 크기와 모양이 약간 다를 뿐이지 그 외 것은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하늘로 날게 될 때 그 두 눈은 이중 렌즈와 같이 되어 있어서 푸른 하늘, 찬란한 태양을 직시함으로 인해 엄청난 힘이 발생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성도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날개를 펴면 세상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힘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히 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현대를 가리켜 무한 경쟁 시대라고 합니다. 경쟁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우리의 신령한 부분까지도 탈진하게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요즘 수능준비, 고입시험 준비, 공인중개사 준비 등 준비하느라 대단히 피곤하고 힘들지요? 여러분의 삶에 힘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에게 지혜와 명철이 혹 부족하다고 느낍니까? 요즘 생활이 지치고 딱하고 답답합니까?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은 썩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열정으로 얼굴에 빛이 납니다. 고여 있지 마시고, 멈춰 있지도 마십시오.
삶은 지루하거나 권태로운 것이 아닌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모든 일에 믿음으로 몰두하고 도전할 때 삶의 권태기는 떠남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의 신령한 탈진이 하나님의 힘으로 인하여 크게 업그레이드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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