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나는 선교의 삶을 삽니까?(행 01:01~0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9. 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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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죽을 파는 두 가게가 있었습니다. 두 가게는 맛도 가격도 비슷했지만 늘 한 가게의 매출이 더 높았습니다. 컨설턴트가 가게를 지켜보며 고객과의 대화를 분석했는데 오른쪽 가게의 종업원은 죽을 내오면서 손님에게 달걀을 넣을까요? 말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대신 왼쪽 가게 종업원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선한 달걀을 하나 넣을까요? 두 개 넣을까요?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죽집의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짧은 말 한마디도 긍정의 사고는 복된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외국 어떤 경영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자기 암시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이야말로 좋은 날이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된다. 저녁에는 일기에 그날의 좋은 일을 써놓고 그러므로 좋았다. 라고 끝을 맺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내일은 나의 생애 최고의 날이 된다. 라는 암시로 신념을 강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은 시합에 지고서도 졌다. 라는 소극성의 말이 싫어서 이번에는 자네가 이겼네. 다음에는 내가 이길 것이다. 이렇게 긍정의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 목표에 도달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를 향한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선교의 헌신자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0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면서 「나는 선교의 삶을 삽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제자들이 우선으로 생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0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름대로 감을 잡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때인 줄 알고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으로 보아 주님께서 약속하신(04절) 말씀에 대하여 상당히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3년 기간 동안 줄곧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보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그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막 10:35~45).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다시 정치에 관한 기대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06절 말씀을 묻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곧 떠나실 것을 예상하니 시기적으로 대단히 급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의 정치 상황과 로마의 식민지 체제 아래서 대단히 힘겨운 생존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옛 왕국을 조금은 회복했으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조공으로 겨우 나라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다 주전 63년 봄쯤 로마의 폼페이 장군의 예루살렘 진출로 인해 이스라엘은 국권을 잃은 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후에 이방인 출신 헤롯이 로마의 황제에게 아부하여 이스라엘의 왕권을 받아서 33년간 통치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을 역사에서 헤롯 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이 헤롯이 재임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고통 속에서 소득의 약 40% 정도가 직접 간접 세금으로 떼이며 궁핍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헤롯왕은 각처에 자기를 위한 궁전을 늘렸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신전도 지었고, 예루살렘 성전도 수축하였고 정권 유지를 위해 비천한 행동도 하였습니다.

유대의 왕이면서도 유대의 윤리와 법률에 무관심한 채 각종 세금 거두는 일에 진력하다 그만 죽고 맙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분할통치의 분봉 왕(¼왕, 마 02:22, 눅 03:01) 시대를 맞이합니다.

 

눅 03:0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헤롯 왕가의 각 분봉왕은 갖은 횡포와 술수로 약탈하고 착취함으로 백성들이 더는 정상의 삶을 지탱하기 힘든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주님을 모시고 로마로부터 무기력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자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민족 해방의 사명이 자기들에게 주어졌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삼 년 동안에 많은 군중이 따라다녔고 특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는 군중이 왕으로까지 추대하려 한 것도(요 06:15)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 우선으로 생각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0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를 통해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급선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나의 마음에 품고 있는 복음의 열정은 무엇입니까? 그 열정이 주님의 뜻과 일치합니까? 주님의 뜻과 일치함으로 나는 지금 어떤 복음의 열정으로 뛰어다닙니까?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민족을 해방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령한 해방운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해를 좀 잘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또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무리에게 잡혔을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벤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주님은 당시의 관심사인 자유와 해방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요 08:32) 말씀하셨습니다. 민족 해방이나 세상 부귀 안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세상에 오신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왕국 건설과 확장 운동이었습니다. 이 일을 제자들이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δυναμιν)을 받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야말로 몸 된 주님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멤버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권능이란 폭발력을 지닌 다이너마이트를 의미합니다. 이런 권능은 우리 힘으로 생성되지 않고 성령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슥 04:0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제자들이 받아야 할 그 능력이란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힘입니다. 그 능력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자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복음 전파의 간절한 마음이 있다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전도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과정과 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막연히 전도하려는 생각으로는 효과 있는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효과 있는 전도 프로그램 속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면 그것이 바로 권능입니다. 예수님도 성령님과 그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행 10:38).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사도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의 영역을 요약하는 말로서 이 지역 명칭은 마치 본서의 목차와 같습니다. 본서에 의하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01~07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08:01~11:18) 전 세계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11:19~28:31).

 

내 증인(μαρτυρες)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은 순교를 각오하여야 하는 삶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시제는 성령님 강림에 대한 약속의 실현과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을(요일 01:01) 순교하는 자세로 입증해야 함을 말합니다.

 

 

 3. 어떻게 하여야 선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①생활 속에 전도의 열정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받아서 얼마나 기쁜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를 전하려고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열어야 할 전도의 문을 아십니까?
①대문을 열어야 합니다 ②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③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④교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만나면 어떻게 전도할까? 기회를 찾는 습관과 전도를 위하여 먼저 상냥하게 말을 붙이는 습관이 전도의 열매를 거둡니다.

 

②내세의 삶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도 예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옥을 향해 힘차게 달립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자녀가, 내 친척이, 내 동료가, 내 민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전도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만 되면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혜의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지옥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고 알려 주지 않음으로 복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영혼을 향한 애타는 마음과 올바른 신학이 있는 사람은 선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③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은 사람만이 선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고 자동차나 금전이나 옷에 대한 흥미만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선교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 무엇에 흥미를 느낍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흥미와 최고의 취미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의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부동산을 위해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자동차를 위하여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향락을 위하여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실 기억하십시오.

 

현재 우리 믿음의 가족은 무엇에 최고의 관심이 갑니까? 만약 사람에 관한 관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여, 내 마음을 변화시키고 내 눈을 돌려서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입술에 있을 때 선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는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지옥을 향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선교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선교의 일에 동참하십시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구원의 자리에 오지 않은 어느 영혼을 위해 얼마나 기도합니까? 성경 찬송가 책갈피에 명단을 적어 놓고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로 인하여 누군가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선교에 동참하는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자신만을 돌아보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내 이웃과 내 가족도 돌볼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런 삶에 우리가 동참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 정신과학 연구소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95% 이상이 소극적이며 95% 이상이 열등감을 느끼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소극의 자세와 열등감이 있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적극성을 뛴 자신 있는 사람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전도자의 자신감과 열등감은 본인의 태도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구호를 외치면 어떻겠습니까? ①전도는 쉽다. ②나도 할 수 있다. ③나는 전도에 자신 있다. ④나도 한번 전도에 도전해 보겠다. ⑤내가 변해야 우리 교회가 성장한다. ⑥우리 교회 성장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전도자는 전도를 시도하기 전에 찾아오는 패배자의 열등감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걱정, 체면, 염려, 부끄러움, 자존심, 두려움, 패배주의라는 거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