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생각을 바꾸면 문제가 풀립니다(왕하 05:01~1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9. 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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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과 캐나다인 그리고 촌사람 하나가 배가 좌초되어 미지의 섬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라곤 코코넛 열매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들은 서서히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램프 하나가 해변으로 밀려오자, 영국인이 그것을 집어 들었습니다.

램프를 문지르니 지니가(genie) 튀어나와 각자에게 소원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진 영국인이 말합니다. 나의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니가 손가락을 한번 탁 튕기니 영국인이 사라졌습니다.

캐나다인도 말합니다. 나도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니가 역시 손가락을 한번 탁 튕기니 캐나다인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촌사람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너무 외로워요. 하면서 울며 말합니다. 그 두 사람 다시 돌아오게 해주세요. 결국 두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마음이 잘 열려 편안하게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 심령의 문을 잘 열고 말씀 받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삶의 방향을 한번 바꾸고 싶습니까? 생각을 바꾸면 그 삶의 방향도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마음을 먹기에 따라 내가 절망의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내 삶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삶으로 펼쳐 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인물인 나아만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생각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납니다.
다행히도 주위 사람들의 간곡한 만류로 마침내 부정의 생각을 긍정의 생각으로 전환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나아만 장군의 교만이 바뀌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해서 병이 치료되는 복을 받았습니까? 긍정의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생각을 바꾸면 해결됩니다.로 정했습니다.

 

 

1. 나아만의 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0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람(אֲרָם) 왕국은 지중해 해변을 끼고 유프라테스강까지(10:22, 25:20) 넓은 평원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키운 유목(遊牧) 국가입니다. B.C. 13세기경 시리아에 침입하여 헷 족속을 제압하고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오늘의 시리아로서 아람 왕국이 확장되어 세력을 떨치게 된 과정에는 나아만 장군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공신입니다.

아람의 구국(救國) 공신으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병권을 쥐고 있는 나아만에게 언제부터인가 나병(癩病 한센 씨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 나병의 특징은 자기도 모르게 감염되어 오랜 기간이 지나서 알게 되는 병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고통의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마디가 점점 죽어 나중에는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꼬집어도, 불에 살갗이 타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병입니다.

나아만이 영웅 대접을 받는 사람이고 또한 가장 행복한 조건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불행한 사람 중에 속합니다.

오늘날이 아닌 그 시절에 나병 걸렸으니 인생 끝난 것과 같습니다. 소망을 잃은 것과도 같습니다. 왕도 알고 안타까워하지만, 별 방법이 없습니다.

 

좋은 의원에다 좋은 약을 다 구하여 치료해 보았겠지만, 날이 갈수록 나아만의 병은 더 심해졌습니다. 집안 분위기 역시 침울했을 것입니다.
이때 놀라운 소식 희망의 소식이 들립니다. 나아만이 전에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사로잡아 온 한 소녀의 말을 통한 소식입니다. 이스라엘에 치료를 잘한다는 선지자가 있다는 소식입니다.

 

0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지금 굿 뉴스를 전하는 소녀의 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포로로 잡혀 와서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종으로 사는 기막힌 인생입니다. 솔직히 이 소녀를 종으로 부리는 상전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으니 이 얼마나 고소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소녀는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가 되기를 원합니다. 자기 여주인에게 사마리아의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기만 하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아마 종으로 잡혀 오기 전에 엘리사의 능력에 대해 들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확신이 있었으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하겠습니까? 거짓을 말하거나 말한 대로 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모든 위험을 능히 뛰어넘는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확실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작은 소녀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이 이방 땅에도 전파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 지극히 비천한 자처럼 보여도 들어 쓰십니다(고전 01:28).

 

고전 0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 나아만은 치료를 위하여 엘리사에게로 갑니다.

 

0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 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 엘리사에게 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보잘것없는 여종의 말에 군대 장관이 움직이고 왕도 움직입니다. 거기다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보낼 친서를 나아만에게 들려주고 말입니다.

물론 병이 들고 위기에 처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은 누구나 같습니다. 그래도 좀 살펴보고 또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 말입니다.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이 종의 말 한마디를 믿고 부산하게 움직이다니 이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러나 평상시 소녀가 얼마나 성실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얼마나 신실했으면 나아만의 아내도 믿고 나아만 장군도 믿을까요?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말을 사람이 얼마나 믿어 줍니까? 여러분의 말은 분명히 지켜지는 보증수표와 같습니까?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기만 하면 비록 종과 같은 처지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나아만은 자기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큰 기대 속에 왕의 친서와 예물을 가지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왕궁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아만 장군이 가지고 간 예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05절로 환산해 보겠습니다은 십 달란트. 한 달란트는 삼천 세겔로서 오늘날의 무게로 환산하면 무려 342kg이나 되는 양입니다(38:25, 27; 왕상 16:24).

금 육천 개. 두 달란트로서 약 68.4kg 정도입니다. 의복 열 벌. 매우 높은 고급품으로서 상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예물입니다.

대단한 예물 목록입니다. 나아만은 이제 여호람 왕에게 아람 왕의 친서(親書)를 내어놓습니다. 그 공적인 외교 문서의 내용이 이러합니다.

 

0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당시 이스라엘보다 아람이 더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고자세로 친서를 보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병의 근원을 뿌리째 뽑으라는 명령처럼 보입니다.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이 친서를 읽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로 보아 당시 이스라엘이 아람의 위압에 눌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분노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아람 왕의 친서를 오해하여 분노가 일어납니다. 여호람 왕은 친서를 받아 들고 자기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중대한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왕에게 고쳐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부탁입니다.

 

여호람은 선지자 엘리사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해서 열 받고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라면 엘시사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망을 동원하여 진작 엘리사 선지자의 능력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가 왕에게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통보합니다(08).

 

0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3. 나아만이 병을 고치려면 자기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09절을 보면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자기는 수레 위에 위엄 있게 버티고 앉아 있는 상황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뛰어나와 공경하는 자세로 장군님 오셨습니까? 하면서 예를 갖추어 병을 고쳐 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에서 엘리사를 대신하여 나온 사환이 말합니다. 장군께서는 저 요단강 물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깨끗해집니다(10).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는 장면을 보십시오. 열 받아서 하는 말을 보십시오. 내 생각에는 그가 정중히 내게 와서 그의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환부에 얹고 안수기도해서 고칠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기대와는 다릅니다.

나아만은 자기는 왕까지는 아니지만 아람 나라의 대장군이고 엘리사는 약소국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알고 보면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 생각은 옳고 높고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 생각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 불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아만은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먼 길을 귀중한 물품들을 싣고 왔습니다. 그런데 현장 분위기가 자기 생각과는 달리 진행되자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 나아만의 종들이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장군님 이왕 병을 고치러 왔으면 엘리사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도 한번 해 보십시오. 사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사로부터 환대가 아닌 홀대를 당하여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습니다. 거기다 엘리사가 있던 사마리아 고지대에서 멀리 요단강까지 가서 의식을 해야 합니다. 물속에 몸을 일곱 번이나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화가 막 나 돌아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으로 가면 많은 부하와 종들 그리고 많은 구경꾼이 자기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물속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을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거 체면 말이 아닙니다.

웃음거리잖습니까? 그래도 살려고 하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지금 종들이 장군님 하면서 간절히 권하는 것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자기 종들 권면 뿌리치고 가면 다시 엘리사에게 돌아올 일 없습니다. 다음 명령을 받거나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처방전도 없습니다.

 

나아만이 결국 순종합니다. 한 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병이 나았나 하고 손등을 살펴보지만 병은 그대로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피부를 보아도 그대로입니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을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역시 그대로입니다.

이제 마지막 최후의 일곱 번째 물속에 들어가서 씻었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니 일그러진 피부가 하얗게 어린아이 피부처럼 낳아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잠그라는 처방 자체가 어려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나아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존심을 꺾는 일이 어렵습니다.

살기 위해서 내 자존심을 다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을 바꾸고 행동도 바꾸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상대편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미래를 성공으로 바꾸기를 원합니까? 환경을 행복하게 바꾸기를 원합니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미래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인생도 바뀝니다.

성공을 열어가는 열쇠는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 불행을 행복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가난을 번영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갑니다.

나아만이 치료를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여러 사람의 권면을 받아 요단강으로 가서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이것 하나는 꼭 아십시오. 요단강이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에 들어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치료의 기적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불신의 생각,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로 생각을 바꾸십시오. 말씀으로 생각을 바꾸십시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존재합니다.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인생을 바꾸어 갑니다. 성령님께서 내 완악한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도록 감동할 때 순순히 맡기십시오. 기적이 찾아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에 따르기로 합니다. 생각을 바꿉니다. 나병으로 평생을 지내야 할 처지를 하나님을 높이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도 위세가 당당하던 나아만 장군이 이제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뛰어와서 공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