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어린이주일] 자녀의 신앙교육은 어떻게 합니까?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5. 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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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회자합니다. 아내와 자식을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보내놓고 자기는 외롭게 생활하면서 돈을 벌어 붙여 주는 아빠를 말합니다. 유학비용을 대는 경제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원룸에서 술과 담배로 달래는 일이 허다합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다 다행히 만나러 가는 기러기 아빠도 있습니다. 물론 경제의 여유가 있어 언제든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독수리 아빠도 있고요.

기러기 아빠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자식만은 남들보다 뛰어나게 키워야겠다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해외 유학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맹목적인 기대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치열한 교육과정에서 우리의 자녀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 다른 환경으로부터도 강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지식과 간판을 위주로 하는 머리 학교는 많습니다. 반면 인성 교육을 제대로 하는 심장 학교는 별로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부 부모님은 자녀를, 일등을 목표로 하는 경마용 말과 같이 기릅니다.

아이의 꿈은 뒷전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자녀에게서 장래가 대단히 암담해 보입니다. 어쩌면 절망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가족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계속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가정에서 신앙 교육으로 인격을 다시 출발시켜야 합니다.

상실된 신앙 교육 회복할 자녀의 신앙 교육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자녀의 자녀의 신앙 교육 어떻게 합니까?로 정했습니다.

 

 

1. 마땅히 가르칠 일이 있습니다.

 

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르치라(חָנַךְ 하나크). 본 절의 핵심 단어입니다. 뜻은 훈련을 시킨다, 가르친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일생을 바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아이를 훈련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아이의 일생을 바치는 일입니다. 그러면 마땅히 행할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임신하면 바로 태아 교육을 합니다. 성경을 날마다 암송하고 낭독하여 그 아이에게 전달되도록 합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어머니의 젖과 함께 율법을 따랐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18세가 되면 율법에 대한 시험도 치릅니다.

 

딤후 0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어려서부터 라는 이 말은 디모데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성경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취학(就學) 아동부터 교육합니다. 중요한 것은 취학 전에 가정에서 성경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격 형성이 달라집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가르치는 것이 기본 신앙 원리입니다. 신앙 교육의 출발이고 신앙 교육의 과정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성경 과목을 체계 있게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심령에 새기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 학문을 집어넣으려고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파묻히도록 합니다. 이 일이 우리가 할 교육이며 우리 교단의 교육이념입니다.

 

세계의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대부분 철저한 성경 교육을 받고 그 교육에 충실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교회에 나와 설교를 통해 공부하고,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며, 선생님의 각종 공부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는 겁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믿음의 자녀가 성경을 읽게 하십시오.

 

성장하여 고등교육을 받을 때 말씀을 강요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듭니다. 또 성장하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와 항상 함께 살 수 없으나 어릴 때부터 가르친 성경 말씀은 언제나 자녀를 지켜주고 위로해 주고 인도해 줄 것입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입니다. 신실한 한 기독교인이 교회 가던 중 후미진 골목에서 빈둥거리는 네 소년을 보고 교회학교로 데려다 그들을 중심으로 반을 만들어 가르쳤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1932년 어느 날 그 선생님 생일에 그가 최초로 가르쳤던 네 소년으로부터 축하 편지를 받았습니다.

첫째는 중국 선교사에게서 왔고 둘째는 미연방 준비은행 총재에게서 왔고 셋째는 후버 대통령의 개인비서에게서 왔고 마지막 네 번째는 후버 대통령이 직접 쓴 편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자녀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보약이고 양약입니다. 이 아이를 지켜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성경을 잘 붙들도록 부모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는 기업이 되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2. 부모님은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책임자입니다.

 

삼상 0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0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는 이스라엘 최고의 권위자인 대제사장입니다. 국가 경영을 떠나 자기 가정에서는 솔선수범하여 아들이 악한 길로 나갈 때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등지는 일을 해도 괜찮은 것이라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부모가 오냐 오냐, 하며 키운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본인이 화를 당했고, 가족이 화를 당했고, 가문이 화를 당했고, 국가가 화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일을 멸망 길, 죽의 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 된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녀를 위해서 기도와 신앙의 지도와 채찍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좋은 옷에다 용돈을 넉넉히 주고 과중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의 영혼이 잘되는 교육을 꼭 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녀가 주일을 잘 지키는 법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여 주십시오. 다윗 왕의 아들 중에 아도니야가 있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고 왕국을 탈취하려 한 패역무도한 자식입니다(왕상 01). 왜 멸망 길로 갔는지 보겠습니다. 그 이유가 왕상 01:06 절을 읽어 드립니다.

 

왕상 01:0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꾸지람이나 채찍을 모르고 자랐기에 마지막에는 패륜 행동을 하였습니다. 진작부터 신앙 지도와 엄한 채찍으로 양육했다면 제게 좋을 뻔한 인물입니다.

인간의 정 때문에 엄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언젠가 씻을 수 없는 저주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이는 바로 나의 책임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자는 자녀를 잘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대인 교육에 있어서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율법 교육 즉 말씀을 통한 성경 교육과 훈계와 채찍 교육(세계에서 매를 제일 많이 때리는 부모가 유대인) 회당 교육입니다.

이 세 가지 교육을 철저히 지켜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오랜 세월 국가 없는 민족으로 지내면서도 정신과 물질 면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딤전 03:0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열정을 품고 나름 신령한 생활을 합니까? 자녀를 믿음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이 또한 부모님의 가치를 다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곁길로 나가면 엄히 책망해서라도 잘못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나쁜 습관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이 고통의 길이 될지 모릅니다.

암소는 송아지가 난폭하게 젖을 빨면 뒷발로 걷어찹니다. 어미 곰은 새끼들이 싸울 때 손바닥으로 후려칩니다. 말을 길들이는 조련사도 채찍을 통해서 훌륭한 말을 만듭니다.

 

엡 06:0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3.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0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한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 권위를 가지고 자녀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과 아버지를 비교해서 말씀합니다(103:13; 11:02).

하나님께서 자녀를 징계하는 것과 같이 부모님도 필요할 때는 자식을 징계해야 합니다. 잘못해도 계속 수수방관하면 이는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책임감 없는 부모는 자녀가 무슨 행동을 해도 너무(?) 너그러이 여겨 내버려 둡니다. 그 너그러움이 불량 청소년을 만든다는 사실 아십니까?

이들이 갈 곳은 교도소일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늙어서도 그 말씀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복을 누립니다.

이런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통제나 굳건한 도덕성 없이 자라면 결국 그 앞날은 행한 대로 열매를 먹습니다. 불량청소년 되는 것 쉽습니다.

 

잠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부모님이 된 분들에게 이런 교훈을 전했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06:04).

무슨 뜻입니까? 엄한 경고와 채찍으로 교육하는 권면입니다. 부모님 위치에서 자녀를 꾸짖고 채찍질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력히 말씀합니다. 죄와 허물에 대한 채찍은 바르고 의롭게 양육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부모님은 이런 일이 필요하면 시행하여야 합니다. 체벌(體罰)은 바른 성격 형성에 필수 요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을 인권침해라고 교사를 고발합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여기서 상하게 때린다는 말은 즉 멍들게 때린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자녀들이 죄에 습관 되지 않도록 눈물로 기도하면서 채찍질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장영수 씨가 한국일보 칼럼에 연재한 글을 보면 4가지 형태의 부모를 말합니다.

밀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주는 부모.

뛰모. 자녀와 함께 예습하고, 과외 공부, 학교에까지 따라다니는 부모.

지모. 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뜨개질하며 지켜주는 부모.

주모. 자녀가 공부하든 말든 주무시는 부모.

 

부모님으로 자녀를 키우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로몬은 21세에 왕이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 앞에서 말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이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사람에게 남긴 글입니다.

잠언은 특별히 자녀에게 남긴 글입니다. 01장부터 매장마다 내 아들아, 훈계를 받아라, 훈계가 없으면 안 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어라.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등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원조교제를 하던 어떤 여중생들이 잡혔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는 중 왜 그런 짓을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메이커 옷이 입고 싶어서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경찰관이 너희들 도대체 이다음에 무엇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하자 그 아이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이것도 아저씨 이것도 하나의 아르바이트인데요? 모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교육 가치를 성적 순위에 두고 똑똑한 아이 만드는 일에 몰두하지 마십시오.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어린 자녀가 도덕성과 책임감을 잃어갑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공부만 잘하면 되는 줄 알면 인성이 무너집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아는 그릇된 인식이 요즘 젊은 세대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교육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은 지가 이미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이 무너진 교육의 책임은 누가 저야만 합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부모님들이 지겠다는 각오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신앙 교육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