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행복과 불행이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불행은 힘이 세었으나 행복은 힘이 약하여 늘 불행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힘이 약한 행복은 될 수 있는 한 불행을 멀리하려고 피해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불행은 어떻게든 찾아와서 같이 지내자고 권합니다.
행복이 물을 마시면 이 불행도 따라서 물을 마시고, 행복이 누워있으면 불행도 그 옆에 같이 눕고, 행복이 밥을 먹으면 불행도 같이 밥을 먹고, 행복이 잠을 자면 불행도 꼭 그 옆에서만 잠을 자는 등 항상 일체형으로 붙어만 있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행복이 한 날은 불행을 아주 멀리 떠나려고 짐을 챙기자 옆에 있던 불행도 아무 말 없이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참다못한 행복이 불행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내가 하는 대로 계속 따라만 하는 거야? 난 정말 네가 싫은데 왜 내 옆에만 있는 거지? 그러자 불행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미안해 행복아. 내가 이러는 건 너와 내가 한 몸이어서 그래.
여태 너와 내가 세상에 존재한 그 날부터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고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있었지 않니? 이 말을 들은 행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행을 감싸 안고 같이 길을 떠났습니다.
행복과 불행이란 이렇게 해서 우리 모두에게 함께 공존합니다. 이 불행이 인간관계의 경쟁자이거나 혹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임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마 잘 되었다 싶어서 쾌재를 부를 것이겠지요? 십 년 묵은 체증이 떠난 것같이 후련한 놀부 심보의 즐거움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삼천 명 특공대를 조직하여 십 년이나 따라다녔던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원수의 불행 소식을 듣고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처신을 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원수에게 불행이 임할 때 마음가짐」이란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다윗은 원수의 불행을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람의 인격은 자신의 원수를 대하는 데서 나타난다는 사실 아십니까? 특별히 자신의 경쟁자나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때 어떻게 처신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원수 관계에 있는 사울 왕이 죽었다고 할 때 어떻게 처신합니까? 매우 안타까운 마음가짐을 가집니다. 그 마음가짐이 어떤지 보겠습니다.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지금까지 당한 고난의 현장들을 돌아볼 때 이렇게까지 슬픔과 고통을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까?
다윗이 사울 왕에게 당한 일을 아는 사람은 이런 행동을 형식의 슬픔이지 내심은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당한 불행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뻐할 일인가 아닌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 109:0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다윗은 일찍부터 자신이 사울을 완벽하게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삼상 24:04, 26:12)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손으로 사울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을 들어 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하들이 죽일 것을 권할 때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퍼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곁에 같이 있는 사람까지도 저녁까지 슬퍼하며 근심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들이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슬픔을 표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쫓겨 다니는 생활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좋아들 했을 것입니다.
사실 다윗을 따르는 사람은 사울의 위협으로 인해 얼마나 힘들고 지쳐 있습니까? 그러니 사울의 죽음 소식은 분명 빅뉴스임에도 누구 하나 그렇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록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래도 좀 넓은 마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얼마든지 감싸 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런 슬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남의 불행을 함부로 이야기하면서 다윗에게 보고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아말렉 족속의 한 사람입니다(14).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그는 다윗의 진심을 모르고 자기가 사울을 죽였노라고 자랑하면서 그 증거로 사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까지 내어놓았습니다. 이런 행동을 보고하면 다윗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울이 오랫동안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을 한 일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닌데도 오직 상을 받기 위해 다윗의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면 이 보고를 받은 다윗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는 저녁까지 금식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동시에 그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한 아말렉 사람을 상이 아니라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유는 그가 자기 입으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고 자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윗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남의 불행을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그렇게도 추격하였던 원수가 죽었을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움이 아니라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조가(弔歌)까지 지어 불렀습니다. 그 조가가 19~27절까지 나옵니다.
보통 노래라면 기쁠 때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노래는 슬픈 노래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弔喪)하는 노래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도록 명령했습니다. 진정 다윗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습니다.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를 헐뜯고, 핍박하고, 너무 힘들게 하고, 내 영혼을 넘어뜨리려 하는 원수와 같은 사람이 더러 있습니까? 그들이 혹 불행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옵니까? 그래서 후련하십니까? 예 물론 후련하실 것입니다. 은근히 기분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 성인군자입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이럴 때 처신 잘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들에게 승리하는 길이란 말입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 다윗은 원수의 불행을 공동체의 입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개인으로 보면 원수지만 공동체의 관점으로 보면 자기 나라의 왕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죽임을 당했으니 다윗의 입장으로 보면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비통한 일입니다. 사울이 주권자로서 국가를 믿음으로 경영하지 못하여 위기를 초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사울은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개인감정으로 생각할 일을 접어두고 사울의 죽음을 국가 차원의 공동체 관점으로 이해한 부분을 자신이 지어 부른 노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비록 자기를 죽이기 위해 끈질기게 따라다닌 사람이지만 그래도 일국의 왕이었기에 개인의 감정을 접어놓고 나라의 영광이 쓰러졌다고 표현합니다. 이 사실을 블레셋 사람이 알면 무척이나 좋아하고 기뻐할 일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처지에서 보면 나라 전체의 큰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20절에서 가드에도 알리지 말고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라고 침묵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만나는 일을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전체에 안 좋다면 자기의 유익은 뒤로하여야 합니다. 개인으로 안 좋아도 전체에 유익이 되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신앙인의 도리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들이 목초지 문제로 자주 다툴 때 아브라함이 한 말 기억하십니까?
창 13:0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0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렇게 기꺼이 양보를 할 수 있는 것은 앞 절 07절에 의하면 그들 중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같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땅 사람이 아브라함과 롯이 어떻게 하는가를 주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도이지만 동시에 사람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 하는 중에 서로 의가 상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나 많이 싫어하는 사람이 불행한 일 만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이 사람의 잘못된 일이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같은 배를 탄 믿음의 가족입니다. 이웃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요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잠 24: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그래서 이웃이 불행한 일을 당해도 공동체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남을 미워할 것도, 남의 불행을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웃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가 혹 다른 교회로 가는 일도 있습니다. 좀 얄밉기는 하지만 미워하거나 불행이 깃들기를 위하는 마음 가지지 마십시오. 다른 교회를 놓고 평가할 필요도 없습니다.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 의견이 충돌되고 다툼이 생길 때 이것은 우리끼리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의 문제나 어려운 일을 교회 밖의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이웃의 불행을 기뻐하고 고소하게 여기면 결국 누구를 기쁘게 하는 일이 됩니까?
마귀만 기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행한 일로 인하여 우리끼리는 혹 분쟁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원수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다윗은 원수의 불행을 보면서도 장점만 생각했습니다. |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다윗이 자기가 당한 것만 생각하면 사울의 죽음은 분명 기뻐할 일입니다. 절대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적 입장으로 보면 사울에게도 장점과 칭찬할 점과 배울 점이 있습니다. 19절 보십시오
그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23절은 사울과 요나단의 관계를 가리켜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관계라고 표현합니다. 또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말은 사울의 장점을 칭찬한 말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공평하게 평가합니다. 비록 자기의 원수요 자기를 죽이려고 오랫동안 집요하게 쫓아다닌 사람 그야말로 원수 중의 원수입니다.
악한 영에 씌운 사람이지만 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도 사울의 업적을 존중하고 그의 명예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울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주관성을 앞세우면 나는 옳고 상대는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넓은 관점으로 상대를 보면 그에게 좋은 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리려 하는 좀 안 좋은 모습이 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여 맞지 않으면 다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고수합니다. 말하는 것도 틀렸고, 밥 먹는 것도 틀렸고, 모든 것이 다 틀렸다고 여깁니다. 특별히 자기의 경쟁자이거나 자기의 원수이면 무조건 혹평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달라야 합니다. 아무리 나에게 원수라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이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그가 어려움이나 불행한 처지에 빠져 있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볼 때 편견 없이 객관성을 가진 눈으로 보는 사람이 참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 버지니아주(州) 스트래트퍼드의 출신 군인이자 교육자인 로버트 리[Lee, Robert Edward, 1807.1.19~1870.10.12]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뛰어난 남군 사령관이었는데 이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번은 그가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에게 어떤 동료 장교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말을 지나가던 장교가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걸어가는 리 장군의 걸음을 막고 말하기를 장군님, 그자는 장군님의 원수로서 기회만 있으면 장군님을 헐뜯고 깎아내리려 하는 자인데 어떻게 그런 좋은 말을 합니까?
그때 리 장군이 대답합니다. 그거야 대통령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를 물으셨다면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에 관하여 물으셨으니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로버트 리 장군의 고매한 인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할 때, 그의 좋은 점과 배울 점을 늘 생각한다고 하면 아무리 원수라도 불행을 기뻐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않게 됩니다.
잠 17:09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다윗이 이런 좋은 마음을 지녔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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