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우리 노회가 운영하는 신학원에서 첫해부터 지금까지 17년 간 강의를 해 오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 학점을 받을 학생을 첫 시간부터 거의 구분하는 일입니다. 정확성이 상당히 높다고 할까요? 주로 학생들의 앉아있는 자리를 보고 평가합니다.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일수록 거의가 앞자리에 앉는 반면, 낮은 학점을 받는 학생은 주로 지각을 잘하고, 되도록 저와 거리를 두려고 뒤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성도들이 있다면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주로 앞자리에 앉는 분들입니다. 앞자리란 가깝게 앉았다는 말로서 앞자리를 가리켜 금(金)자리라고 하고 뒷자리는 동(銅)자리라고 말을 합니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욕구가 강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성도 여러분이 되도록 예배 시간에는 앞자리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듣기를 즐거워합니다. 예수님과 신앙의 대화를 가지기 원했다는 말로서 예수님은 그러한 마리아를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는 일에 분주한 마르다보다 더 났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42)
여러분은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 하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가까이 다가 가 있습니까? 얼마나 더 가까이서 영적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예배의 생활과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떠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친절한 안내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일 육신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우리의 관심사는 주님과의 밀착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함을 가르치는 말씀이에요. 이와 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마르다의 길이 있습니다. |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 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 가는 길목에 있는 한 마을에 들리신 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여기에 나오는 한 촌에 대해서는 요 11:01, 12:01~03절에 의하면 나사로와 그 누이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 동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위치한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역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만 오시면 거의 이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 집에 들러서 휴식을 하거나 아니면 숙박까지도 하셨는데 그만큼 잘 지내는 사이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심방을 오신 것으로 봐도 될 것 같죠? 이에 자기들의 집을 찾으신 예수님과 그 일행을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대접을 하기 위하여 부엌에 들어가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소한 16명(예수님, 열 두 제자, 나사로와 자매 등) 이상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르다가 동생 마리아를 찾았는데 마리아는 언니의 일을 도우기 위해 부엌으로 나오기보단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모습을 본 언니가 상당히 열이 났습니다. 자기는 바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데 동생은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철이 없어서 언니가 음식 준비하는 일에 무관심한 채 놀고만 있는데 마리아를 부엌으로 보내어 저의 일을 좀 도우라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자, 여기까지 봅시다.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 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분주한지라. 마르다의 바쁜 모습을 보니 그녀가 예수님과 그 일행들을 위해 대단한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그분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 여겨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먹고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마르다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이 상황,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에 걸쳐 부르는 이중 호격의 사용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의 정성스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행한 일에 대하여 한 가지 우선순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시는데 그것은 그녀가 너무 낭비적인 일로 인하여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사실 16명 이상의 식사를 혼자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예수님께 그 힘든 모습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마리아에게 언니가 혼자 준비하기 힘드니 가서 언니를 도우라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많이 하려고 애를 써느냐? 한 가지만이라도 족한데 왜 그러느냐? 라고 오히려 지적을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르다가 너무 낭비적이라는 뜻이에요. 검소하고 알맞은 식사를 준비하면 될 터인데 그렇게 많이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야단법석이냐? 그 말입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속상합니까? 이럴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봐도 너무 많은 음식을 장만한다는 생각이 늘 듭니다. 그래서 반찬 수를 헤아려 보면 나무 많이 올라와요. 우리나라가 지난 한 해 동안 먹어도 될 것을 버리는 음식 찌꺼기가 돈으로 환산하면 약 15조원 이상 된다고 하는데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 아닙니까?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처럼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일을 한다면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알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겁니다. 영적인 세계,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을 열심히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한 교회생활 모습을 지적하는 말씀이 아닐까요?
2. 마리아의 길이 있습니다. |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은 요 12장에서의 모습과 병행을 이룸을 알 수 있는데 거기서도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요 12:02)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그에게 향유를 붓고 있었습니다(요 12:03).
요 12:0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0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발치에 앉아. 곁에 앉다. 는 의미로서 제자가 스승의 발치에 앉아 교훈을 듣는 자세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마치 마리아가 학생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듯이 예수님께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 매우 열성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의 말씀을 듣더니. 미완료 능동태로서 마리아는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은 채 열심히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한편 마리아의 이 모습을 가리켜 발아래 여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그녀가 예수님의 발아래서 그의 말씀을 들었고, 죽은 오라비를 위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구하였고(요 11:32), 예수의 발아래 앉아 향유를 부었기 때문입니다(요 12:03).
요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발아래 여인의 소리를 듣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실제 우리는 육신의 양식만 해결되면 하늘의 만나를 열심히 찾을 줄 알았는데 먹는 기본 문제가 해결되고 보니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십리고 백리고 다니지 않습니까? 지난 날 굶주릴 때에는 교통편이 없는데도 걸어서 십리가 넘는 곳까지 부흥회를 찾아 다녔으나 지금은 이웃 가까운 교회에서 부흥회를 해도 잘 가지 않습니다.
반면 먹기 위해서는 이제는 장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밥이 없어서 굶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서 목마름도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해서 당하는 굶주림이니 이것이 안타까움이요 비극인 겁니다.
암 0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굶주림이나 목마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으며 그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여 바짝 말라 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의지하고 있으며, 주님을 믿는다는 이름은 갖고 있으나 실상은 주님 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산다는 말은 진리를 따라 말씀을 사모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의 양식은 열심히 꼬박꼬박 찾아 먹으면서 영의 양식은 굶기를 밥 먹듯이 할 때 과연 그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죽는 일입니까? 아니면 사는 일입니까? 우리의 육신은 어디까지나 영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신이 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담고 있기에 대단히 소중하나 육신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겨 있는 영혼은 돌아보지 않고 흙으로 돌아갈 육신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육신을 위한 일에 너무 치우쳐 살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할 것이며, 육신에 귀한 것이 담겨 있으면 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그 안에 냄새나는 세상적인 것이 가득 담겨 있으면 이는 분명히 천대를 받을 것입니다.
3. 이 좋은 편을 사모하며 살아갑시다. |
42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2절은 마르다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마르다가 지금 꼭 잘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르다도 마리아도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나 그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으로 대접하려는 봉사의 길을 택하였고, 마리아는 봉사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지금 그 말씀을 지금 듣고 있는 겁니다.
사람마다 그 나름대로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활동적인 사람에게는 차분히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고형의 사람에게는 활동하는 일이 때로는 싫을 때도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넓은 마음과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롬 15:07) 선행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알았기에 이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신 그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요 12:02).
반면 마르다는 자기의 음식 대접하는 일이 최고라고 여겼는데 주님은 뜻밖에도 마르다를 책망을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마르다가 음식을 적절하게 하고 주님과 대화의 자리에 나와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을 제쳐놓고 육신적인 사소한 것에 올인하여 목숨을 걸면 안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소한 것 즉 음식과 같은 것들에 목숨을 걸면 안 된다는 주님의 경고의 음성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마르다처럼 이 세상과 육신의 일들에 몰두하면서 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엄연히 천국 백성이며 죽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영적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이겠는지를 한 번 찾아보도록 합시다. 이 좋은 편이 무엇입니까? 마르다가 주님을 공궤(供饋)하였던 육신의 봉사보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계속 공급받는 일, 기도회에 나와 내 삶의 에너지를 쏟아놓는 것,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아닙니까? 육의 양식은 육을 살리고 영의 양식은 영을 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요 0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마르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를 칭찬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마르다는 음식 문제와 같은 육신의 문제에 치중하였으나 마리아는 영적인 부분에 올인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리아가 선택한 이 좋은 것 곧 육신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일을 선택하고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미국 시골의 어느 마을
너무 기뻐 잘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날, 남편 앨이 공항에 마중을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아내는 마중을 나가는 길이니 이왕이면 공항 근처의 월-마트에 들러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과 선물을 사 오라고 쇼핑할 품목을 종이에 적어 주었습니다. 비행기 도착 훨씬 전에 집을 나선 남편은 먼저 월마트에 들러 아내가 적어준 리스트를 들고 하나씩 하나씩 사기 시작했는데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습니다.
리스트에 적혀 있는 품목들을 잔뜩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적어준 모든 품목들을 빠짐없이 다 샀다며 주방에 죽 펼쳐 놓고 자랑을 합니다. 그때 아내가 묻습니다. 엄마는? 그런데 남편 앨은 물건을 사느라 그만 장모님을 공항에서 모셔 와야 하는데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말씀을 사모하여 설교를 열심히 듣고 은혜를 받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설교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봉사하는 일에 더 관심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러나 말씀을 제쳐놓고 봉사가 앞서서는 아니 됩니다. 또한 처음에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합니다만 간혹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는 일들도 볼 수 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끝이 나도록 하십시오.
마 04:0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설교는 중요한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줄을. 예배시간에 은혜를 못 받고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어떤 곳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삶 속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느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사는 그 분야, 그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를 체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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