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여호람의 불행한 인생 마무리(대하 21:01~2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0. 11. 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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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출생할 때는 적어도 당사자나 가족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태어남도 중요하지만, 또 어떻게 살아가느냐?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하였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의 살아온 삶의 여정을 만인이 보았을 때 손뼉을 치며 환영할 만한 삶인가? 아니면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추한 삶입니까?

누구든지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잠깐만 시간 지나면 많은 사람이 나의 살아온 삶에 대하여 평가를 할 것입니다. 그때는 삶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장기 수 물리듯 물려서 다시 살아 재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왕복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또한, 연습도 없습니다. 짧은 삶이 주어진 이상 관리 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유다 왕국 제5대 왕으로서 8년 정도(B.C. 848~841) 나라를 통치하다 죽은 여호람 왕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이 왕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행적이 어떠한지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여호람의 왕의 불행한 인생 마무리」로 정했습니다.

 

 

1. 여호람 왕의 재위 기간을 보겠습니다.

 

01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 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람(יְהוֹרָם). 유다 왕국 제4대 왕 여호사밧의 장자로서 B. C 853년경 32세에 제5대 왕의 자리에 올라 8년 정도의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의 짧은 정치 역사를 보면 우상숭배와 미래의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은 얼룩진 피의 역사밖에 더 남기겠습니까? 거기다 마지막 2년은 중병으로 고생하다 마지막에는 배가 터져 창자가 밖으로 나와 죽었습니다.

아마 이런 포악한 정치를 하게 된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상의 상징인 아합 왕과 그 왕비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0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0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북 왕국 이스라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정치의 목적입니다. 당시 북 왕국은 아합왕이 통치하였으며 그의 부인은 우상에 빠진 이세벨입니다. 그런 사람의 딸 아달랴를 데려왔으니 당연히 금지된 이방 종교와 문물을 수입하여 전국 곳곳에 심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에 아달랴는 전국 곳곳에 우상의 산당을 짓고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도록 강제성의 명령을 내립니다. 이후 여호람 왕이 죽었는데 그때의 일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20 여호람이 삼십 이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저를 다윗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아무도 아끼는 자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비극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도 죽으면 애석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한 나라를 8년이나 다스린 왕이 죽었으니 국상입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성민 한 사람도 슬퍼하거나 통곡하지 않았습니다. 19절을 보면 향불 사르는 자가 없었다(19)고 나옵니다.

국상을 만난 일에 대하여 백성이 기본 예도 갖추지 않는 것은 충격의 죽음입니다. 여호람은 왕위의 기간이 8년이지만 그 가운데 마지막 2년 동안의 병고(病苦)는 죽음 자체보다도 더 큰 형벌처럼 고통이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이 19절입니다. 이 년을 죽도록 고생하다 마지막에 창자가 몸 밖으로 빠져나와 죽었습니다. 고통 중의 고통이요 달리 해석하면 저주의 죽음을 맞은 결과입니다.

백성들은 국상을 만나면 기본 예의상 분향합니다. 그런데 백성 모두가 분향의 예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여호람 왕의 악정에 대한 불만의 표시입니다. 도대체 살아서 무슨 일을 하였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까? 한 마디로 그가 언약의 나라에서 왕으로서 정당한 역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여호람은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03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사밧은 왕위를 물려줄 때 인품이나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재능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 나라를 몰락시키는 일의 지름길이 됩니다.

장자라는 이유로 왕위를 물려준 여호사밧, 사람의 생각을 앞세워 자질과 상관없이 장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이 된 여호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라가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자의 길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선거를 통해 일꾼을 뽑아도 당선되고 난 이후에는 온갖 비리의 대상이 되어 구속되는 것을 흔히 보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거 잘못 뽑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지도자를 뽑거나 세울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만일 여론에 휩싸여 선택하면 그 사람이나 그 공동체가 잘못될 때 나도 그 일에 간접으로 동참한 결과가 됩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중에서 5공 시절 모두 전 씨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국어대사전에(현문사) 보면 육사 11기로 졸업한 대단히 우수하고 유능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합니까? 국민 대다수가 전 씨를 규탄하였고 그 밑에서 한자리하던 사람도 평생 동지로 서약하면서 변치 말자 다짐하였지만, 대부분이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정치의 세계란 이렇게 비정합니다. 

 

기독교가 5공화국 시절 큰 위기를 만난 때가 있었습니다. 소위 단군 전 건립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단군교의 설립자 김해경 씨가 기독교로 돌아왔습니다. 이로 인해 단군교가 거의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단군 신화를 들추어 국가의 종교로 발전시키려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대통령이 개천절 행사에 참여하여 단군교를 치사하고 공개 지지하였습니다. 매스컴에서도 과다히 떠들면서 전국에서 단군교 지부가 조직되었습니다.

또한, 군 단위까지 단군 전 건립 설계도가 시달되었습니다. 이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독재자의 발상이요, 종교관에 대한 무식한 까닭이요 역사를 보는 안목의 무식함 때문입니다.

 

세워서 안 될 자를 세우면 국가의 경제, 종교, 문화정책, 국방 등에 차질이 옴을 기억하십시오. 세울 만한 인물을 세워야 모두가 평안해집니다. 다윗왕은 왕위를 장자라고, 아니면 외형의 모습 보고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지정한 자를 세워 신앙의 권면하면서 물려주었습니다.

 

대상 28:0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교회는 신령한 일과 결부되기에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세밀한 신앙의 검증 아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3. 여호람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혈육까지 죽였습니다.

 

0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와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03절을 보면 여호사밧은 여호람은 장자이기에 왕위를 물려주었고 다른 여섯 아들은 재물과 각 지역의 견고한 성읍을 하나씩 맡겨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아들이 한곳에 모여 살다 혹 왕권 때문에 형제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분쟁 가능성을 잘 예방한 셈입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왕이 된 후 처음에는 좀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 된 세력을 구축하자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혹 어떤 세력이 동생 중 한 명을 왕으로 세우려고 반기를 들면 어쩌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근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 동생 6명을 죽여버렸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칼을 휘두르는 한 좋은 왕이 될 수 없고 자기 정권을 위해서 법을 어기고, 악을 행하고,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 정권이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의 꿈이 아무리 크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왕권을 역행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삶으로 끝나기 알맞습니다.

06절 보면 여호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였다고 나옵니다. 특별히 아합의 집과 같이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상의 길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의 길로 갔다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위치에 있는 왕이 우상의 길로 갑니까? 그 이유를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북 왕국 아합 왕의 딸 아달랴가 남 왕국 유다의 여호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말은 정치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결혼하였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남 왕국 유다의 안정이 보장되었습니까? 유다 왕국의 안정이 아니라 통치 기반이 거의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심도 떠나고 하나님도 떠난 결과를 맞았습니다.

 

11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다는 말은 여호람의 우상숭배 정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람이 우상숭배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이유는 왕비 아달랴의 극성 때문입니다. 왕의 귀에 국민의 소리를 들려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백성들의 고충을 찾아서 처리하고 왕의 정책 수행에 모니터링을 할 왕비입니다. 그러나 왕비 아달랴는 친정어머니 이세벨이 정치에 관여하던 일을 답습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본받은 아달랴, 그만 남편 여호람에게 이런 우상 섬기는 일을 오염시켰습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내조는 사치와 허영을 버린 믿음의 눈으로 하여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갑자기 유다 왕국 여호람 왕에게 북 이스라엘 왕국 선지자 엘리야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북 간에는 서로 간에 영역이 있습니다.

상대 국가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유다 왕국 여호람에 관한 소식을 듣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 데에는 ①온 나라가 우상을 섬기게 한 것과 ②다음으론 선한 아우들을 미래의 정적으로 판단하여 죽였기 때문입니다(13).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이 들어오면 그 나라에 잘못된 문화가 형성됩니다. 당연히 가정과 개인과 나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포학한 정치가 여호람에 대한 그 말년의 경고를 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4….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15….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여호람이 오랫동안 징계의 병을 앓다가 죽게 될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19절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여호람[יְהוֹרָם] 이름 뜻이 여호와는 존귀하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람의 말로를 보면 이름값도 못 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호람 왕 그에게도 많은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적은 소수라도 지지자가 있었을 법도 한데 한 사람도 아껴 주는 자가 없는 생으로 끝났습니다.

모두가 다 잘 죽었다는 뜻입니다. 대단히 불행한 죽음입니다. 그의 장례식을 보면 시신이 비록 다윗성에는 장사 되었으나 열조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으니 불행의 죽음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잘못했어도 죽으면 그 허물이 감추어지고 장례식은 성대히 치러져 줍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그것마저도 이루지 못했으니 비극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어떻게 살다 어떻게 마무리하기를 원합니까? 세상에서 출세하고 큰 부자로 못산다 해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들이 아쉬워하고 아끼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여호람 왕의 불행한 죽음을 봅시다.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 믿음으로 잘살고 있는가? 아니면 믿음에서 이탈한 삶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