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 역사에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의 유명한 이야기 한 편이 전해집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도 더러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루는 이 태조께서 무학 대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대사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돼지상(像)이네그려.
돼지를 닮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농담이지요. 그러자 무학 대사는 이 태조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 임금님은 부처님상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태조가 다시 말하기를, 아니 아무리 임금과 신하의 이야기이지만 농담은 농담 아닌가? 나는 자네에게 돼지 같다고 했는데 자네는 어째서 나더러 부처님 같다고 하는가?
이때 무학 대사는 시침을 떼고 한마디 하기를, 그거야 물론 누구든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남의 얼굴 보는 거 아닙니까?
내 마음이 부처님 같으니 다 부처님으로 보이고 당신은 돼지 같으니 나를 돼지로 보는 거 아니겠느냐고. 이 태조로서 더할 말이 없습니다.
마음을 고쳐야만 인생을 바꾸고 세계를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됨됨이는 얼굴보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공부는 마음의 공부입니다.
오늘 말씀의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때인 주 후 50년경에 개척하여 1년 6개월을 말씀으로 양육한 교회입니다. 그동안 여러 목회자가 와서 일하는 동안 많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교회 안에는 문제들도 생겨났습니다.
분쟁과 음행, 은사 문제, 소송 사건, 당파싸움 등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노출되었습니다. 그중에도 서로가 당파를 이루어 견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넓게 열고 삽시다」로 정했습니다.
1. 상대를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우리가 아는 고린도교회는 파당으로 인한 분쟁 많은 교회입니다. 이 때문에 서로가 비판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교회의 설립자 사도 바울도 함부로 비판하였습니다. 비판의 내용이 바울이 진짜 사도가 맞느냐? 라는 사도권의 의심입니다.
이런 현상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몹시 좁아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다 보니 이해하는 마음이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를 받았으면 더욱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마음을 넓히는 일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바로 보고,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판단력이 제대로 섭니다. 바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화해를 이루는 일에 중재를 설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넓어져야 모두에게 화평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마음이 닫힌 사람을 보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닫힌 마음은 햇빛이나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는 방과 같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히면 스스로 외톨이 길을 갑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관계를 나누는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다고 원망하는 때는 없습니까? 대화가 잘 안된다고 상대를 구박하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고, 대화할 수 없어도 불평하지 맙시다. 먼저 나부터 마음을 넓게 열면 이 마음이 바로 좋은 마음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악수 유래를 아십니까? 본래 이 악수의 유래는 유럽의 중세 시대쯤 어느 두 공동체간에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 시대는 온통 창칼이 난무하던 때 아닙니까? 이때 어떤 두 공동체의 수장이 전쟁의 결과를 돌아보았습니다. 서로가 살상을 많이 입어 손해가 많이 난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가 전쟁이 멈추기를 원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화협정을 맺기로 약속하고 협정서를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서로가 해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빈손으로 나가서 손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이 악의 유래입니다. 나는 빈손입니다. 당신을 해칠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평화를 나누기 원합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기 원합니다.
열린 마음의 악수 이것이 분쟁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먼저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성숙한 신앙입니다.
이런 악수가 우리 모두 공동체를 부드럽게 합니다.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갈 02:09에 의하면 바울이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인 야고보와 원 사도인 게바, 요한 등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바울과 교제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때 느낀 감정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갈 02:09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바울의 사도권을 놓고 많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악수 한 번 함으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함께 복음 전하는 동역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은혜의 교제를 잘 나누며 지내왔습니다. 앞으로도 열린 마음으로 더 잘 섬기며 은혜의 교제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상대에게 마음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악수가 있다면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열린 마음으로 모두에게 악수합시다.
2. 지금까지의 좁은 마음을 완전히 고쳐야 합니다. |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여러분, 이제 닫힌 마음을 열었습니까? 열었더라도 더욱 크게 넓게 열지 못하면 다시 좁아진 마음, 닫힌 마음으로 돌아갈 줄 모릅니다.
바울은 이런 좁은 마음의 사람을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고전 03:01~03). 이런 사람은 이해를 잘할 줄 모릅니다. 원망과 시비를 일삼습니다. 별로 문제가 아닌데도 문제를 만들어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바울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 마음이 좁아서 비뚤어진 것 아니냐 넓은 마음을 가지라 이렇게 권합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자기 생각만 앞세웁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사람은 자기 마음이 생긴 대로 생각합니다. 판단합니다. 행동합니다.
마음이 비뚤어지면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말씀이 이렇게 들리기도 하고 저렇게 들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깨닫기도 하고 저렇게 깨닫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용사보다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걸 인정하면서 사람은 발전합니다. 가끔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 내 생각대로 한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지만 그건 생각 짧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지나고 보면 가장 소중한 내 마음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좁게 살았잖아요? 오늘 우리 모두 다 이 좁은 마음을 완전히 제해 버립시다.
남 탓할 거 없습니다. 이 순간부터 좁은 마음을 멀리 던져버리면 됩니다. 넓게 가지면 된다는 말이에요. 좁은 마음 때문에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피해와 상처를 주었습니까? 김삼일 가족 여러분은 마음의 건강지수가 얼마나 높습니까?
내 마음이 세상 사람보다 더 넓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후덕하고 이해심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답답할 정도로 마음이 좁습니다. 생각도 굴절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이해심도 부족하고, 양보심도 적고, 봉사심도 적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 사람보다 믿는 우리의 마음이 훨씬 더 답답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모두에게 자리 잡은 좁은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됩시다.
①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주의 은혜 나누며, 예수님을 따라 사랑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후렴) 하나님이 가르쳐 준 한 가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②이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뭐라 말할까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우리 서로 사랑해
3. 넓은 마음을 계속 유지하여야 합니다. |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간혹 우리가 자동차 열쇠를 차에 꽂아 둔 채 나왔다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더러는 잊지 않습니까?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야 잠긴 자동차 문을 열려면 Key Master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 협회(AAA)에서 나온 사람이나 Key Master는 자동차 문을 잠깐만에 열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전시된 미제, 일제, 유럽제, 한국제 자동차의 문을 잠근 후 열쇠 전문가에게 열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자동차들은 10초 안에 열었고, 유럽 차와 일제 차의 조금 비싼 기종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어도 대체로 1분 안에 다 열었다고 합니다.
자동차의 잠긴 문이라도 Key Master는 쉽게 열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의 마음은 그들의 기술을 아무리 동원하여도 열 수 없습니다.
예, 열리지 않으니 늘 좁은 마음으로 사는 것 아닙니까? 닫힌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해 보신 분은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마음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계속 잘 열라는 말입니다. 한두 번 열었다가 닫는 것이 아니라 늘 open하고 살아야 인생살이가 편합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 가서 14년간 모진 고난을 겪은 총리 요셉(창 37장)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문제를 다 푼 후에 떨고 있는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0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0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얼마나 넓고 큰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좋은 믿음은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게 만듭니다. 넓은 마음은 자기중심의 마음이 아니라 공동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인에게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도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느냐? 어떤 넓은 마음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마음이 좁고, 자기 고집이 세고, 편견에 빠져 있다면 신앙생활을 좀 잘못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교회 안에서 보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물질도 잘 드립니다.
그리고 제대로 감사도 하고요. 그러면 나는 마음 자세가 어떠합니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다고 고백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넓게 열린 마음이요, 큰마음입니다.
빌 01:0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이제 닫힌 마음을 버리고, 좁은 마음을 버리고, 넓게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삽시다.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 살자는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경비행기를 타고 가던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종사, 사업가, 어린 학생, 목사님이었는데, 가다가 기체 고장으로 그만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조종사는 낙하산 다루는 방법을 급히 가르쳐 주고 남은 2개의 낙하산만 주고 뛰어내렸습니다. 사람은 셋인데 낙하산은 두 개이니 하나가 모자랍니다.
그러자 사업가는 나는 가진 재산으로 정리할 것이 너무 많으니 꼭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급히 낙하산을 하나 안고 뛰어내렸습니다.
한 개 남은 낙하산을 놓고 목사님은 어린 학생을 보며 나는 이만큼 살았으니 되었다. 네가 살아야 하지 않겠니? 자, 가지고 내려가라 하였습니다.
그때 학생이 하는 말이 목사님, 낙하산이 아직 두 개 남아있습니다. 먼저 내린 사업가 아저씨는 급한 나머지 저의 보이 스카우트 가방을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넓은 마음을 잘 유지하는 사람은 남을 앞세웁니다. 자기는 언제나 후미진 곳에서 살아갑니다. 바울은 큰 상처를 준 고린도교회 성도를 향해 화해의 손을 내밉니다. 그 첫 말이 당신들 마음을 여십시오. 가 아니라 먼저 내 마음을 열었습니다. 는 선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떠합니까? 넓은 호수와 같은 마음입니까? 이 사람도 쉬어 가고, 저 사람도 쉬어 갈 수 있는 넓은 마음 말입니다.
어떤 이의 마음은 가시밭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상처받고, 저 사람도 상처받습니다. 어떤 이는 쓰레기통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나쁘고, 저 사람은 저래서 나쁘고, 문제는 똑같은 우리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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