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10년 말씀

나도 옥합을 깨뜨려야 합니다( 막 14:03~0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10. 1. 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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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 성도가 죽음을 맞으면 대부분 제가 장례식을 집례합니다. 마지막 코스는 장례 절차를 따라 거의 공원묘지로 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공원묘지의 이 무덤 저 무덤을 지나면서 나름대로 세워져 있는 묘비 글을 눈여겨봅니다.

고인의 인적 사항을 읽는 이로 하여금 잘 기억되기를 원하는 글귀입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후세 사람에게 잘 기억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은 세상을 떠난 후 후세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되면 좋겠습니까? 또 하나님께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합니까? 이를 위해서 오늘 말씀을 눈여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적을 놓고 세상 끝날까지 어느 곳에서든지 두고두고 기억함이 좋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09).

마리아가 어떤 일을 했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셨습니까? 특별히 업적을 남길만한 일을 계속해서 한 일이 있습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나도 옥합을 깨뜨려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강론하겠습니다.

 

 

1. 시몬의 집에서 잔치하게 된 배경을 보겠습니다.

 

0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마가는 마리아의 행적을 소개할 때 먼저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던 현장을 거론합니다. 시몬의 집에서 어떤 식사를 하셨습니까?

문맥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평범한 식사는 아닙니다. 아마 예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잔치 수준으로 보입니다. 12장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요 12:0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0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이들 삼 남매의 가정에 가장인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때 나사로를 살린 메시지가 이렇습니다.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11:43). 당시 상황이 요한복음에 자세히 나옵니다(11:38~44).

이런 은혜를 입은 나사로와 두 자매가 주님을 향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준비한 장소가 어디입니까?

 

시몬의 집입니다. 이 시몬에 대해 나병환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시몬이 나병 환자이었다가 지금은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시몬이 언제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는 흔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고마움의 잔치를 베푸는 일로 보아 고침을 받은 때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시몬이 한때는 나병을 몸에 지니고 살았으니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나병 환자는 모든 것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불행 자체입니다이스라엘 법은 나병 환자를 이렇게 취급합니다.

 

레 13:45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한때는 나병에 걸려 고통의 삶을 살았지만, 나사로처럼 주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시몬과 나사로가 함께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나사로의 집보다 시몬의 집이 더 컸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나사로도 시몬도 예수님께서 이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교권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믿음의 감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잔치에 앞서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가 나흘 만에 살아난 일이 있습니다. 그때가 오늘 잔치로부터 약 2개월 전입니다.

그때 대제사장 가야바는 아예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였습니다(11:50).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가 본격 진행된 셈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현장을 피해 에브라임으로 가셨습니다.

 

요 11: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2.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귀한 것을 드립니다.

 

0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시몬의 가정에서 즐거운 식사가 무르익어갈 무렵 갑자기 한 여자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이 들은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여자의 이름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그 순간 가룟유다가 주동하고 여러 제자가 동조하여 마리아의 일을 잘못된 일이라고 화를 냅니다.

겉으로는 왜 고가(高價)의 향유를 허비하는가?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더 효과 있게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노입니다(04). 왜 아깝게 낭비하느냐? 입니다.

 

0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믿음이 없는 판단, 신령한 감각이 없는 평가는 세상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마리아가 실제로 드린 향유의 가치는 3백 데나리온 이상입니다(05). 당시 팔레스타인의 평범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3백 데나리온이면 10개월 품삯입니다. 일 년 365일 모두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 년 치 이상의 금액입니다. 제자들이 구제를 위해 분노하면 그나마 이해가 됩니다.

 

실제는 제자들이 이렇게 말한 이면에는 가룟유다의 빼돌리려는 도둑질에 그만 놀아난 비난입니다. 그때는 도둑질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12:06).

이런 비난에도 마리아는 말없이 예수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향유를 머리카락에 적셔 발을 씻어드립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한 일을 최고의 정성으로 예물을 드리는 그 중심을 알아보셨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칭찬하시고 이 일을 길이길이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09).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미래의 계획서까지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원해서 드렸습니다.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언니 마르다도 있고 오빠 나사로도 있는데 이런 일을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구속사의 흐름을 보았기에 가능합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성숙 과정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일입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이 반갑게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예수님을 접대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함께하니 식사 준비에 일손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동생 마리아를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런데도 마리아는 언니와 달리 예수님의 발아래서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진지하게 경청하였습니다(10:39). 신령한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마리아는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는 죽음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시자 직감으로 이제 예수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3. 주님을 위한 봉사도 다 때가 있습니다.

 

0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물질을 써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감정이 어떠했습니까? 아까운 마음이 들었으면 참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사랑에는 낭비의 속성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조건 없이 내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 마리아의 심정이 그렇습니다. 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오빠의 생명을 되돌려 주신 예수님을 향한 고마움과 은혜의 표시로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오늘 이 순간 지나면 안 되는 줄 알고 과감하게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헌신할 때 최소한의 헌신보다 최고의 헌신보다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중심을 아시고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0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는 영적 직관으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 장례도 치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살리기로 했습니다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구제할 자들은 항상 너희 곁에 있다. 나는 곧 세상을 떠난다. 마리아는 나의 죽음을 내다보고 한 일이다 비난할 거리로 삼지 말라 이 일은 영원히 기억하여야 할 귀한 일이다.

 

이렇게 정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돕는 일을 장려하십니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도 나를 위해 사랑을 표현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 여러 분야로 헌신하시는 일이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중요한 때를 욕심으로 잃어버리면 나중에는 내 삶의 역사에 아무것도 기록되지 못한 부끄러움의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성도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조금만 더 경제의 여유가 있으면 정말 헌금을 드릴 수 있을 터인데 제게는 경제의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드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길 수 있을 터인데 제게는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조금만 더 재능을 주시면 저도 남들처럼 저의 재능으로 주님을 한번 멋지게 섬기고 싶은데 제게는 그런 재능이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조금 더 재물과 조금 더 시간과 조금 더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드리는 모습이 없자 한 날에 그에게 주셨던 조금 더 재물과 조금 더 시간과 조금 더 재능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다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한 번만 다시 옛날처럼 조금 더 재물과 조금 더 시간과 조금 더 재능을 돌려주십시오. 제가 잘 섬기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까? time out.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기회는 다 지나갔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회에 주님이 주신 선물로 주님을 아름답게 섬기는 생활하기를 원합니까? 기회는 항상 오지 않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한 번의 기회를 잘 활용하였습니다. 기회는 잡을 수 있을 때 잘 살려야지 그 기회를 놓치고 나면 다시 얻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리아, 삭개오, 아리마대 요셉, 여리고의 맹인 바디매오도 한결같이 단 한 찾아온 기회를 신령한 감각으로 보고 듣고 판단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고후 06:0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김해삼일 가족 여러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여러분을 위해서 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영리 중심으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멸망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봉사하십시오. 더 이상 헌신의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일념으로 충성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의식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다간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값진 헌신을 아는 사람은 헌신의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옥합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시간입니까? 물질입니까? 열정을 품은 마음입니까?

가끔은 자기를 송두리째 주님께 드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적 있습니까? 그때 내가 가지고 있는 귀한 옥합을 깨뜨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이런 믿음 없는 모습이 깨어지길 바랍니다.

오늘의 시대는 육을 살찌우는 시대요, 육을 즐겁게 하는 발광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더 굳어져 믿음의 옥합은 깨뜨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든 육의 사람을 깨어야 합니다. 옛사람이 부서져야 합니다. 그 부서지고 깨어지는 고통 속에서 향유를 담은 믿음의 옥합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골 03:0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