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무엇이 살아있는 믿음입니까?(히 11:01~03)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12. 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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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 한. 일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브라질 선수들이 Jesus loves you, I belong to Jesus 라는 하얀 티를 입고 기도하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또 선수들이 매직으로 100% Jesus 라고 쓰기도 하고 선수들과 스태프 전원이 센터 서클에서 무릎 꿇고 손을 둥글게 잡고 기도하던 장면도 보셨을 것입니다. 무척 보기 좋은 믿음 퍼레이드인데 여기에는 믿음의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1989년 브라질에 아주 유명한 믿음이 좋은 카 레이스 선수가 있었는데 한 번은 경주용 자동차 전체에 Jesus loves you! 라고 도색하고 출전을 하였습니다.이로 인해 신앙과 스포츠를 연계시킨다는 사회적 큰 논란이 일어났는데 그럼에도 이 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예수님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은퇴하고 브라질
스포츠선교회를 결성하여 각 종목 선수들을 위한 활동을 하던 중 1994년 미국 월드컵을 맞아 이 분이 브라질 대표 팀의 목사로 여정에 함께 하였습니다.
당시에 브라질 대표팀 25명 중 12명이 기독교인이었는데 그 때 결승전에서 맞붙은 이탈리아 팀과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는 말총머리로 유명한 불교신자 바지오였고 브라질 골키퍼는 골대에서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선 불교도와 기독교도와의 대결이라고 화제가 되었는데 그날 득점왕이고 베스트 선수였던 바지오는 뜻밖에도 골대 위로 볼이 날라 가는 실축을 했고 결국 브라질이 우승했습니다. 다시 4년 후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목사의 월드컵 팀 수행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의 반대로 무당이 같은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결승전 전날 호나우두는 갑자기 발작을 시작하다 다음 날 겨우 경기에 출전했지만 신문들은 평하기를, 마치 호나우두는 귀신들린 것처럼 경기장을 뛰어다니기는 했지만 아무런 활약을 못했다. 결국 프랑스에 영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4년이 지나고 2002 한. 일 월드컵에는 프랑스 월드컵에 무당을 보내서 졌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목사님을 다시 보내자고 제안하여 1994년도에 활약했던 스포츠선교회 목사님이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브라질 선수 중 5명이 아주 독실한 신자들이어서 이들을 중심으로 팀과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은 우승을 일구어 내었습니다.

바로 이 5명이 경기 후 Jesus loves You! I belong to Jesus! 등의 셔츠를 입고는 혹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까봐 금메달을 뒤로 돌려 걸기도 했습니다. 정말 살아있는 믿음 아닙니까? 오늘 이 시간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살아있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 만인이 인정해주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죽은 것과 같은 무기력한 믿음, 세상으로 떠내려가는 믿음입니까?



 1. 영적 세계를 생활로 표현하는 믿음입니다.


0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께서 나는 믿는다. 나는 믿음을 가졌다. 할 때 그 말의 뜻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합니까? 사실 이 믿음이란 말만큼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용어는 없을 것은 이 말이 저와 여러분의 존재 그 자체와 연관을 가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우리의 신분,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우리를 신자, 예수쟁이, 기독교인 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성도들에게 믿음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성도의 현실의 모습기도 합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게요.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나름대로의 답을 머리에 그리면서 오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영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육신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나 믿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는 실체로 인정합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은 보는 것만 믿고 이해하지만 크리스천은 비록 보지 못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고 아멘 아멘 합니다.
여러분! 공기가 이 안에 가득하지만 볼 수 있습니까? 만질 수 있습니까? 저의 목소리가 여러분의 귀에는 들리지만 눈에 보입니까? 손에 만질 수 있습니까? 아니면 무슨 냄새가 납니까? 오직 귀에만 들릴 뿐이잖아요? 에너지, 사랑, 기쁨, 지혜, 지적재산 등 이런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같은 원리를 따라 영의 세계에 관한 것도 믿음이란 채널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특별히 믿음 좋은 사람들을 보실 때는,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마 15:28).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눅 07:09). 하시며 칭찬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이에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08) 말씀대로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사탄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게 하여 영이 죽은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요? 살아있는 믿음이란 신령한 것을 바라보고 그대로 생활에서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 즉 천국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우리의 영적 생활로 표현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요, 믿음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가뭄이 하도 심해서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도 하는 내내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를 반복하였고 다음 날도 모여서 똑 같이 기도회를 열어 그때도 그들은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갈 때 쯤 정말 그들이 믿고 구한 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선 듯 나서지 못한 채 다들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산이나 비옷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산을 쫙 펴들고 비속으로 걸어가는 그 동네의 일곱 살짜리 어린 소녀가 있었으니 이 소녀야말로 기도응답을 내다보고 우산을 준비한 진정 살아있는 믿음의 성도가 아닙니까?

 


 2. 받기 전에 받은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0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01절은 믿음을 놓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정의함으로서 믿음과 바람(hope)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 장차 하늘나라에서 누릴 것들이 아니라 우리의 살아가는 현실에서 서서히 나타날 일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은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살아있는 믿음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복음으로 도전하며 나가는 겁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은 자신이 확신한 일에 대하여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본 것 이상으로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응답이 온 다음에 확인하는 것은 보고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했는데 이 말씀 역시 우리가 믿음으로 명령을 하거나 기도한 다음에는 이루어진 것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어도 마음에 영상을 그리며 계속 기도를 해야만 응답 받는 기도가 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노만 필
(Norman V. Peale) 박사는 믿음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 세 가지를 말하기를 ①그림을 그려라(Picturize) ②뜨겁게 기도하라(Prayerize) ③실현하라(Realize)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창 13:14,15) 할 때 그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것이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난관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낙심치 않고 달성 될 목표를 바라보면서 영상을 그리며 나아가야 합니다. 성공을 꿈꾸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반면 패배자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결국 실패가 다가오고 말 것 아닐까요?

 

사탄은 눈으로 보이는 것과 육신의 감각, 인간적인 생각들을 동원하여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보지만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은 아무리 흔들어도 말씀과 기도를 붙들고 꿋꿋이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매일 한 번씩 나팔을 불면서 성을 돌았는데 6일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나 느낌으로는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았고 무너지기는커녕 금도 안 갔지만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내다보며 7일째 일곱 바퀴를 도니 결국은 무너졌지 않습니까?(수 06:20)

 

롬 0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입니다. 독일 본토를 점령해 들어간 연합군의 한 수색대가 독일 패잔병을 수색하던 중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집의 지하로 통하는 구멍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다 보니 그 벽에 삼각형 두개를 역으로 포개놓은 육각 별 즉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태양을 믿는다. 비록 구름에 가리어 보이지 아니 할 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비록 그것이 표현되지 아니할 때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비록 아무 말씀이 없으실 때라도. 비록 이 무서운 박해의 현장에서 침묵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은 역시 계신다고 믿는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거는 믿음입니다.


0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는 뜻입니다(창 22:01~12).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그 땅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그저 내가 지시할 땅,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음에도(창 12:01) 아브라함은 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하기 보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과 가족 전체의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말 아닙니까?정든 고향을 떠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믿음의 꿈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투자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하는데 바로 창 12:02,03절입니다.


창 12:02 ….너는 복이 될 지라. 03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라함은 자신으로 인해 이루어질 놀라운 하나님의 구속사의 프로그램을 가슴에 품음으로 세상적인 가치관을 내려놓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창 12:0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믿음의 꿈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현실을 초월하여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지금도 하나님은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여러분들에게 믿음의 꿈을 주시면서 불신앙의 그 자리에서, 습관화된 죄(罪)의 자리에서, 탐심(貪心)의 자리에서, 미움과 증오와 낙심의 자리에서 해방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현실의 미련들을 놓기가 아쉬워 계속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닙니까? 믿음의 꿈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떠날 자리에서 떠나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의 비밀을 가진 성도, 살아있는 믿음을 간직한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그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따를 것임을 한시라도 잊지 마십시오. 참으로 살아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 능력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갑니다.

 

한 무명의 성도가 이런 내용의 종이쪽지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쪽지에는 하나님의 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힘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를 지켜보신다. 내가 어디로 가든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 라는 글귀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잠 03:0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0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할 때 나는
두 사람의 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각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는 나에게만 너무 많은 기회를 주고 행동하는 나에게는 제대로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 인해 인생의 끝자락에서 곧잘 이런 후회를 합니다.

실수였어. 나는 더 많은 행동을 취했어야 했는데 하고. 어떤가요? 이 후회가 바로 나에게 찾아오는 건 아닙니까? 마음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정작 간절히 원하던 기회를 놓쳐버리진 않습니까? 섣부른 행동이 아닐까 염려하거나 실패의 결과를 예측하여 물러서진 않나요? 우리 모두에겐 지금 살아있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 자신을 믿는 용기가 아닌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는 용기가 말입니다.

저는 11월 28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세계 역도선수권 대회에서 용상 부분 4연패를 한 장미란(1983,10,09) 씨에 대한 믿음의 행적을 살아있는 믿음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그녀는 고양시청 소속으로 지난해 북경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인데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후 아주 강렬한 기도의 세리머니와 함께 그가 입고 있는 유니폼에 새긴 글귀가 아주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JESUS IS LOVE.


장미란의 미니홈피 싸이에
보면 성구와 함께 이런 글을 달아 낳았더군요. 나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온전히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의지하며 담대하게 하소서.


빌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0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