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예수님을 만나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막 05:01~20).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11. 2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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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누구나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좀 더 품격 있는 사람, 좀 더 매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은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가치는 한 마디로 믿음의 품격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믿음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열 가지 마음가짐을 소개하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긍정의 사람). 제가 하겠습니다(능동의 사람). 무엇이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적극적 사람). 기꺼이 해 드리겠습니다(헌신의 사람).

잘못된 것은 즉시 고치겠습니다(겸허한 사람). 참 좋은 말씀입니다(수용의 사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협조의 사람) 대단히 고맙습니다(감사할 줄 아는 사람). 도울 일 없습니까? (여유 있는 사람) 이 순간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찾는 사람.

 

오늘 말씀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거라사의 광인 이야기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군대 귀신 들린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 앞에서 좀 품격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안타깝게도 품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이 광인에 관한 이야기가 자기에 관한 문제를 넘어 넓게 적용하면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의 특징을 무엇으로 규정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영적 광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영적 광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 제목을 예수님을 만나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로 정했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 말씀과 자기를 비교하며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을 찾아가셨습니다.

 

0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바다 건너편 거라사(가다라. 마 08:28).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라사라는 지명과 그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라사 지방은 요단강 동편 갈릴리 사해의 중간에 있는 도시입니다. 계곡이 많고 물도 잘 흘러서 옥수수 재배로 유명한 곡창치대입니다.

당연히 시리아, 마게도냐, 로마 등 강대국이 이 지역을 넘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로마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거라사가 속한 전 지역을 넣어 데가볼리로 선포했습니다.

데가볼리(Δεκάπολις 04:25, 05:20, 07:31)는 십()을 나타내는 데카(δέκα)와 도시를 나타내는 폴리(πόλις)의 합성어로 열 개의 도시를 뜻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열 개 도시는 거라사, 스키토폴리스, 히포스, 가다라, 펠라, 필라델피아, 캐피톨리아, 가나다, 라파나, 다마스커스 등입니다.

데가볼리를 결정할 때 주도자가 로마의 폼페이(Pompey. 106~48 B.C.) 장군입니다. 이때 거라사의 비옥한 땅과 인구, 문화시설, 산업 발달 조건 등이 데가볼리에 들어가게 된 배경입니다.

 

폼페이는 데가볼리에 행정 자치권을 부여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들의 극심한 민족주의로 골머리를 앓던 로마는 이 데가볼리를 로마식 스타일로 재건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헬라와 로마의 이주민과 셈족이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문화는 그리스, 로마 문화로 가득 찬 도시입니다. 특별히 유대인을 혐오하는 로마 군대의 퇴역 군인은 이곳에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갈릴리 바다 건너 동편 거라사는 상종할 필요가 없는 지역으로 굳어졌습니다자존심과 신앙심이 무척 강한 유대인은 갈릴리 바다 동쪽을 건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는 유대인이 금기시하는 집단 돼지 사육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주로 갈릴리와 유대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즉 요단강 서편 중심으로 사역을 하신 셈입니다.

그리고 동편은 거의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 땅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방 땅은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01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침내 평소에 가지 않던 거라사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특별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거라사뿐 아니라 갈릴리 바다를 기준으로 서쪽 50~6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시돈 지방에도 전도하러 가셨습니다.

서쪽 지중해 해변을 끼고 있는 두로와 시돈은 이방인 지역입니다(15:21). 아합왕(7)의 부인 이세벨의 고향입니다(왕상 16:29, 31). 그 대상이 가나안(07:28 수로보니게) 여자입니다.

 

마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한 광인을 만납니다.

 

0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귀신(πνευμτι)을 문자대로 직역하면 부정한 영입니다. 귀신이 들렸다고 했으니 단순한 위생이나 청결보다 수치를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악령의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우울증과 자기 파괴의 증세를 보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은 귀신이 들린 일을 거의 더럽다고 표현합니다(10:01, 12:31, 01:26, 03:11, 04:33, 36). 본문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한 사람으로(08:27) 나오나, 실제는 두 사람입니다(08:28).

 

마 0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 같은 차이점은 마태가 기록을 상세하게 한 데 비하여 마가와 누가는 둘 중에 더 치명적인 한 사람을 강조함으로 오는 차이입니다(Calvin).

이 광인이 초인의 힘으로 계속 요란하게 소동을 피웁니다. 그러자 거라사의 사람들은 그의 손과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온몸을 쇠사슬로 결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기운이 지나치게 세어 쇠사슬을 풀고 계속 난폭하게 행동합니다이번에는 이 광인을 아예 동네 밖 공동묘지에 격리했습니다.

 

그러자 이 광인은 더욱 설쳐대면서 이제는 아무도 그 사람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난동을 부립니다도저히 제어할 수 없습니다사람대접받지 못하며 삽니다. 무질서의 삶입니다.

그의 거처가 포근한 안방이 아니라 무덤 사이니 얼마나 흉합니까? 매우 불행합니다. 이 사람에게도 부모가 있을 텐데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0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0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 이러라….

 

08:28 절에 의하면 두 사람이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만큼 무서운 힘을 내뿜고 있습니다.

사슬로도 묶어둘 수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더욱 그들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초인의 힘은 그들을 더욱 불행으로 내몰아 갔습니다.

모든 것이 비정상입니다. 언어를 상실하였고 옷도 벗고 지내고(08:27) 공포의 대상까지 되었으니 이제는 절대 기피인물입니다. 귀신에 들리므로 건전한 삶도 희망도 무너진 인생입니다.

 

0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이상한 소리를 늘 지르니 정상의 언어와 가치관과 인격이 상실한 자입니다. 거기다 자기의 몸까지 해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귀신이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 마음대로 질서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예수님은 거라사에 도착하신 후 제일 먼저 이 귀신 들린 사람과 만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 속에 자리 잡은 군대 귀신을 나오라고 명합니다.

 

 

3. 예수님을 만나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예수님께서 거라사에 도착하자 군대 귀신 들린 자가 먼저 알아보고 달려와 절합니다(06). 이어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를 괴롭힙니까(07)?

이 말은 이미 예수님께서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대 귀신은 나가기를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악령에게 묻습니다.

 

0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군대(λεγεών 레기온). 많은 귀신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군대의 단어가 로마의 군단 6천 명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많은 귀신이 두 사람을 다스리니 옷도 벗고(08:27)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예수님께서 먼저 거라사의 광인을 찾으신 일입니다누구보다 예수님을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한국의 현실로 돌려 생각해 보겠습니다. 거라사의 광인 같은 사람이 주로 어디에 많이 있습니까이태원이나 압구정에 많은 것 같습니다

마약, 본드 흡입, 환각제, , 담배 등으로 몸을 상하게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흥에 겨워 옷을 벗어 던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신세대, 혹은 X, Y, Z 세대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란과 절규의 소리, 탄식의 소리,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이 우리 곁에 수없이 출현하여 설치는 신호입니다. 혹 내 가족 중에, 전도 대상자 중에 그런 사람 없습니까? 행인들도 마음 놓고 길 다니기가 무섭다고 합니다김삼일 가족 여러분, 나의 심령이 메말라 있습니까?

 

공허할 때 근심 걱정을 들어주시고 은혜로 채우시는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가정이나 사업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합니까? 그러면 먼저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주님과 만나십시오주님께서 나를 만나주시면 그때는 어떤 일이든 문제가 풀리고 수습됩니다.

 

사마리아성 우물가의 여인이 물 길으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04:07~30) 변화가 되었습니다사울도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가(09:01~22) 일어났습니다예수님을 만나면 벗었던 자가 입게 되고, 마귀에게 얽매였던 자가 해방됩니다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도 한 때는 소망 없는 길에서 방황하며 폐인의 길로 행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정상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미혹에 빠져 죄의 종이 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걸림돌 되는 일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그 걸림돌 요소가 무엇입니까? 혹 재물입니까?

그러면 그 재물을 던져야 합니다. 관인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들이 나와서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므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13 허락하신 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우리는 마치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명령하신 것처럼 오해하지만 실상은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허락했을 뿐입니다.

돼지의 몰살 책임이 주님께 있지 않음과 귀신들은 주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돼지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마가는 천하보다 귀한 구원을 위해 물질을 내려놓아야 하며 동시에 우리도 물질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함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돼지 치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인 돈에 사로잡힌 자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돼지 떼가 죽은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군대 귀신이 들렸던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돌아와서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왜 놀랍니까? 무엇보다 광인이 정상인으로 돌아온 것이 자기들 재산 손실 때문에 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재산 손실은 큽니다. 돼지가 2천 마리이니 한 마리당 약 60kg씩 보고 요즘 가격으로 막 밀어 20만 원씩 계산하면 4억 원이라는 거액이 산출됩니다.

 

물질주의자들은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서는 별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손실된 물질에만 집착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영혼의 가치를 그보다 훨씬 더 존엄하게 보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어떠합니까? 한 생명의 가치를 압니까?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물질의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희생은 마침내 한 생명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들이 즉시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합니다(17).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주님을 알려주십니다.

여기 돼지 치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인 돈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안내하십니다(16:26).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이 고요와 평안의 자리를 찾고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이어서 온 동네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자기의 주어진 자리와 환경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데가볼리 전 지역에 복음의 간증자로 살았습니다.

 

단 12:0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