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이제 감사의 생활을 회복합시다.(시 116:12~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11. 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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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너무나 지극한 지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어떤 제목을 아뢸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드디어 장례식을 치르는 날 문상객이 참 많이도 왔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 남들 몰래 이런 일 저런 일,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가셨군요. 하며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두 번째 소원으로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자 이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런 기도를 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예, 우리도 현실의 주어진 복된 일들을 복으로 알지 못하고 늘 모자라는 것만 생각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이 시간 감사의 생활을 회복하기를 축원합니다.



 1. 많은 사람이 감사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눅 0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까?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기기 때문 아닐까요?
인생이 존귀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잘못 된 일에 대하여는 자신을 살피면서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회개를 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그 진가를 모르면 의미가 없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구원의 은혜를 등한히 여겨 상실한다면 이는 인생의 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계속 불평하기를, 내가 왜 이런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하나? 나 같은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억울한 형편에 있어야 하나?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하며 그 불평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은혜의 자리에 이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때 내가 잘나서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어려움을 당치 않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와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자가 믿음의 사람인데 바울은 이 믿음에서 떠난 자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롬 0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자신과 교회와 이웃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계속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더 많이 주시고 그러한 사람을 통하여서 교회에 감사가 넘치게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감사의 길을 피하여 지나갑니다. 그 예로, 고침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들(눅 17:11~19)을 보십시오.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려 찾아온 사람이 몇 명입니까? 한 사람 밖에 없어요.
얼마나 주님께서 감사가 메마른 모습에 안타까우셨는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축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돌아오듯이, 산에서 소리를 외치면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듯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는 그 감사가 은혜와 축복으로 변하여 되돌아옵니다.
이웃에 대한 감사는 친절과 사랑으로 돌아오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와 축복으로 돌아오고, 범사의 감사는 환난 날에 건짐을 받고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감사의 축복을 등한히 합니다.
감사보다는 불평거리를 찾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말들이 입에서 막 나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비가 왔을 때 하나님이 비를 주셔서 곡식이 잘 자라겠구나 하고 감사를 하지만, 감사가 없는 사람은 오늘 비가 오니까 땅이 질겠구나 하고 불평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포도를
먹으면서도 맛도 좋고 비타민도 많은 과일이구나 하고 감사를 하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포도는 씨가 많아 귀찮은 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보는 영적 시각이 달라요.
감사하는 사람은 장미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가시가 많아 틀렸다고 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국화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부정적인 사람은 쑥 냄새가 나서 틀렸다고 하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본 결과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긍정적인 눈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을 잘 인도하실 줄 믿고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2. 어떻게 감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까?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05:18)고 표현하였습니다.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한다. 또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 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 버리며,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또 오게 될 것이다.

 

우리 가운데도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 믿음의 수준을 따라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불평하는 사람도 사실 있습니다.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그늘 밑에 살면서 감사치 않고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를 하면서 기쁨으로 산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혹 일 년이 지나도록 감사의 생활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게도 감사할 일이 메말랐다는 말입니까? 감사의 일거리를 찾아보면 매사의 일들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기쁨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얼마든지 감사할 조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은혜의 불감증에서 헤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삽시다.
감사의 생활을 상실하면 인간관계는 계속 거칠어 질것이고, 평소의 생활은 짜증으로 찌들뿐이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굴절되고 말 것입니다.
행여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사 보다 불평이 훨씬 더 많습니까?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서 이탈된 결과라고 생각하시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내 마음을 왜 부담스럽게 하는가 하는 마음도 품지 마시며 오직 감사의 생활을 여러분의 심령에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 103:0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은혜를 많이 입었으면서도 그 순간만 지나면 언제 은혜를 입었느냐는 듯이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혹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지난날 애굽에서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지난날의 어려운 때를 기억하면서 교만해지지 않는 인생을 살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였을지라도 이제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광야생활에서의 그 신분과 그 어려움을 잊지 말고 더욱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겁니다.


신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지키는데 그 영적 의미는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의 전반기를 잘 지내온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고,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후반기 및 한 해 전체를 결산하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물보다는 이 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원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찬송 143장) 라는 고백을 진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믿음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①지나간 시절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냈다고 고백하고 ②현재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낸다고 고백하면서 ③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3. 앞날에는 믿음으로 충성하며 즐겁게 삽시다.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사실 우리의 지나간 때의 일들을 돌아보면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의 신분과 다름없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죽음과 멸망과 지옥으로 가는 길에 서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엡 02:0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0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0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로 인해 이제는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의 세력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회복하였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요 감사할 일 아닙니까? 우리의 앞날에 잘 열리는 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앞날을 은혜로 잘 열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광의 직분을 받을 때 뭐라고 고백합니까? 하나님 이 모든 것이 은혜이온즉 이제부터는 이 한 몸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 속에는 그저 감사하면서 자신의 신앙성숙을 이루며 살겠다는 자기선언이고요.
그런데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성숙을 이루기보다는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투정의 생활, 원망과 불평의 생활로 감사를 깨뜨리고 맙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가 있는 줄 아십니까?


①첫째는 받은 것이 많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소위 영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둘째는 받았으니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평범한 보통사람입니다.

③셋째는 지금까진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받을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비록 지금 나의 환경이 여의치 못하다고 슬퍼하거나 괴로워 마십시오. 현실의 순간이 비록 어려울지라도 앞날이 잘 열릴 줄 믿고 감사하며 삽시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의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으니 얼마든지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복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박국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의 둘러싸인 정황을 보십시오. 이 모두가 절망뿐입니다.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는 것뿐입니다. 현실에서 볼 때 그에게는 절망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빈 손 인생인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합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럼에도 하박국 선지자
자신이 가진 최후의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입니다(합 02:04). 만일 하박국 선지자가 현실만을 바라보았다면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 절망을 하고 말았을 것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구원자가 되시고 또한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19).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신다고 믿는 믿음, 얼마나 칭찬할 만합니까? 돈이 나의 힘이요, 권력이 나의 힘이요, 부동산이 나의 힘이요, 능력이 나의 힘이요, 학식이 나의 힘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이 같은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과거에 우리가 어떠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의 삶을 통하여 현실을 이겨나가는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 기도를 드렸다면, 마음에 굳게 다짐한 일이 있다면,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뒤로 물러가지 않고 믿음의 전진을 각오하였다면, 그대로 충성하며 지키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너졌다는
가장 큰 증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입술과 삶에서 감사가 사라지고 대신 불평이 나오는 겁니다. 감사가 사라졌을 때 내 신앙이 무너졌구나 하고 이해하면 정확할 거에요.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항상 거리를 찾는데 바로 불평거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반면 발전 지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이고, 변화에 개방적이며, 영혼이 살아 있는 낙관적인 사람은 당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런 사람과 교제하면 복이 절로 옵니다.

 

금년도 이제 저뭅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회복하는 비결이 바로 감사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