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영과 진리의 예배에 생명을 거십시오.(요 04:23~2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10.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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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사역하는 이용규 선교사님이 목축을 하는 한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그녀는 은혜를 받은 후 매주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그날도 주일을 맞아 아침에 소를 풀밭에 매어놓고 예배드리러 가려고 소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잘못하여 소가 광야로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 다녀보았지만 도저히 소를 잡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예배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처녀는 소보다
먼저 예배를….
소를 따라가기를 포기한 채 교회로 달려왔는데 교회로 왔을 때 그녀의 얼굴과 옷은 온갖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이유를 묻자, 그녀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소보다 예배를 드리는 게 중요하여 교회에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특하여 교회 문에서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예배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교회 마당으로 나오니 음매 하며 소가 교회로 와 있는 겁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할렐루야! 예배는 회복입니다. 예배는 축복입니다. 예배는 기적입니다. 근간에 교회들이 예배갱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살아나야만 신앙 또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행사를 많이
하고, 훈련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예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떠하기에 그런 말이 나왔는지,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복을 주시는 예배가 어떠한 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은혜를 받는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입니까?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이란 그 자신의 내면의 영적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를 말합니다. 즉 영 가운데란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섬겨야 함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리란 바로 예수님 자신
아닙니까?(요 14:06) 이 진리는 단순한 사고의 진리가 아니라 진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순전히 응답하는 것으로서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드리는 것이므로 지금 드리는 이 예배에 적용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불경스러운 자신의 인간적 생각을 일절 접어버리는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예배 후에는 무엇을 할까? 저 말씀은 어느 특정인을 향한 말씀일거야? 그 사람이 이 예배에 참석했어야 하는데 어쩌지. 등 별의별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심지어는 모든 근심과 걱정, 불안과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데도 여전히 그것들을 가득 안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것 역시 내려놓으라는 의미이고요. 교회의 본질은 예배드리는 데 있습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영적 교제의 삶을 나누는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삶도 당연히 회복되겠지요? 개인적으로도 그래야 하지만 김해삼일교회 공동체 역시 그런 경험을 통해 그러한 감격을 누려야만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뜻을 헤아려보는 신령한 은혜가 우리 교회, 우리의 드리는 이 예배 가운데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세상에, 예배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어? 하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예, 맞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예배의 순서가 있어서 규칙적으로 예배를 드리겠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예배라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배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하겠죠? 아니,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누구를 예배한단 말이야? 그 말도 맞습니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합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겉으로는,
말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다른 엉뚱한 걸 예배하는 건 아닐까요? 조금 전 교회의 본질은 예배드림에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그냥 예배만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무엇을 예배한다면 그건 교회가 아니라 그저 종교집단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은 예배가 점점 쇼가 되어간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Worship으로서 이 단어는 최고의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존경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적 의미에서 섬긴다, 경배한다, 고개 숙이다, 나의 생을 드린다는 뜻으로서 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동시에 예배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찬양과 경배를 돌리는 거룩한 예식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가 드리는 축복과 특권입니다.

 

대하 29: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 하니라.

마 02:0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러므로 예배에 대한 성경의 정의는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인간의 신성한 행위입니다(수 24:15; 시 145:01; 롬 12:01). 더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의식이며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영광스러운 만남입니다.



 2. 나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립니까?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예배는 내가 하나님께 주목하기 위해,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시간과 장소임을 알고 있습니까? 리가 적어도 간절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영의 예배, 진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영으로 예배한다는 건, 물질이 하나님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전 인격으로 만나고 영이신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겁니다.

요즘 성도들 세계에서 더러는 정해진 예배 순서 등 이러한 것들로 인해 종교적인 의무차원에서 극기 훈련을 하러 교회에 간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예배 견디기의 극치는 설교 견디기라고 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설교 시간에 나타나는 성도들의 반응을 여러 가지로 분류했는데 좀 재미가 있어서 소개하니 참조하십시오.


①멀대파.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분으로서, 눈은 설교하는 목사님을 향해 있지만 생각은 출장 중인 사람들입니다.

②꼼꼼파.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분으로서, 이런 분들은 주보에 오자가 보이면 어쩜 그리 잘 찾는지요. 주보 교정을 위해 저의 곁에서 봉사하면 어떨까요?

아멘파.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분으로서, 말씀과 상관없이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는데 상당히 안쓰럽기만 합니다.

안절부절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분으로서, 무엇이 그리 바쁜지 계속 시계를 보고만 있으니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청각장애파.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분으로서, 소리 내면 옆 사람에게 미안한 줄 알기 때문에 살짝살짝 대화를 하는데 그 증거물이 부려두고 간 주보입니다.

회의 염려파.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분입니다.

나홀로파. 설교 시간만 되면 성경 읽기로 시간을 때우는 분입니다.

붕어파.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분입니다.

수면보충파.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분으로서, 즉 열심히 향락 누리느라 자지 못한 잠을 예배 시간에 보충하는 사람 말입니다.

경비파. 누가 왔나, 안 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분으로서, 주로 각 기관의 회장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어떤 유형에 속합니까? 김해삼일교회 성도들은 이런 유형의 예배자가 되지 않고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롬 12:0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가족이
오늘 이 자리에 혹 못 나오셨다면 이 시간에 예배의 의무를 떠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예배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며 예배시간까지 포기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겁니까?



 3.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지금 찾으십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케이블 T. V나 기독교방송 같은데서 보면 가끔은 영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처세술이나 성공비화 혹 설교자가 그냥 자기 얘기하는 것을 보고 들을 때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런 것을 진리의 예배라고 하십니까? 참 된 예배는 진리이신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선포되어야지 그렇지 않는 인간적 여러 요소는 코미디라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의 기술과 말재주와 방법이 주도하는 행위는 참된 예배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습니까?

좀 분별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때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란 예배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어서 나의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 드리는 것이며 시설이나 순서나 방식은 예배자가 예배를 잘 드리도록 도와주는 보조 수단에 불과합니다.
물론 보조적인 수단이 필요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 다만 거기 매달려서 그게 주인노릇 되어 예배자가 하나님보다 부수적인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세상에 교회도 많고 예배도 많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영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겠으며, 또 남 얘기할 게 아니라 내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주인공이면 되는 겁니다.
물질과 세상적인 요소들이 주인이 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성도가 된다면 이야말로 진정 은혜의 축복이 아닙니까?

 

예배가 얼마나 세련되고, 예배당의 인테리어가 얼마나 잘 되어 있고, 찬양대가 찬양을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에게 집중하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가? 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데 우리를, 나를 보시고 바로 여기 있었구나. 너희야 말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녀이구나 하실까요?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니면,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하실까요? 지금 우리의 당면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신앙의 가치관에 대한 상실 즉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겁니다. 믿음의 본질을 팽개치고 살다보니 모양과 형식에만 급급하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 프로그램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는데 소위 열린예배, 찬양예배, 구도자예배, 드라마예배, 전통예배 등 참으로 예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저는 이런 예배들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 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는 관점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예배 프로그램을 찾기보다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습관적으로 주일 오전, 오후예배, 수요일 기도회에 빠지는 이유의 목록들이 무엇입니까?
인터넷도 해야 하고,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도 보아야 하고, 밀린 가정 일도 해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야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게 지겹다고요? 내가 지금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있는 게 아니거나 내가 하나님과 남남의 관계라서 그런 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께서 아버지를
보시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예배 때마다 맨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겁니다. 보기에도 안 좋고 교인들에게도 민망하여 고민을 하다 마침내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부탁하기를, 얘야 너는 예배드릴 때 꼭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조시면 쿡쿡 찔러서 깨워드려라. 그러면 아빠가 천원을 주마. 드디어 주일이 되었습니다. 천원의 위력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목사님의 아들은 할아버지가 졸 때마다 열심히 깨워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은 기특해서 아들에게 잘했다며 천원을 주었습니다.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졸고 있는데도 손자가 깨우지 않는 겁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왜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니? 아빠, 사실은 요. 할아버지가 안 깨우면 이천 원 준다고 하셨어요!

 

지금 방송실에서 여러분의 모습들을 돌려가며 띄운다고 합시다. 아니 한 번 띄어봅시다. 모두가 옷매무새와 거룩한 폼(?) 잡느라 분주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자세로 하나님 앞에 예배에 임합시다. 경건과 영과 진리의 예배의 입구에 들어설 것입니다.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과 만나 영으로 교제하며 영의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하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합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신앙의 성공자이고, 신앙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임을 기억하여 복된 예배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시다. 예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진리의 예배에 생명을 겁시다.


시 42:0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