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신령한 복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엡 01:03~1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7. 1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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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가 복을 좋아합니다만 그러나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복은 제각기 다릅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부귀영화와 장수 재물 등을 소중한 복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복중의 복으로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은 물질의 풍요함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심지어 돈벼락이나 한 번 맞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복을 좋아하는데 특히 새해를 맞이하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덕담의 인사를 제일 많이 나눕니다.

어떤 집은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글을 써 붙이고는 복이 굴러 들어오길 기다리는 집도 있는걸 보면 믿고 안 믿고 간에 사람들은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예, 이왕이면 복을 많이 받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큰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그 개념에 있어서 다분히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을 말합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은 주로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 하셨는데 그 복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육신의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신령한 것입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 여러분도 특별히 신령한 복을 사모하고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늘 본문 말씀도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 지를 안내합니다. 따라서 저는 신령한 복을 잘 가꿉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신령한 복은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0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 신학의 근본이며 그의 삶의 중심이었던 이 말은 바울을 바울 되게 하였던 믿음의 문구입니다. 본문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의 안에서 라는 말이 무려 10회나 나오며 바울 서신 전체에는 164회나 나오는데 이는 바울 신학의 핵심 용어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문구는 우리의 무슨 선행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 역사로 인해 죄를 씻어 주셨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한정 된 이 말은 세상에 속한 사람 모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救贖)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입니다. 즉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어느 누구도 신령한 복에 접근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여기 신령한 복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고 누릴 수 있는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땅위에서 누리거나 찾을 수 있는 물질적인 복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복으로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세계에 속하는 겁니다.
이러한 신령한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받고 누릴 것이요 하나님을 멀리하고서는 찾지 못하는 것임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복을 받아서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 안에 있는 자입니다.

 


 2. 신령한 복은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0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이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과 은혜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지목하여 택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이 선택은 인간의 아무런 조건도 참고하지 않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무조건 선택 교리는 그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그 선택의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신 만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무조건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 구속 설계도를 따라 구원 역사가 하나씩 하나씩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가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말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게 되는 이 프로그램은 하나님 편에서 행하신 것인 만큼 우리가 가감하거나 변경할 수 없습니다. 여기 선택론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크신 긍휼과 놀라운 은총을 깨달으라고 주어진 교리이지 안 믿는 사람에게 구원받을 수 있나 없나를 따지는 논쟁거리로 주어진 교리가 아닙니다. 이 선택의 교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메시지이지 논쟁거리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의 시기와 그 방법은 어떠합니까? 창세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곧 창조 이전부터 우리가 신령한 은혜 속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우주 만물이 조성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 기쁘신 뜻대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존귀한 존재입니다.이 위대한 은혜 속에 사는 성도는 단지 눈에 보이는 세상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선택의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성도가 신령한 복을 누릴 장소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인데 이곳을 벗어나면 즉시 신앙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0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런 성도의 행동반경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신령한 활동도 할 수 없으며 아무런 영의 복도 누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알고 보면 성도는 본질로는 무가치한 존재이지만(엡 02:0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주심으로 마침내 신령한 복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갈 04:0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본문 04절은 선택의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같이 읽겠습니다.

0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말씀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희생 제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어느 한 곳이라도 흠이 있으면 그 흠으로 인해 제물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었습니다.

 

레 22:18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 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정 가운데 구속함을 받아 양자 되고 성령님의 인 치심을 받은 사람은 온전한 제물처럼 부정과 불법에서 떠나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 생활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거룩한 삶입니까? 

세상의 부정한 것과 구별되는 삶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되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각자의 주어진 위치에서 맡은 일에 성실하며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답게 구별되는 품격의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3. 신령한 복의 실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일입니다.


0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기 전에 우리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사탄의 자녀의 노릇을 하면서 지내는 죄의 종의 신분이라고 말합니다.


엡 02:0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복입니다. 복 중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신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얻게 되는 특권도 함께 가집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평강과 기쁨과 풍족함과 영생의 복을 받고 사탄을 제어하는 권능까지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 0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즉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흠과 죄로 더러워진 우리가 거룩해 지는 비결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 사함을 얻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면 이는 신령한 복을 받은 자임을 믿으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은 세상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생활을 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시골 교회를 섬기는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동네 분들을 향해 전도를 하는데 유독 한 사람은 아무리 전도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 번은 그 불신자를 만나 이유를 물었더니 예수를 믿으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이 아까워서 교회를 안 가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목사님,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면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하고 묻자 목사님이 웃으면서 담뱃값 정도 듭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비용이
얼마 안 드네요. 하면서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는 담배를 끊고 담배 값에 해당하는 돈을 주일마다 헌금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목사님이 세례를 받으라 했더니 세례는 안 받겠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세례 받으면 십일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예수 믿는 비용이 갑자기 비싸져서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사님을 찾아오더니 묻습니다. 목사님, 십일조를 하는데
농사비용을 빼고 십일조를 합니까? 아니면 무조건 수확의 십일조를 합니까?
그래서 믿음대로 하는 겁니다. 라고 답하자.
그 분이 말하기를, 농사비용 빼고 나면 얼마 안 남는데요. 그러더니 쌀 한 가마니를 십일조하고는 그 다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농사지은
십일조로 쌀 일곱 가마를 가지고 왔기에 아니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습니까? 하고 물으니 목사님, 제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싸구려로 믿지 않고 비싸게 믿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싸구려로 믿습니까? 아니면 비싸게 믿습니까? 사람은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에다 가치를 두며 삽니까? 신령한 일에 삶의 에너지를 쏟으십시오. 06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령한 목적을 밝혀주는데 같이 읽어 볼까요?

 

0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려는데 있습니다.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을
읽어보시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삶 전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신령한 복을 주신 그 뜻을 이루면서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신령한 복도 받도 넉넉히 받은 자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 신령한 세계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이 다르고 계획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자들이며 이 세상 사람들하고는 구별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신령한 삶이 훼손되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앞날의 삶에서 가정과 직장 사업 등 생활 영역 전반에 있어서 신령한 은혜로 인해 윤택해지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받은 신령한 직분들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