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마침내 복을 회복하였습니다(욥 42:10~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7. 2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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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회복입니다. 경제의 회복, 인간성의 회복, 환경의 회복, 가정의 회복, 심령 회복 등 이렇듯 회복이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한 단어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로 그런 회복에 관한 일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 처했던 욥이 절망과 죽음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갑절의 복으로 회복되는 장면이 소상하게 나옵니다.

 

이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장면의 역사처럼 오늘 우리 김해삼일교회 성도의 모든 생활영역에도 이러한 감격 있는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깊으신 뜻을 깨닫고 기도로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욥기를 읽으면 욥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고통을 많이 겪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셔서 마침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곤경을 돌이키신다는 말은  속박에서 풀어주다, 해방 시켜 주다. 라는 의미입니다. 현실의 우리에게도 이런 곤경에서 돌이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마침내 복을 회복하였습니다.로 정했습니다.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욥이 받은 갑절의 복은 자기 허물을 고백함에서 왔습니다.

 

0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0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족장 시대에 요단강 동편에 살았던 욥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그렇게 믿음이 좋던 욥이 총체적 재난을 만나자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 속에서 욥은 더 단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불린 욥이 자기의 허물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부로 지껄인 과오를 고치는 회개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아는 것도 없으면서 감히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를 했습니다.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의로운 줄 알고 친구들에게 결백함을 내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고 나니 저는 더욱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무 잘난 체, 지식이 있는 체, 능력이 있는 체, 옳은 체를 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지금까지는 종교의 전통이나 조상의 가르침 등 외적인 요인으로 하나님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통해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권세가 어떠한 것인가를 피부 깊숙이 깨닫고 받아들입니다.

욥은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영안이 열립니다. 그분의 위대한 주권과 놀라운 섭리를 새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내 잘못이 깨달아집니다.

 

회개하나이다(נָחַם 나함). 티끌(עָפָר 아파르)과 재(אֵפֶר 에페르)는 고대 근동에서 슬픔과 비하를 나타내기 위한 관습입니다(04:01, 58:05).

욥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회개의 표현입니다. 욥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전한 변화를 뜻합니다.

 

따라서 욥이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하며 지껄인 허물을 뉘우치는 표시입니다사실 욥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과 환경을 크게 원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세상에 태어난 자기를 저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03:01).

 

그런데 지내놓고 보니 이 모든 불평과 원망이 자기의 허물이요 믿음의 부족함인 줄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깨달음이 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욥은 오랜 기간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믿음이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 부분이 회개의 길로 가는 길목입니다.


0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성숙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능력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전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꼭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분명한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 욥은 친구들의 허물을 기도로 품었습니다.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독신을 주장하는 사람도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잘못하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관계를 끝까지 지속하지 못해서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은 주로 변덕이 심한 사람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을 자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상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욥의 경우는 욥 자기보다 욥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입방아를 찧었을 것 같습니까?
욥이 저렇게 무너진 것은 아마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그럴 거야? 괜히 저런 일 당하겠어, 돈푼이나 지녔다고 거들먹거릴 때 알아봤다고, 이번에 크게 깨달았을 거야 등 대충 이런 생각으로 욥을 이해하려고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 42:07, 0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넓은 마음을 보시고 직접 중재에 나섰습니다. 욥의 친구들을 크게 책망하시면서(07) 욥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0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부부관계도, 형제 관계도, 친구 관계도 내가 넓을 마음을 가질 때 회복됩니다. 내가 변하면 이웃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우리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교회가 변합니다. 사회도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하는 것임을 아십시오.
10절 말씀을 잘 보십시오. 욥이 자기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기도하면 그건 내 기도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하면 그 기도의 파장이 커집니다. 그에게는 응답이 임하고 나에게는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 함께 10절을 읽읍시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 부분입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깨달음을 받은 후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을 일절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내 가슴에 칼처럼 후비는 말 한 저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용서하니 그들이 기도로 품어졌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기도는 누가 옳고 누가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마침내 욥은 고난의 시험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으로 성숙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삶을 사셨습니다(23:34). 전도자 스데반이 이렇게 살았습니다(07:59, 60).

 

 

3. 여호와께서 욥을 돌아보시니 갑절의 복이 왔습니다.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이 고난을 만나기 전의 환경을 보면 그는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 소유물의 목록이 이러합니다.

 

욥 01:0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이렇게 부유한 욥이 졸지에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으로부터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알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01:13~17).

거기다 욥은 73녀를 하루아침에 다 잃는 슬픔을 만났습니다(18~19). 또 욥은 자기의 온몸에 암과 같은 피부병이 발진하였습니다.

 

그 몰골이 얼마나 험악했던지 친구들이 욥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02:12). 평생을 함께하는 아내로부터 악담까지 듣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하나님 원망하며 죽으라는 겁니다(02:09).

욥기 01:03절에 의하면 그 소유물 규모가 대단합니다. 요즘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저 나름대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7,000마리×10만 원=7, 낙타 3,000마리×3백만 원=90, 500겨리×3백만 원=30, 암나귀 500마리×60만 원=3, 합계 130억 원 정도 됩니다.

그 외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부자인데 잃은 것을 다 갑절로 회복하였습니다. 이제는 260억 정도 되는 당대에서는 어마어마한 재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16, 17절을 보면 그를 괴롭히던 중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140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으며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 가정 문제도 평화롭게 해결되었습니다.

다시 73녀를 낳았으며 그중에 딸 셋은 전국에서 최고 미인이었습니다(15). 이때가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때입니다. 복을 받는 때입니다

 

욥은 특히 인간관계에서 먼저 상대를 향하여 부드러운 마음을 가집니다. 욥에게는 아주 가까운 세 친구(빌닷, 소발, 엘리바스)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욥의 비보(悲報)를 접하고는 위로 차 찾아왔습니다(02:11). 욥을 위로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위로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위로하러 왔으면 위로하고 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들 세 친구가 욥을 찾아왔을 당시 욥의 고난을 놓고 돌아가면서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①빌닷. 욥 08:0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0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0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②소발. 욥 11:13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③엘리바스. 욥 22:0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0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네가 숨겨 놓은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니 속히 죄를 회개하라는 식으로 다그치기 시작한 겁니다.

친구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격려해 주는 사람, 어려울 때 내 일처럼 나서서 편들어 주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 부인은 18671107일 동부 유럽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생 중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방사능을 함유한 라듐을 발견하여 여성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1903)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왜 한 번도 키스해주지 않는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 무척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에게 사랑으로 키스해주지 않은 것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평생을 폐결핵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도 때로는 내 곁에서 멀리 떠난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고통과 절망을 전혀 돌보아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곁에서 지켜 보호하시되 연단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인내로서 감당해야 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 자기의 과거 믿음, 현재 믿음을 밝힙니다. 전에는 믿음이 추상적인 믿음이었으나 고난을 통하여서 참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