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의학이 크게 발달하지 아니할 때 인간의 수명을 크게 발전시킨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n)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페니실린 발견은 스코틀랜드 출신 플레밍(A. Fleming. 1881. 8.6~1955.3.11. 노벨 의학상 수상 1945)이 그의 연구실에서 당시 어린이들에게 흔히 발병하던 부스럼의 원인 포도 모양의 병균을 연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1928년 어느 날입니다. 플레밍은 배양된 세균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그만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체 연구실에서 나와 며칠을 비웠습니다.
그런데 그 접시에 온통 푸른곰팡이가 피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곰팡이가 핀 접시를 치우려다 접시 위에 가득 퍼져있던 포도 모양의 세균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플레밍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도대체 무엇이 이 접시의 세균을 사라지게 했을까? 에 대하여 골몰하였습니다. 분명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무엇인가가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플레밍은 어디선가 날아 온 푸른곰팡이가 그 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플레밍이 실수로 세균이 있던 접시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연구실에서 나온 그사이에 곰팡이의 포자가 깨어진 연구실 창문 사이로 날아와 그 접시에 붙었다는 뜻입니다.
이 일이 많은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페니실린 개발의 시초입니다. 플레밍은 깨어진 유리창이 틈틈이 있는 열악한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였습니다. 얼마 후 한 친구가 플레밍 연구실을 방문하였는데 형편없는 연구실 환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다니 자네에게 좋은 환경의 연구실이 있었다면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해내었을 것일세.
그때 플레밍이 대답합니다. 이 열악한 연구실이 나에게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네. 깨어진 창틈으로 날아온 먼지가 바로 페니실린의 재료가 된 거야.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개의치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김삼일 가족도 지금 만난 고난을 잘 감당하면 복으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왜 우리에게 광야길이 있습니까?」로 정했습니다. 왜 고난의 길을 가게 되었느냐는 뜻입니다. 그 일의 열쇠(Key)를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우리의 삶은 광야 길을 가는 인생입니다. |
0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광야 길. 뜨겁고 건조한 땅, 물이 없는 모랫길입니다. 이 길에는 먹을 물도 먹을 음식도 제대로 없습니다. 편안히 잠을 잘 데는 더욱 없는 곳입니다.
낮에는 모래에 반사되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불모지입니다. 태양 빛과 혹독한 추위, 사나운 맹수와 뱀 전갈 등이 우글거리는 곳이 광야입니다.
어쩌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는 굶주림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서 사막이 되고 광야가 됩니다.
지금 온 세상이 염려하는 것이 바로 물이 점점 줄어들고 오염되어 가는 일입니다. 세계 곳곳에 가뭄 즉 한발(旱魃)이 심해서 걱정거리입니다.
아프리카를 말하면 한때는 밀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는 절반 이상이 사막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동식물과 많은 생명이 무수히 죽어갑니다.
어떤 땅이든지 3년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막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길을 가는 것은 다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 길은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인 것은 분명합니다. 동시에 영육 간의 복을 받는 기회가 됨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내가 주의 말씀을 깨닫고 배우게 되었사오니 이것 역시 복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환난을 만나도 즐거워하였습니다(롬 05:03~04). 환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통해 다듬어지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출발 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후에 귀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예정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셈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살이도 광야 길처럼 힘들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짧은 삶이 육체의 질병과 직장 문제, 사업 문제 등으로 메마른 광야와 같은 삶입니까? 그럴수록 우리의 삶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합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경기가 좀처럼 안 풀려서 못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럴수록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은혜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재확인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번성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 우리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김삼일 가족 주변에 정말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이들에게 01절 말씀을 들려주면 어떨까요?
0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광야의 길을 가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
02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뜨겁고 건조한 땅 물이 없는 광야 모랫길을 사십 년 동안 걷게 하실 때는 그만한 목적이 있음을 밝힙니다.
하루 만에 피었다가 지는 작은 풀잎 하나라도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아닙니까? 이처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0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게 된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나 실제로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세 곳의 길이 있었습니다.
첫째 길, 고센 땅에서 지중해를 건너 블레셋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남쪽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하면 약 4~5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둘째 길, 고센 땅에서 숙곳을 지나 술 광야로 가는 중앙 통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하면 약 보름이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길, 고센 땅에서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로 가는 서쪽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하면 약 한 달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 가지 길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서쪽 길을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광야 여정의 지도를 해설 성경 등에서 살펴보십시오. 한 달이면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이 년이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열두 명 정탐꾼이 가나안에 들어가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 보고가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불신앙의 보고를 합니다. 결과는 멸망입니다.
민 14: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이십 세 이상은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전달받습니다(민 14:27~30).
동시에 이스라엘은 다시금 광야에서 삼십팔 년을 더 연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이끌어 가십니까? 02절이 바로 그 답입니다.
①02 이는 너를 낮추시며. 이렇게 사십 년간 고난의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의 첫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겸손하게 다듬기 위함입니다.
겸손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지만 교만하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짜증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언제든지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나의 마음이 먼저 낮아져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마음이 겸손과 낮음으로 바뀌어야 하나님은 복된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분명히 밝힙니다. 동시에 그 지나간 광야의 생활이야말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익한 기간이었다고 말합니다.
②02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사십 년을 머물게 하신 둘째 목적은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시험을 한다는 말입니까?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백성은 눈에 보이는 단순한 일에도 참지 못했고, 작은 고통에도 몸부림치며 목마르다고 아우성을 쳤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지금쯤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이 경건과 순종과 감사의 삶으로 바뀌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우리도 겸손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를 알기 위하여 광야 생활과 같은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③03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신 목적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은혜로 살아감을 깨닫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육신의 양식 떡으로만 살겠다고 하면 이는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와 같습니다.
3.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임합니다. |
0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에 만나를 통해 먹을 것을 주시고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또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은혜와 만족을 표하는 감사를 한 흔적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감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교만한 모습만 나타나 보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인지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삭막하고 메마른 곳,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 또 목축도 할 수 없는 곳,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여 무려 사십 년간이나 걷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 은혜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셨고, 그들의 갈증 난 목을 축여주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을 세워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역시 띄워주셔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건강도 다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그들에게 자기 힘을 믿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을 때 안전합니다.
내가 통장의 숫자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눅 12:16~21절의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한 부자를 보십시오. 그 해 농사가 잘됨으로 인해 그 부자가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지어 곡식을 가득 쌓아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시는 바람에 부자의 인생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이처럼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임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힘든 광야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고 계신다고 생각해 보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알아보는 시험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지금 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만큼 하나님의 명령에 최고로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번성하는 복된 역사가 있습니다.
순종 여부를 따라 복된 일이 우리 눈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누리는 김삼일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0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0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난의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속히 보상해 주실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평안한 나날을 누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 인격이 있어야 소유물을 가져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광야 길 같은 삶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우리가 광야 생활과 같은 삶이라도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는 김삼일 가족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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