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맥추감사절에 믿음으로 동참합시다.(신 16:09~17)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7. 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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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매년 삼 차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따라서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출 23:17)을 지킵니다. ①유월절(逾月節)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킨 절기이고 ②맥추절(麥秋節)은 오순절 혹은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서 유월절이 지난 다음 7주후에 보리와 밀을 추수하여 그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며 ③수장절(收藏節)은 마지막 곡식을 거두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지키는데 그 절기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이고 다음에는 11월 3째 주일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예배 자리에 나오신 분들 가운데 혹 이런 마음을 가지신 분은 안 계십니까?

①맥추감사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②나는 도시에 살기 때문에 보리농사를 짓지 않지 않느냐?

③나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말씀하신다면 이는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고 농사꾼도 아닌 맥추감사절 하고는 상관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의 그 본래의 의의(意義)는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사뭇 그 의미가 다름을 아셔야 합니다.

 


 1. 맥추감사절이 제정된 근원을 살펴보겠습니다.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맥추감사절이 제정된 그 근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며 지내던 때부터 연유(緣由)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의 인도를 통하여 출애굽 하게 되지 않습니까? 또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물과 양식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금 고난과 실의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해결함 받았고 이로 인하여 광야생활 40년을 무사히 지나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아 그 땅에 씨를 뿌리고 때가 되어 보리와 밀을 거두게 되었을 때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자기들을 구원하여 안식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눈물과 정성으로 감사의 절기를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맥추절은 애굽에서 종의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 구속하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만약 맥추감사절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여 지킨다면 첫 수확한 보리를 드려야 하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잘 여문 보리를 골라서 이 자리에 가지고 나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보리를 가져오신 분들은 한 분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농사를 지어야만 맥추감사를 드리고 농사를 지어야만 추수감사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법에는 이러한 조항이 있습니다. 민법 제 253조.

①유실물의 습득(拾得): 유실물을 주웠을 때에는 경찰관서에 제출하거나, 유실자, 소유자 등에게 급속히 반환하여야 한다.

경찰관서에 제출되었을 경우 경찰관서는 이를 공고하여 그 소유자가 밝혀지면 그것을 반환한다. 반환받은 자는 습득자에게 그 물건 값의 100분의 5내지 100분의 20의 범위 안에서 보상금(報償金)을 주어야 한다(유실물 법 4조).

 

물건을 찾아 준 사람에게 5~20퍼센트의 한도 내에서 사례를 하지 않으면 법에 저촉되는데 이럴 경우 물건의 주인이 처벌을 받게 되는 죄목은 감사하지 않은 죄입니다. 하물며 세상의 법에도 자신에게 유익을 끼친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다면 이는 얼마나 큰 죄가 되겠습니까?

 


 2. 지난날의 어려운 때를 생각하면서 낮아진 자세로 감사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지난날의 어려운 때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지난날의 어려운 때를 기억하면서 교만해지지 않는 인생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였을지라도 과거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광야생활에서의 그 신분과 그 어려움을 잊지 말고 더욱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거지요. 흔히 사람들은 어려운 과정을 헤쳐 나왔어도 현재의 생활이 풍족하면 지난 일을 잊어버리기가 쉽고 교만하여 마음이 살찌기가 쉽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과거에 우리가 어떠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성도는 과거의 삶을 통하여 현실을 이겨나가는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인물 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위대한 왕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가 왕업을 이루게 되었을 때 처음부터 왕이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나 배경이나 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다른 형제들에 비해 소외당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 왔을 때 다른 형제들은 다 집에 있었지만 다윗만은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느라 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러한 환경 아래서 지냈던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가능한 일이지 사람의 일로서는 도무지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다윗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하게 되어 주변의 국가들을 제압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나라도 안정이 되어 그야말로 태평세월을 지냈습니다(삼하 07:01).

이때 다윗 왕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왕의 자문을 맡고 있는 궁중 선지자 나단에게 토로(吐露)하게 됩니다.

 

삼하 07:0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03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그날 밤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 선지자에게 임하셔서 다윗에게 할 말을 전달해 주는데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삼하 07:0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0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이상의 말씀을 보면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노후의 생활을 안정되고 평안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고 다음으로는 성전 건축만은 다윗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하락치 않는 이유는 대상 22:08절과 28:03절에 의하면 그는 군인으로서 피를 너무 흘렸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상 22:0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성전 건축에 대한 부적격자임을 통보 받고서도(삼하 07:17)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삼하 0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대상 17:16).


이러한 고백을 통하여 다윗은
자신의 실체를 왕의 위치가 아니라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자리에 내려가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게 무어라고 이러한 대우를 해 주시는 겁니까? 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이죠.

 


 3. 앞날에는 더욱 복을 주실 줄 믿고 즐거운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맥추감사절은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앞으로 주시기 위하여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즉 축복과 기쁨의 절기라는 말입니다. 다음 농사의 성공을 보장해 주시고 원수 대적들이 감히 엿보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시는 복을 약속하시면서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겁니다(출 23:16; 신 16:15). 사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보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의 신분과 다름없습니다.

 

엡 02:0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0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0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 모두는 죽음과 멸망과 지옥으로 가는 길에 서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엡 02:0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0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이로 인해 이제는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의 세력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회복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요 감사할 일 아닙니까? 우리의 앞날이 잘 열리는 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이고 보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즐거움의 복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 절기를 통하여 앞날을 축복으로 열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계속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초보의 신앙으로 원망과 불평을 일삼으면서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비록 지금 나의 환경이 여의치 못하다고 슬퍼하거나 괴로워 마십시오. 현실의 순간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앞날을 열어주신다고 하였으니 믿고 감사의 생활을 하십시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의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면 얼마든지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5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감사에도 세 종류의 감사가 있는데,

①받은 것이 많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소위 영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받았으니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평범한 보통사람입니다.
③지금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받을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요 복 주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선지자 하박국의 감사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합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선지자의 둘러싼 정황을 보십시오. 이 모두가 절망뿐이잖습니까?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는 것뿐입니다. 육안으로 현실을 볼 때 그에게는 절망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빈 손 인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박국 자신이 가진 마지막 한 가지가 있으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합 02:0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만일 하박국 선지자가 현실만을 바라보았다면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 절망을 하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그의 구원자가 되시고 또한 힘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19).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신다는 믿음 얼마나 칭찬할 만합니까?
돈이 나의 힘이요, 권력이 나의 힘이요, 부동산이 나의 힘이요, 학식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어느 시골 동네에 가난하고
나이 많으신 집사님 한 분이 사셨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 헌금대신 동태 다섯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머리에 이고 가는 도중에 강도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맞고 가방을 빼앗긴 채 쓰러졌습니다. 믿지 않는 자녀들이 병원으로 달려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서 있는 동안에 어머니가 당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나님은 자기에게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이 저 지경이 될 때 도대체 뭐하고 계셨던 거야? 동태만 챙기셨나? 이번 기회에 어머니를 다시는 교회에 못 나가게 해야지 하면서 모두들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늙으신 어머니는 며칠 만에 깨어나셨는데 눈을 뜨자마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신 생활하는 자녀들을 그대로 두고 먼저 가지 않게 해 주시고 전도의 기회를 다시 한 번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동태 다섯 마리가 제 대신 각목을 맞아 주었기에 제 머리가 부서지지 않고 이제라도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동태 다섯 마리가 알고 보니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군요.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을 감사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직분을 받은 일과 지금까지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