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그 짧은 인생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를 하느냐? 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살아온 삶의 여정들을 점검해 볼 때 만인이 손뼉을 치며 환영해 줄 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되돌릴 수 없으므로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삶이 끝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삶에 대한 평가를 받을 때가 옵니다. 그때는 삶의 방법이 잘 못 되었다고 해서 장기 수 물리듯 삶을 되돌려 재평가받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생길은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이요 예행연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정 시대를 처음 열었던 사울 왕, 이분야말로 기념비를 세울 만한 인물임에도 그 인생이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사울 왕의 인생 역정을 보면 그는 상당히 화려하게 출발하였습니다. 명문 지파, 명문 가정의 출신이며 외모로 볼 때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 사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습니다(삼상 09:02).
또한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신의 임함으로 인해 예언까지도 했던 선지자 같은 인물입니다(삼상 10:10).이런 사울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온 백성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아 마침내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습니다(삼상 11:15). 왕으로 일을 시작할 때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기뻐하였고, 선한 왕으로서의 기대를 걸었던 인물입니다.
집권 초반에는 신실하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되게 생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도 이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불신앙과 허물로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사울 왕이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을 당시의 믿음은 간 곳 없어졌습니까? 이에 대한 일을 살펴보기 위해 말씀 제목을 「사울 왕은 인생 마무리에 실패했습니다.」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사울 왕의 죄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밝히는 구절입니다. 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관계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신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는 자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복이 있고 만일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그러면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말씀을 지키지 않았는지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삼상 13장에 보면 사울이 왕위에 오른 지 한 2년쯤 되었을 때 블레셋 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스라엘에 극도로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사울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연락하여 속히 오셔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 선지자는 1주일 만에 오겠다는 회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정해진 시간이 다해 갈 무렵이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사울의 휘하에서부터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자(삼상 03:08) 다급해진 사울은 어려움을 이겨보자는 궁여지책으로 그만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감히 자기가 드립니다.
삼상 13:0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사를 다 마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온 겁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큰일이라도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이에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그런 행동을 보고 망령되이 행했다고 책망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일은 제사장 고유의 일인데 사울이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불법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런 행동의 근저에는 이미 사울의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 있던 증거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의 행동을 놓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사울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적당히 핑계를 댔습니다.
삼상 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행한 일을 죄로 규정하여 망령된 일을 하였다고 책망했습니다. 이는 제사를 지내는 일은 제사장만이 하는 고유의 일인데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왕이 마음대로 하였으니 망령되다는 겁니다.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의 지은 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일을 범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상 15:0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 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0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아멜렉을 쳐서 멸하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삼상 15:07 사울이... 0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0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은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은 다 살려두고 별 가치 없는 그것들만 진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이런 행동을 보신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따라서 13절에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행동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때 생겨난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 신접한 자에게 묻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신접한 자. 점을 치기 위하여 죽은 자의 영(靈)이나 악귀(惡鬼)를 불러내거나 부림으로서 사후 세계와 교통하는(삼상 28:03; 왕하 23:24) 일명 영매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탄의 뜻이나 터무니없는 낭설을 퍼뜨려 이스라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에 성경은 이들의 추종을 엄히 금합니다.
레 20: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사울이 비록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신접한 자를 만나러 갔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제 갔다는 말입니까? 또한 신접한 자를 만나러 갔다면 국가가 상당한 위기감이 있었다는 말인데 왜 이런 일을 하였는지를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삼상 28:0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낸 종교의 숙정(肅正) 행위는 그의 집권 초기에 이뤄졌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같이 볼 수 있는 이유는 ①사울은 왕위에 오르는 예식이 행해질 때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좇을 것을 명령받았으며(삼상 12:14),
②무당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은 지도자에게 강력히 요구되는 하나님의 계명(출 22:18)으로서 사울은 집권 초기 때 율법 준수에 대한 열정으로 이러한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국부(國父)라 할 수 있는 사무엘 선지자가 세상을 떠나자 블레셋이 이 틈을 노려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삼상 28:0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0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 길보아에 먼저 진을 쳤음에도 수 마일(mile) 거리에서 진 친 블레셋의 많은 군대로 인해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의 절망감을 보여주는(삼상 13:07) 표현으로써 사울은 과거 대(對) 블레셋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음에도(14:21~23, 31, 47; 17:53) 이번 길보아 전투를 맞아 두려움으로 크게 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엘라 골짜기 전투(삼상 17:01~03) 이후 가장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힘의 원천이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면 마음에 병이 오고 그로 인하여 각종 질환에 시달려서 마침내 심각한 치명상을 입습니다. 사람들은 바로 이때 곧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지금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흔히들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사(告祀)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툭하면 고사를 지낸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가령 영화를 찍을 때도 먼저 고사부터 지낸다고 합니다. 한때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 축구팀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이 제일 먼저 치른 것도 고사였다고 합니다.
외국 회사가 우리 국내로 들어오면서 제일 이해 못 하는 것이 돼지머리 놓고 절하는 고사문화라고 합니다. 이러니 누가 우리나라를 정상으로 보겠습니까? 이전에는 미신(迷信)이요 무속(巫俗)이라고 그런 일을 하는 무당들을 쳐다보지도 않던 우리 사회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을 하나의 예술인으로 또 민속 문화가로 무형문화재로 선정합니다. 그저 기가 막히는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헛된 우상 섬기는 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의지할 데 없어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한다면 이 일이야말로 참으로 헛된 일이 아닙니까? 귀신이 하는 일은 결국은 다 망하고 불행하게 하여 절망하게 합니다. 그 귀신들린 사람이 과연 귀신을 쫓아내겠습니까? 오히려 귀신을 부를 뿐입니다.
진정 사울에게 찾아온 위기는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이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삼상 28:0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은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삼상 15:26; 16:14)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궁여지책으로 여호와를 찾는 모습은 블레셋 군대로 인한 사울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삼상 15:10, 11; 23:09~12) 구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는 방편이지만 사울은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만날 만할 때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암시해 줍니다.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0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이 전혀 없자 이스라엘 백성의 금기 사항이요 자신이 오래전에 내어 쫓았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서는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명합니다.
삼상 28:0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0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 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하니.
여기 신접한 자란 엔돌에 있었던 접신녀(接神女)를 가리키는데 사울은 그녀에게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삼상 28:12~19). 이와 같은 미신의 발상으로 무당이나 접신녀를 찾아가는 것은 여호와께서 엄금하신 영적 간음의 행위입니다. 도저히 용납받지 못할 중죄입니다(레 19:31; 신 18:09~14).
김삼일 가족 여러분,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울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해야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불신앙의 모습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길입니다. 신앙인의 최대 무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 아닙니까? 이 믿음과 기도가 없으면 신앙인은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의 지금 모습이 어떠합니까? 블레셋과 한두 번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여 자신의 손으로 쫓아낸 신접한 여인을 다시 찾고 있으니 이런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불신앙인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이러할 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은 운명을 믿고 그 모든 것을 운에다 맡기기 때문에 운명이 어떠한지를 알기 원합니다만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보이는 어떤 현실을 보고도 조금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다고 하여 결코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헛것을 찾는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더욱 진노하시는 큰 죄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던가요?
생명과 길이 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서도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없다고 신접한 여인을 좇는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변을 보면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아직도 점쟁이를 찾아가 남편의 진급이나 자녀의 시험 합격 등을 알아보거나 혼인 궁합을 보거나 이사를 할 때 길일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헛된 것을 따르지 마십시오.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은 이제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들면서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자입니다. 사울이 찾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은 사울로부터의 생명 보장의 다짐을 받고 사무엘 소리를 흉내 내며 사울에게 아주 그럴듯한 말을 전합니다.
삼상 28: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이 내용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신접한 자가 진짜 사무엘을 불러올린 것처럼 그럴듯한 말을 합니다. 이것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신령한 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기만은 두 가지의 가능성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①만약 여인이 학습무당(學習巫堂)이라면 그 여인은 들리는 여러 가지 소문과 정황을 보고 판단하여 사무엘 흉내를 내어 이야기하였을 것입니다. ②만약 여인이 강신무당(降神巫堂)이라면 사무엘로 변장한 마귀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을 보면 진짜 사무엘의 말 같아도 이것은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무엘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 묻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삼상 28:06절에서 이미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①성심성의를 다해 하나님께 묻지 않았으며(Keil) ②응답의 전제 조건인 그의 죄에 상응하는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고 물었다(Starke)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서 묻다. 의 히브리 의미는 주의하여 찾는다는 뜻으로서(시 77:02; 119:10) 그가 비록 형식으로는 여호와의 뜻을 찾았을지라도 전심으로는 구하지 아니했음을 시사합니다. 적어도 전심으로 구했다는 말에는 금식과 눈물의 기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자중하며 근신하며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도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기도 없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신령한 불이 꺼지고, 메마른 땅, 갈라진 땅, 바짝 말라 버린 나무와 같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외면함, 말씀의 종과의 단절, 기도의 등한함 등 이런 것들이 그의 영성 부분을 메말라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같지 않은 채 사람의 방법으로만 계속 나아갔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묻지 않은 사울과는 달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던 사람 다윗은 그 결과가 어떠한지 한 번 볼까요? 대상 14장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 블레셋과 다시 싸우게 되는데 이미 전쟁의 경험이 많음에도 먼저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대상 04:10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 지라.
다윗의 진정한 신앙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같은 장소에서 다시 도전해 온 블레셋과의 전쟁을 놓고 과거에 골리앗을 이긴 경험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 승리를 쟁취하는데 대상 14:13 절을 보면 블레셋 군대가 또다시 침범해 오고 이때도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풀어갑니다.
대상 14:13 블레셋 사람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14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 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15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 지라.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사울의 가문은 무너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신앙과 기대를 저버리신 적이 없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들의 눈물 배인 기도를 멸시한 적이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사도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05:17) 하였으니 기도를 쉬는 것은 죄에 해당하며 이것이 곧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기도를 잃게 하며 나아가서 믿음과 삶의 원리를 잃게 상실하게 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사역 중에 기도하는 것을 제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하시면서 기도를 우선순위로 삼았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신앙인이 기도하는 일을 쉬는 죄를 짓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가장 큰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기도하십니까? 기도를 잃었습니까? 기도를 쉬고 있습니까? 그러면 기억하십시오. 위기가 내 곁에 다가와 있음을. 성경은 거울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를 잃어버린 사람 사울의 마지막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삶이 멈추었다면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도 모드로 들어갑시다. 성령님께 기도를 회복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마른 뼈에 생기를 부으신 성령님, 오순절 날 다락방에 임하셔서 뜨거움의 사람들로 변화시키셨던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새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에게 그 원인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약 04:02, 03).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한숨 쉬며 원망과 불평을 습관처럼 하면서도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자의 원인은 기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던 이스라엘이 그다음으로 쳐들어간 아이성 전투에서는 비참하게 패배하였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수 07:01~05).
문제가 크기 때문에 꼭 어려운 것이 아니고 문제가 작아서 쉬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개입해주셔야만 열리고 풀립니다. 이제부터 각오를 새롭게 하고 거룩한 일을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고백하십시오. 더 큰 역사를 고대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더 많은 시간을 무릎으로 사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의 저격병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거기에다 많은 부하를 잃고 세 아들을 잃고 마지막에는 그 자신마저 화살에 맞아 죽어 갑니다. 사울은 이제 자신이 더 살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는 수치를 모면하기 위해 그를 따르던 부하에게 자신을 찌를 것을 명하였습니다.
삼상 31:0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사울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자신의 칼에 몸을 얹어 자결하였는데 사울의 최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즉시 그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 사방에 보내고 시체는 성벽에 못 받았습니다(삼상 31:09).
얼마나 불행한 죽음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연 기념비 삼을 만한 왕이 왜 이와 같은 불행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사울의 패배가 과연 군사의 열세나 전략의 부재 때문일까요?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그 같은 계산이 나오겠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원인일 뿐 본질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외모가 준수해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절대 은혜에 의해서이며 사울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변하는 지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국가를 부흥시키는 기회로 만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 이후 그 권세를 가지고 다윗과 백성들을 괴롭히고 불순종하다가 나중에는 신접한 여인까지 찾아가는 죄를 범함으로 결국은 퇴출을 당하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인데 만일 내가 하나님을 버리면 나도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버림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사람이 살기도 잘해야겠지만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죽기도 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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