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사고 주된 원인이 졸음운전이라고 합니다. 너무 평안해서 오는 졸음입니다. 고속도로 운행해 본 운전자치고 졸음 안 만나본 사람 있습니까? 요즘은 고속도로 아니라 일반 도로도 역시 졸음운전 하기 쉽습니다.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 속도를 좀 올리다 보면 불과 한 2~3초 사이에 위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운전자의 졸음으로 사고 난 일을 자주 보고 듣습니다.
졸릴 때 자고 깨어야 할 때 깨는 것이 생리현상입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잔다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졸면 그 육체도 염려거리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예배 시간에 육신의 과로로 인해 졸음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일이 고되면 졸겠습니까? 매우 안쓰럽지요.
저도 설교를 안 하고 들을 때는 가끔 좁니다. 예배 중에 가끔 평안하게 조시는 분 가운데 졸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런 구절을 인용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 127:02). 예, 맞습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열심히 일하다 주일에 아버지 집에 오니 마음이 포근해서 잠이 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잠이 오면 혹 내가 사망의 잠을 자는 것은 아닌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저자 누가가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문에 걸터앉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죽은 사건을 소개합니다.
집회에 참여하여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민망한 사건을 뭐가 좋다고 기록으로 남깁니까? 이런 기록을 남긴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두고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잠, 사망의 잠을 자지 말아야 함을 교훈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믿음의 잠을 자면 죽음이 옵니다」로 정하고 강론하겠습니다.
1. 앉아서 안 될 곳에 앉으면 죽음이 옵니다. |
0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바울 선교팀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 드로아에서 잠시 머물 때입니다. 드로아는 소아시아의 서북부 에게해에 면한 지방으로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성령(聖靈)님의 부름을 받고 마케도니아 전도를 작정하였습니다.
바울이 드로아교회의 한 성도의 집에서 설교합니다. 그 설교가 좀 길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전해야 할 메시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배에 참석한 유두고, 3층 다락방 창문에 걸터앉아 설교를 듣던 청년 유두고가 그만 창밖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시험이 왔습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곳에 유두고의 부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집회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심히 걱정되는 시험입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유두고를 안고 살펴보니 살길이 있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에게 말합니다. 떠들지 마십시오. 살 수 있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유두고가 살아났습니다.
당시의 주일예배는 대부분 다락방에서 모였습니다. 가옥 구조는 1층이 주거 공간이고 그 위에 공간을 만들어 다용도로 사용하는 곳이 다락방입니다.
그런데 유두고는 윗다락에 앉았습니다. 윗다락이란 방 위의 또 하나의 방입니다. 그리 넓지는 않은 작은 공간인데 이곳에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작은 공간인 만큼 앉을 자리가 모자라 청년 유두고는 윗다락에 걸터앉았습니다.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돌아갈 법도 하나 이 청년은 돌아가지 않고 창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유두고가 앉은 자리는 잘못된 자리입니다. 매우 위험한 자리입니다. 본인은 안 떨어질 자신이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본인은 괜찮을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밤에 삼 층 누각에 자리를 잡은 것은 판단 잘못입니다.
앉아서는 안 될 자리에 앉았습니다. 있어서는 위험한 자리입니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의 삶이 시원하고 구미에 당기는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사망의 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 중심으로 보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은 신앙인으로 사는 삶의 자리를 바로 정하십시오. 현재 내가 앉은 자리가 믿음의 자리인가 아니면 믿음에서 이탈한 자리인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만일 복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면 빨리 그 자리를 나와야 합니다. 계속 망설이고 있으면 그 죽음의 현장에 유두고처럼 매몰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앉는 자리는 우월감과 자만의 자리 얕은꾀를 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혹 불의한 자리라고 판단되면 즉시 그 자리를 탈출합니다.
시 01:0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육신도 영혼도 깊이 졸면 죽음이 옵니다. |
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07절 말씀에 밤중까지 강론하였으니 철야 집회가 된 셈입니다. 철야 집회라면 몸과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고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두고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 졸고 있습니다. 귀한 말씀은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두고는 계속 졸고 있습니다. 이미 은혜의 등불, 마음의 등불, 영혼의 등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실 잡담하며 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반면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 내 마음의 태도에 잘못이 있는 줄로 여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귀는 성도가 말씀의 은혜 받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왜냐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야 신앙의 흥정을 하기 쉽고 다루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내가 은혜받는 것을 방해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혹 사탄이 시험에 해당하는 곳이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①말씀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②말씀에 대해 의심을 일으킵니다. ③하나님의 일에 불평스러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④교회를 등지게 만듭니다. ⑤졸도록 유도합니다.
성도가 언제 시험을 잘 만납니까? 말씀을 듣다가 걸려 넘어지는 때입니다. 설교를 듣다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내 마음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언제나 그날그날의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주기도문 가운데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마 06:13). 유두고가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졸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교자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렸다면 그 위험한 자리에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방해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①첫째는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나 아이들의 장난과 ②둘째는 잡된 생각으로서 몸은 교회에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말씀 듣는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와
③셋째는 졸음으로서 이것은 목사가 졸게 하는 때도 있습니다. 또는 많은 일로 인해 피곤해서 어쩌다 조는 때도 있습니다. 만일 항상 졸면 그것은 습관입니다.
믿음이 깊게 병들어 있는 증거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 중 설교만 시작하면 눈동자가 풀려서 조는 습관이 있는 분은 말씀의 맛과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목사의 설교 톤이 좀 높아지면 눈을 뜨고 목사와 옆 사람을 대강 흩어보고는 마치 안 존 것처럼 합니다. 이내 미소를 머금고는 또 졸음으로 전진합니다.
잠자는 믿음은 시험을 잘 만납니다. 낙심으로 이끌어갑니다. 충성도, 봉사도, 기도도, 감사도 다 잠들게 합니다. 신령한 기쁨을 상실하여 예배의 감각이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 은혜는 잊어버린 지 옛날입니다. 당연히 현실에 대한 불평만 가득합니다. 성도다운 가치를 잃어버리고 사탄의 종노릇을 합니다.
요나가 배 밑창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가(욘 01:05) 망했고, 삼손도 여자의 무릎에서 졸다가 망했으며(삿 16:17),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 역시 졸다가(막 14:37) 주님을 떠났습니다.
3. 믿음의 잠을 깨면 여러 사람에게 위로를 줍니다. |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유두고가 졸다 보니 자기가 위험한 자리에 있음을 잊었습니다. 그곳에서 떨어지면 죽음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졸음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졸음입니다. 영적 졸음은 내가 한 번 점령당하면 정신상태가 무너집니다. 믿음도 무너집니다. 그 후유증이 일파만파 번집니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다는(08) 말을 보십시오.
유두고가 떨어져 죽은 것은 어두워서가 아닙니다. 겉은 대단히 밝습니다. 유두고의 추락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부에 있습니다. 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속이 어둡습니다.
좋은 예배와 좋은 말씀, 찬양의 열정, 기도의 역사가 있어도 그 은혜를 내가 받지 못하면 추락합니다. 추락의 결과는 심각한 파문을 불러일으킵니다.
바울이 달려 내려가서 보니 죽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이 판단합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요하는 성도들을 진정시키는 말입니다.
문제를 수습하려면 일단 유두고가 살아나야 합니다. 유두고 한 사람의 졸음과 죽음은 이미 드로아교회의 공동체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유두고로 인한 파문은 먼저 말씀을 열심히 듣는 성도들의 은혜를 무너뜨렸습니다. 다음으로 설교자 말씀이 중단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유두고로 인하여 많은 사람에게 근심과 걱정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유두고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도 가운데 가끔 문제를 생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더 큰 문제로 만들어 평화를 깨뜨리고 교회를 혼란하게 합니다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반면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은 어떤 환란이나 어려움이 와도 기도하고 인내하며 주님만 의지합니다.
이 정도의 일은 아니라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 때로는 고민해야 할 문제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김삼일 가족은 고민거리를 만날 때 시원하게 해결하는 능력자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첫째 과거라는 책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책이며 어느 구석엔가 꽂혀 있습니다.
둘째 현재라는 책입니다. 지금 내가 온몸으로 쓰고 있는 책입니다. 셋째 미래라는 책입니다. 아직은 펴내지 않았기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예상 정도만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인생 책은 둘째 책인 현재에 믿음의 에너지를 쏟을 때 이루어집니다.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παρακαλέω). 바울 선교팀이 떠난 후 드로아교회의 성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유두고로 인해 더 큰 은혜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일이야말로 놀라운 간증(干證) 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간경화처럼 완전히 굳어진 심령이 말씀과 기도로 소생하면 가까이는 공동체의 일원과 주위의 사람과 나를 아는 많은 사람이 위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특종을 노리는 기자는 공직자나 국회의원 또는 사람의 주목을 받는 사람을 늘 쫓아다닙니다. 그러다 조는 모습을 보면 고성능 카메라로 담아 언론매체에 흘립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조는 것이 얼마나 흉한 것인 줄 새삼스레 알 수 있습니다.
유두고(Εὔτυχος) 이름 뜻이 무엇입니까? 운이 좋은 행운 이런 뜻입니다. 유두고가 졸음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잠에 빠진 결과는 죽음에까지 빠졌습니다.
그런 그가 살아남으로 거기 모인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만났지만, 유두고가 살아남으로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롬 08:258) 결과입니다. 이후 유두고는 예배 시간에 졸지 않았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면 졸음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 위험한 창문가에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십시오. 창문가라면 내려오십시오. 덕을 세우지 못하는 자리입니까? 속히 나오십시오.
구경꾼의 자리입니까? 즉시 자리를 바꾸십시오. 계속 위험한 자리입니까? 빨리 나오십시오. 더 있으면 위험합니다. 큰일 납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벧전 05:0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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