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9년 말씀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딤전 06:06~19)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09. 3. 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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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즐겨 나누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하루는 천사가 잠시 땅에 내려와서 길을 가다가 행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대단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질투심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천사는 두 사람과 함께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행을 하다가 서로의 갈 길이 다른 갈림길에 이르게 되었을 때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두 분과
동행했던 기념으로 제가 조그마한 성의를 표하고 싶으니 두 분 가운데서 아무나 한 분이 먼저 저에게 소원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으며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소원의 두 배를 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말았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내가 먼저 입을 열어서 소원을 말하면 저 사람이 나의 두 배를 받게 되니 내가 먼저 말을 해서는 안 돼지. 암 안 되고 말고 하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질투심 많은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내가 저 친구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가만히 서서 손해를 당하나? 절대로 먼저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두 사람이 다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다 입을 열지 않으니 천사가 말하기를, 그러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두 분 다 소원이 없는 줄 알고 이만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욕심 많은 사람이 질투심 많은 사람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질투심
많은 사람이 목을 놓으라고, 살려 달라고 소리쳤습니다만 욕심 많은 사람은 손에다 힘을 더 주면서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너 빨리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 그러자 그 질투심 많은 사람이 다급한 마음으로 얼른 소원을 말했습니다. 천사여, 나의 소원은 애꾸눈이 되는 겁니다. 그러자 질투심 많은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애꾸눈이 되었는데 반대로 욕심 많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애꾸눈의 두 배가 무엇이에요? 맹인이지요. 그래서 두 눈이 다 먼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과연 누구를 두고 하는 것 같습니까? 가만히 듣고 보니 내 소리이며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욕심 많은 내 모습들로 인해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자아를 치료하고자 자족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1.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0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
우위를 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지금 주어진 환경을 만족하게 여기면서 행복감에 젖어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자족하는 마음이란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얻어지는 마음으로서 이 마음을 가질 때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며 살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여러분도 이 말에 동의하시지요?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되는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0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0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음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물질적 요소가 영생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돈이 최고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이웃을 향한 구제의 삶을 살려고 해도 우선 물질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게 물질이 있어야만 사람구실을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안전한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두 눈 찔끔 감고 구두쇠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러는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까지는 교인의 의무까지도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 어떤 일이든지 추진하려면 물질이 반드시 필요하며 물질이 없으면 아예 아무 것도 되지를 않는 경우가 흔히 발생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세상의 삶을 위하여 행복의 근원이 되는 신령한 영적 부분을 제하고 재물만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되기 십상입니다. 행복이란 물질의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족할 수 있는 마음,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의 생명 되시는 주님을 심령에 모시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통하여 나의 손길을 펼 때 이루어집니다.

빌 0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이러한 신앙 고백을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무소유를 주장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바울의 신앙 고백은 어느 형편이든지 적응을 잘 하여 자족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라는 겁니다.
즉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만을 취하라는 의미보다는 하늘나라와 그의 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옳지 않습니까? 결국 돈을 사랑하는 것은 ①온갖 죄악의 길로 빠지는 첫 걸음이며 ②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③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물만을 얻고자 형제 사랑이나 이웃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편협 된 삶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자족하는 마음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0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하려 하는(βου λό μενοι).
의도하다, 갈망하다, 결정하다의 뜻으로 부자가 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의 상태를 말합니다.
시험과 올무. 시험은 유혹(temptation)
을 의미하며 올무는 덫, 함정으로서 부자가 되고자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필경 유혹을 받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둡게 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멸망에 빠지게.(βυθὶ ξουσιν),
배가 바다 깊이 침몰하는 것을 묘사한 말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종합할 때 아무래도 자족하는 마음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탐욕으로 인한 물질 때문입니다. 탐욕은 목이 갈할 때
짠물을 마시는 것과 같으며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 어떤 것으로도 자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병입니다.
행복이란 평화, 질서를
공유하는 가운데서 경험되는 것인데 비해 탐욕은 그러한 삶의 질서를 모두 파괴하여 삶의 의미와 기쁨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실제 돈은 우리가 땅위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매개체로서 사람답게 살고 품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수단인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돈을 버는 그 수단이 변하여 목적이 된다든지 탐욕으로 인하여 사랑할 정도가 되면 그 때에는 사람이 돈을 다스릴 단계를 지나 돈에 이끌려 다니는 돈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영적 삶의 방향과, 행복과, 만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채 항상 모자란 인생을 살게 될 것은 뻔한 일이겠지요?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지혜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①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려 힘쓰는 사람이고 ②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과 싸워 이길 있는 사람이며 ③가장 큰 부자는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네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空手來 空手去 인생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구약시대의 욥이 바로 그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욥 0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결코 자기의 것이 될 수 없는데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 삼고자 불철주야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는데도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을 바로 사용하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참된 가치관을 잘 헤아리며 삽시다. 비록 몸은 교회에 담고 있을지라도 그 삶의 태도나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다면 하나님을 떠나 죽은 자와 같은 무가치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죽음의 사냥꾼이 쳐 놓은 올무와 겉은 덫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심히 어려운 일 아닐까요?
좀 더 하며 욕심을 부린다면
일시적으론 수중에 재물이 좀 더 들어올지는 모르나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가고 사람들도 떠나가며 신앙도 떠나게 됨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가 기록한 여러
성경에서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았으며 자신도 결코 금욕주의자도 무소유를 부르짖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의 소유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두어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잘못된 삶의 형태일 뿐이라고 지적할 뿐입니다.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사랑함이(φιλαρ γυρια).
사랑한다는 말은 탐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돈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탐욕을 품게 될 때 그곳에서 악이 발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미리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항상 돈을 갈망하는 사람은 믿음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여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재물이란 적절하게 잘
활용하기만 하면 대단히 유익 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며 때로는 그 재물이 사람을 감옥에서 꺼내어 주기도 하고, 출세를 안겨 주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잘 나타낼 수도 있고요.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에서 물질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많으면 많을수록 유익(多多益善)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구약시대의 많은 인물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욥, 다윗, 솔로몬, 등이 재물을 아주 많이 소유하였고 물질의 풍요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도 건전한 방법으로
많이 소유하고 또 잘 관리할 수만 있다면 아주 유익한 것이며 특히 교회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재물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함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3. 자족하는 마음을 누리기 위해서는?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ε μεταδ του). 대가 없이 주다, 혹은 인색(吝嗇)하지 않게 주다는 뜻을 갖는 말로 본 절에서만 언급되는 단어입니다.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κοινωνι κου). 함께 나누다, 공감하다, 교제하다의 뜻을 갖는 이 말은 그리스도인인 부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까지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교제해야
함을 의도합니다(행 02:42~44).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일에 재물을 사용하되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나눔의 물질관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기독교는 소유하는 것
자체를 축복으로 보지 않고 소유한 것을 나누는 자를 진정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신앙의 자세야말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인간다운 삶의 길이며 사람이 마땅히 지켜 나가야할 신앙의 길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행하며 살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넉넉하게 따릅니다.

이해인 수녀(부산 성 베네딕트 수녀회)의 나눔에 대한 묵상 기도가 있어서 한 번 보았는데 무척 감명 깊었기에 그 중의 일부를 잠깐 소개합니다. 주님! 당신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건만 우리의 날들은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차게 바쁜지 시시로 당신 앞에 성찰하게 하소서.
진정 당신 안에서가 아니면
나눔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우리, 당신이 세상에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아낌없이 모든 것 내어주고도 한끝의 후회가 없는 너그럽고 순수한 마음을 주소서. 나눔은 언제나 자신을 주는 행위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미소, 나의 기쁨, 나의 재능, 나의 지식 그리고 나의 물건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의 일부를 주는 경건한 행위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미 주어진 것을 바르게 쓸 생각은 않은 채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탈하여 신앙을 등지고 나아가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이미 주어진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하늘나라에 우리의 소망을 두며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갑시다.
성도 여러분은 현재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더 기대를 갖고 보이는 재물보다 심령 속에 모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는 삶을 사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더 귀히 여기며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주님은 나를 지켜 주셔서 풍요로운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며 또한 행복은 가진 것에 족한 줄 아는 마음에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내가 만족하면서 감사할 때 그 마음속에 참된 행복과 평강이 찾아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복지수는 성적순이 아니고
결코 경제력과 비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주로 방글라데시, 인도, 그리고 네팔과 같은 나라들이 행복지수가 더 높되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마약중독자, 그리고 자살자가 많다고 하는데 결국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이 사람을 타락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컴퓨터를 보면 필요 없는
파일들을 버리는 휴지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그 휴지통을 비우지 않으면 컴퓨터의 일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것 여러분 잘 아시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삶의 발걸음을 자꾸 지체하게 만드는 것들을 과감히 청산해야 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만 인생 승리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욕심과 질투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이기심 때문에 얼마나 영적으로 병들어 왔고 얼마나 영적으로는 소경과도 같은 삶을 살았습니까? 또한 얼마나 우리 마음이 아팠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