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기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전도사님이 성령론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는데 머리에 통 들어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덮어두고 밤새도록 산에 올라가 밤샘기도를 하면서 성령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모든 문제를 잘 풀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 본 순간 자기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자 답을 적기를, 성령님은 모든 정답을 알고 계십니다. 이 답안지를 본 교수님이 어떻게 점수를 줘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 이렇게 점수를 매겼습니다. 성령님 100점, 학생은 0점. 예, 이 세상의 법칙은 노력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공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엔 자연법칙들 중 심고 거둠의 법칙이 있습니다.
전 03:0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0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심어야 거둘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심어야 거두게 됩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이 맺힐 만한 씨앗을 심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복을 기대하면서도 복의 씨앗을 심는 일에는 등한히 합니다. 씨앗을 심지 않고 어떻게 열매를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성도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계획들을 준비하셨으며, 어떤 이상을 품고 있습니까? 또 어떤 복을 기대하십니까?
시 126:0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0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0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김삼일 가족 여러분, 성경에서 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 인물 한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를 꼽겠으며, 가장 불행하게 일생을 마친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며 사울 왕은 불행의 원조가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결과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들 두 사람에 있어서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의 차이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유무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였고(창 22:01~10), 사울 왕은 아말렉 군대를 진멸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각을 따라 일을 처리하다 결국은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 15:17~23).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애굽의 우상들을 섬긴 일입니다. 순종의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의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을 잊지 않고 복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라 하실 때 그 순종이라는 단어를 읽고 묵상하고 의미를 연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행하라고 주신 말씀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도 제자를 부르시는 과정에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을 때 베드로가 어떻게 화답하였습니까? 현실의 상황은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여건임에도 나의 생각을 온전히 접고 선생님의 그 말씀 앞에 순종해 보겠다고 고백하며 행동으로 옮깁니다.
눅 05:0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0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지라. 먼저 말씀 앞에 온전한 순종의 씨앗을 심기만 하면 내가 가는 길이 축복의 길, 형통한 길이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욕심과 세상의 정욕 물질 쾌락을 따라 살기보단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축복의 씨앗을 심기를 바랍니다.
왕상 02:0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0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령님의 감동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동시에 성령님의 감동을 입을 때로부터 복된 일은 열립니다. 기독교인과 세상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이 역사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없는 삶입니까?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는 삶입니까? 아무리 교회를 출입하고 또 성도의 무리 속에 있을지라도 불신자와 다름 없습니다.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다는 뜻은 자기의 삶을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님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생활을 의미합니다(롬 08:14).
인생은 파종과 수확의 법칙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것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심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썩어질 것을 위해 심으면 썩을 것을 거둡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면 참으로 권력이 무상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대통령들만 보아도 독재를 하다 하야도 하고, 암살도 당하고, 제대로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기도 하고, 임기를 마치고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검찰 수사를 받는 수모도 겪습니다. 한 마디로 심는 대로 거두는 셈입니다.
기독교인은 매일 성령님의 충만을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힘을 때 그 행적들이 복으로 전환 됩니다. 육체의 욕심을 잘 극복 할 수 있습니다(갈 05:16). 동시에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야만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생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혹 성도 여러분에게 힘이 있습니까? 물질이나, 권력이나, 사회의 지위가 있습니까? 그러면 그것으로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데 써십시오. 누가 그것을 주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 힘으로 그것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주님 나라를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07).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 자연의 원리는 일반세계 뿐만 아니라 영의 세계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서로 교제하고, 훈련을 받고, 섬기고 봉사하는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데 에너지를 심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여러 일을 할지라도 내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심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별반 복된 생활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선한 일에 나 자신이 심어져야 합니다. 생명 살리는 일은 반드시 성령님의 감동을 반드시 입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없이 하는 일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은 영생의 세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0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자연의 법칙은 씨를 뿌리면 거두는 때를 알 수 있지만 생명의 씨앗, 복음의 씨앗은 언제 열매를 거둘지 예측이 잘 안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 스스로 때를 정해놓고 안된다고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하다 왜 낙심합니까? 왜 선한 일을 하는 데 낙심이 됩니까? 선한 일에 방해꾼이 있기 때문이요, 신앙의 장애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른다는 말씀은 우리가 겪는 힘든 일이 끝날 날이 온다는 뜻입니다. 열매 맺을 날도 이어서 온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것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정일 뿐입니다. 그 과정을 잘 견디어낼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난 없이 영광이 없듯이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에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십니다. 고난의 포장지를 벗겨내야만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고난의 때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복을 누릴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포기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 아닙니까? 아직도 복된 현장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사랑의 수고를 하면, 밀고 나가면 반드시 복의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벼룩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한 초등학교에서 벼룩을 실험을 했습니다. 작은 바구니에 여러 마리의 벼룩을 놓고 투명유리 덮개로 바구니 위를 덮었습니다. 처음에는 벼룩들이 그 바구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펄쩍펄쩍 뜁니다. 수도 없이 뛰어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도 유리 덮개에 부딪쳐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다 얼마 후 바구니를 덮고 있는 유리 덮개를 치웠습니다. 그런데 벼룩들은 바구니를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뛰어보았지만 유리 덮개 이상으로 뛰어오를 수 없다고 생각한 벼룩들이 유리 덮개를 없애버렸는데도 높이 뛰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뛰어도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하다 어떤 장애물이나 힘든 일을 만날 때 그 선한 일을 포기해버리면 높이 뛰기를 스스로 포기한 벼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앙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불가능한 일을 위해서도 뛰어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주실 것을 믿고 밀고 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될 줄 믿고 나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선한 일에는 결코 포기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낙심해서 안 된다는 말입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지금 내가 하는 일 중에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선한 일이라면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열매 맺을 때까지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많이 심어야 많은 것을 거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심으셨습니까? 육체의 욕망을 위해서 씨앗을 뿌리면 결국 썩은 것을 거둘 것이기에 만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잘못된 씨앗을 뿌려왔다면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은행에다 심으면 은행으로부터 이자를 거두고, 사업에 심으면 사업으로부터 소득을 거두게 되듯이 하나님께 심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백배, 천 배로 거두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후 09:06….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지옥에는 여기저기에서 껄 껄 껄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홍포입고 생활하였던 부자(눅 16:16~28)라고 하는데, ①살아있을 때 나사로에게 잘 해 줄걸, ②살아있을 때 음부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걸. ③형제 다섯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믿고 지키라고 할 걸. 지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도 껄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천국에는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해서 좋은 상급을 받을걸. 오늘 이 예배에서도 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러한 설교를 진작 들었으면 좋았을걸.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인생 밭에 어떤 씨앗을 심기를 각오합니까? 오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말씀에 비전의 씨앗을 품으십시오. 그리하여 ①순종의 씨앗을 심고, ②맡겨진 복음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씨앗을 심고, ③물질의 씨앗을 잘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기를 축원합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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