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선교회의 창립자인(미국 일리노이주 툴론 1868.3.13.~1924.9.24.) 찰스 카우만(C.E.Cowman) 선교사가 미국 시카고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미술품이 전시된 상점 앞에 서서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넋을 잃고 쳐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서 카우만은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얘야, 저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그러자 그 소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예, 선생님, 저분은 저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세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인 병사들이고요. 울고 있는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카우만은 참으로 기특하다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소매를 잡아끕니다.
돌아보니 조금 전에 말을 했던 그 소년입니다. 그가 선생님, 제가 드릴 말씀이 더 있는데 깜박 잊었습니다. 그걸 알려 드리려고요. 그래 무엇인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 위에 더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살아 계셔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그 소년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는 구세주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복음의 진수를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절정은 부활입니다. 설교가 아무리 감동이라도 그 설교가 예수님을 십자가나 무덤 속에 그냥 놓아둔 설교라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빈 무덤의 종교라 합니다.
오늘은 2023년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만이 보유한 절기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살리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일반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명을 얻고 영생을 누리게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함께 은혜받을 말씀은 「내 믿음이 부활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입니다. 모두 함께 힘차게 아멘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우겨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20절을 전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 아담으로 왔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 예수님으로 옴을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을 나타냅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생산물 전부를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출 23:19, 레 02:12).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활의 길이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에 서서 아덴 사람들에게 예수님 부활을 전하였을 때 아덴 사람들은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행 17:22~34).
그 이유는 그들의 관념으로 보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과학만능주의와 합리주의 속에 사는 사람은 아덴 사람들과 같습니다. 불신앙으로 인해 과학으로 입증된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보증되는 일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가장 행복한 자가 누구입니까? 죽음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과 나인 성 과부의 독자가 살아난 사건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난 일을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와(요 11:43, 44) 나인 성 과부의 아들과(눅 07:14, 15)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마 09:18~19) 다시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이 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예수님이 온전한 부활을 성취하신 유일한 분이심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롬 0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튀르키예에서(Türkiye) 사역하는 선교사 한 분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행 중입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가야 할 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 하는데 마침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요.
그러자 선교사가 말합니다. 그렇지요.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찾아가야지, 죽어서 살아나지 못한 마호메트나 석가모니를 찾아가겠습니까?
2. 예수님 안에는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삶이란(ζωοποιέω 조오포이에오) 생명을 주다, 살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사망에 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라 하셨고(요 06:35),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셨고(요 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0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요 01:04~09). 이 빛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사람이 사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반면 생명의 주님을 알고 믿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생명의 길을 알고 믿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이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인간에게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이 되십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딤전 06:16). 중요한 것은 그 생명의 길을 내가 지금 믿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나흘 만에 살아나는 현장에서 예수님과 마르다가 대화하는 현장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이 사실을 믿느냐? 그러자 마르다가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요 11:25~27)이십니다.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답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의 반대쪽이 어디입니까? 세상입니다. 이를 세속주의라고 합니다. 세속주의에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세속주의는 죽음을 잠시 잊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라는 어둠의 세력은 무서운 힘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낚아채 간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세력은 진리로 포장하여 영혼을 낚아채 갑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이단 활동도 그들의 세계에서 가끔은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 형태의 길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 사람은 혼돈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단과 거짓된 가르침의 배후에는 사탄의 역사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마귀도 하나님을 모방하고 흉내 냅니다. 미혹하는 힘이 무척 셉니다. 놀라운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나므로 많은 사람이 넘어갑니다. 이것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반면 악한 자들이 행하는 기적은 구원과 상관없는 거짓을 믿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의 세상 목적을 위하여 끌어갑니다. 바울도 이런 일을 거짓 기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살후 02:0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3. 이제는 내 믿음도 뜨겁게 부활해야 합니다. |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사람은 세 가지의 원수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죄와 사탄과 사망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떤 지혜자도 세상 그 어떤 권세 있는 자도 다 죽었습니다.
남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죽음의 권세 앞에는 무기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망의 상징인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인류의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사망에서 해방된 줄 믿습니까? 그러면 사탄은 감히 성도의 영혼을 손대지 못합니다.
사탄을 이기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더 이상 마귀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롬 06:0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분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활동하는 마지막 때입니다(계 12:12).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를 유혹하여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때입니다(마 24:254).
사탄은 장차 무저갱(無低坑)에 가두어지며 그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이 시대를 마지막 때라고 합니다.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아는 시대입니다(계 12:12). 주님께서 오실 때가 임박하였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 믿음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한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부활의 소망 안에서 살기 때문에 아무도 함부로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세상 종말의 때에 세상을 한 시로 지배하던 사탄은 영원히 멸망할 곳으로 갑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사도 요한은 그곳을 무저갱이라고 안내합니다.
한번 떨어지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곳, 밑 닿는 데가 없이 깊다는 구렁텅이입니다. 생명의 세계와 영벌의 세계,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사탄을 최종 무저갱에 던져 넣는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성도들은 생명의 빛이 되신 예수님의 빛을 받고 그 빛을 비추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계 20: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이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옛말에 저승이 멀다더니 대문 앞이 저승일세.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마지막을 내다보고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합시다. 우리의 믿음이 부활하는 복된 날이 됩시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복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해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믿음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습니까?
올해의 표어처럼 하나님의 초청에 잘 응답하는 성도가 됩시다(사 55:01~05).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믿음으로 잘 감당합시다(막 16:15~18).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내 믿음이 먼저 부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힘이 솟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풀립니다.
죽어가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시다. 삶 속에 주님을 모시고 신령한 체험을 하는 날이 됩시다.
그렇지 않고 지식으로만 복음을 알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령한 기쁨도 솟아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글로바와 그의 친구가 엠마오로 낙향하는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한 말 기억하십니까? 심령이 믿음으로 뜨거워졌을 때 한 말입니다(눅 24:13~34).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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