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08년 말씀 40

⑨열 두 제자. 낙타의 무릎을 가진 야고보(눅 06:12~16)

9.9라는 별명과 10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에 있어서 9.9는 항상 10에 의해 무시당하면서 지냅니다. 사실 양자 간의 차이는 0.1이라는 아주 보잘것없는 수치입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평생을 지내도 극복하지 못하는 수치입니다. 그래서 9.9는 날마다 속상해하며 기가 죽어지내다 어느 날부터 10에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야, 10 너 이제 나한테 죽었다 하면서 말입니다. 큰소리치는 9.9가 아무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어서 그러는가 싶어 10이 물었습니다. 네가 나한테 큰소리치는 까닭이 뭐야 하니 9.9가 하는 말이 나 이제 점(.) 뺐다 하더랍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은 점뺀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좋은 별명은 만들어 가는 겁니다. 좋은 별명 ..

[맥추감사주일] 다윗왕의 감사를 본받읍시다(대상 29:10~19).

저는 목회하는 동안 특별히 감사하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조건을 지난 5월 중국 쓰촨성 대 지진 때 일어난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 저의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 8일째를(2008-05-19) 맞아 백일쯤 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한 부인의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두장옌(都江堰)시의 한 무너진 주택에서 20대 부인이 무릎과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웅크려 공간을 만들고 죽었습니다. 숨을 거둔 여자의 시신을 구조대가 발견하였습니다. 시신을 들어내자 놀랍게도 아기는 별 상처 없이 엄마가 온몸으로 만든 공간 아래서 젖꼭지를 물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무너진 건물에서도 다치지 않은 것은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흙이 흘러..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시 146:01~10)

영국 런던 케이 미술관에는 프레더릭 왓츠라는(F. Watts, 1817∼1904) 사람이 그린 소망이라는 유명한 명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인 오바마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둥근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한 소녀가 남루한 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 싸맨 것을 보면 맹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녀의 손에는 여섯 줄은 끊어지고 한 줄만 겨우 남은 낡은 하프 하나가 들려져 있습니다.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소녀는 남은 한 줄에 소망을 두고 하프를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줄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소녀의 뒤에는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별 하나가 희미하게 비취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망의 빛을 뜻하는 비침입니다. 미국의 남북..

믿음의 꿈을 품고 사십시오(히 11:01~02, 07~10).

우리가 살아가면서 외면하고 싶은 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도무지 적용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실패는 원치 않고 성공하는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면 성공보다는 실패한 흔적이 더 많음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왜 실패가 두렵습니까? 어떤 일들에 대해 실패할 때 그 일로 인해 잘못되면 실망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실망(失望)이란 장래의 꿈(vision)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꿈이 사라져 버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설사 실패를 계속했을지라도 희망만은 남아 있으면 그 삶은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볼 때 실패한 일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