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를 여는 첫 메시지가 사사들이 치리(治理)하던 때입니다. 사사(士師)란 이스라엘의 과도기 때 선지자직과 제사장직, 왕직을 겸한 지도자를 말합니다.
여호수아 사후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한 때(삿 03:09, B.C. 1367)로부터 사울이 왕으로 등극할 때(삼상 01:01 B. C, 1025)까지 340여 년 동안 12명의 사사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룻기는 이 기간에 룻이라는 한 이방 여자를 내 세웁니다.
01절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한 사람이 그의 가족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였다고 안내합니다. 얼마나 흉년을 나기가 힘들면 이사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하여 별로 실감하지 않습니다. 물질 면에서는 다소 풍족한 생활을 누리다 보니 흉년이 무엇인지 느낌이 잘 안 옵니다.
옛날 어렵게 살았던 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낸 그 속껍질과 풀뿌리를 식물로 삼던 분은 참혹한 흉년이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흉년이 오고 홍수가 나서 논이 쓸려나가도 시장에 가면 여전히 쌀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곡식이 넘쳐나고 음식쓰레기도 상상 이상으로 나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어떻습니까? 군살을 뺀다고 먹지 않아 배고픈 분이야 할 수 없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 아닙니까?
찐 살을 빼려고 수영장에 가고, 다이어트한다고 온갖 것을 사 먹습니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보면 먹을 것이 넉넉함에 감사합시다.
오늘 말씀은 이사 한 번 잘못해서 고통받는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면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가면 풀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은 「이제 떡집으로 돌아갑시다」 입니다.
1.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든 이유를 보겠습니다. |
삿 21:25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룻기 사건은 사사가 통치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룻기는 성경 배열에서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8번째 성경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과 룻기의 첫 절을 연결해서 읽어야 베들레헴에 왜 흉년이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생각과 판단력을 따라 행동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의 방법대로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 흉년을 만났습니다.
고대의 농사는 자연 요인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흉년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흉년은 대부분 하나님의 징벌과(레 26:19, 20) 연결됩니다.
룻기의 흉년은 이스라엘의 소산물을 약탈해 간 미디안 족속의 침략(삿 06:02~04)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 수 있을 만큼 신뢰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두셨고 사람은 학교와 법과 교도소를 운영합니다.
아무리 부강한 나라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하면 서서히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자기의 이권을 따라 정치를 펼쳐서 혼란을 가중하고 또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는 일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좀 조용하게 있다가 연말이 되면 늘 하는 버릇을 따라서 멀쩡한 보도와 길을 파헤쳐 놓습니다. 정해진 재정이니 일부러 소모하기 위해서 하는 짓입니다.
심지어는 중간에 잘라먹다 보니 말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부실시공 아니면 효과를 거들 수 없는 환경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국민 행복을 생각지 않고 각자 자기 이권만을 앞세워 정치하면 여러 형태의 흉년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 거두어들여 이런 식으로 낭비하면 안 되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뜻대로 정치를 펼쳐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만 국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민생안전이 올 것입니다.
아무리 부흥했던 교회라도 아무리 성장하는 교회라도 출석하는 성도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주장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라고 목소리를 계속 높이면 그때는 부흥이 식습니다. 이내 분열되는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2.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난 결과는 어떠합니까? |
0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베들레헴에 흉년이 옴으로 그 기근(飢饉)을 면하기 위해 이사를 한 가정의 세대 주 이름이 무엇입니까? 엘리멜렉입니다(02).
아내 이름은 나오미고 두 아들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여기서 베들레헴이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인명과 지명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이 배어 있습니다. 그 인명과 지명의 의미를 이해하면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도움이 됩니다.
מִבֵּית לֶחֶם(베들레헴). מִבֵּית(베이트, 집)과 ֶלֶ֣חֶם(레헴, 떡)이 합해진 떡집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땅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떡집, 먹을 것이 풍요로운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엘리멜렉은 떡집에 조금 어려움이 왔다고 그만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엘리멜렉(אֱלִימֶ֫לֶך) 이름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다. 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그 부모의 믿음을 반영하는 이름으로 봐도 됩니다.
하나님을 일상에서 왕으로 삼고 살라는 뜻에서 지어 준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값도 하지 못하고 그만 고향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사 갔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모압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롯의 딸들을 통하여 나온 후손들이 사는 세속을 상징하는 곳입니다(창 19:36, 37). 이들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올 때 방해하였기 때문에 적대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모압은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하였습니다(신 23:03~06). 그런데 엘리멜렉이 왜 모압으로 이사하였습니까? 우선 흉년을 피해 보자는 생각일 것입니다.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가서는 안 될 곳으로 갔습니다.
모압으로 이사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애석하게도 엘리멜렉이 일찍 죽었습니다. 십 년 만에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까지 죽었습니다.
0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살려고 발버둥 친 가장과 그의 가계를 이어갈 남자들이 타향에서 10년 만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분명히 살려고 나갔는데 세대 주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까지 죽었으니 그야말로 애석한 일입니다.
베들레헴에 닥친 흉년을 면하겠다고 잠시 모압으로 갔습니다. 당연히 적당한 때에 돌아오기로 작정하고 나갔겠지요? 그러나 떡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남자 셋이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부모가 어떤 길을 가는가? 부모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부모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녀들이 영향을 받는 예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느냐? 국가와 민족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자녀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3. 남은 가족이 살길은 떡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
0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 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어려움을 만날 때 도피하는 일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생활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베들레헴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떡집을 떠난 이상 어찌해야 합니까? 지금이라도 탕자와 같은 심정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280). 라고 고백하며 돌아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조금은 알고 계시지요?
한 날은 야곱의 외동딸인, 디나가 시장 구경을 나갔다가 세겜 족 하몰의 아들에게 성폭행당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쪽에서 야곱에게 우리 자식들 서로 결혼시키자고 연락해 왔습니다.
그러자 이를 분하게 여긴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하여야만 서로 통혼할 수 있다고 속여서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사흘째인 절정의 고통에서 칼로 세겜의 남자들을 다 살육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따라 야곱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야곱은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 광야에서 꿈에 만난 벧엘의 하나님을 떠올리며 해결책을 찾습니다.
창 35:0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어려움을 만날수록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주위의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믿음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도 나오미처럼 잠시 모압과 같은 곳에 도피하는 중입니까? 아니면 그런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습니까?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생명의 음성을,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만 살 수 있는 길,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사 55:0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은혜가 떨어지면 사람의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넘치면 태산 같은 고난도 거뜬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주민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듣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난날을 뉘우칩니다. 마침내 그모스를 섬기는 모압을 떠나는 결단을 내립니다.
결단과 출발, 이 길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통로입니다. 떡집으로 돌아오는 길이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과감히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힘들다고 어렵다고 믿음의 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 그 길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불행의 길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믿음의 가족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중입니까? 아니면 신령한 은혜의 자리가 싫어 멀리멀리 계속 떠나가고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지금 베들레헴과 같은 신령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믿으시면 믿음대로 신령한 떡을 마음껏 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대로 영육 간의 강건한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혹 심령에 혹 흉년이 왔습니까? 여러분의 집에 혹 기근이 왔습니까? 살기 힘든 어려움이 왔습니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성도 여러분, 모든 일에는 끝이 좋아야 합니다. 세상일도 그러하거니와 신앙의 세계는 더욱 끝이 좋아야 합니다. 이 사실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모두 떡집을 떠나 생활하였습니까? 신령한 떡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신령한 양식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살아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육 간에 복을 받아 편안한 삶을 살 것으로 생각합니까? 때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도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신령하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편한 삶이 아니라 평안한 삶 말입니다. 돈으로 편함을 살 수는 있지만 평안은 살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신령한 떡집에 거하십시오.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자리로 옮겨 앉으려고 합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 길은 낭패와 실망의 길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의 판단대로 살려고 하면 낭패와 실망을 만나기 쉽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집에 거합니까?
그러면 그 떡집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불평 뚝, 원망 뚝 하면 신령한 은혜를 회복합니다. 신령한 떡집을 사모하십시오.
복을받는교회를 떠난다고요. 그때부터 불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떠나는 순간부터 파멸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불행과 절망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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