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추수감사주일] 나는 초막절 감사를 드립니다(레 23:33~44).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11. 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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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합중국(合衆國)으로 여러 민족이 각각의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학 사상 가운데 종교 다원주의(多元主義)가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사람마다 각각의 종교로 구원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힌두교 등 어떤 종교도 구원이 있습니다. 꼭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나 진리를 무시합니다. 이 사상은 무신론보다 더 무서운 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요 저주받을 복음입니다(01:09).

 

행 0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에 이른 천국 백성입니다. 교회에 잘 심기어 복음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와 같은 다른 복음에 현혹되지 않은 진리를 알고 있으니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은 복된 자리에 왔습니다. 이 일이 무엇보다 감사의 조건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더욱 감사의 조건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에 우리 믿음의 가족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2023년을 돌아보며 추수 감사주일을 지키는 자리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사모하기 위해 나는 초막절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말씀 듣는 중에 은혜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 초막절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나아가는 절기입니다.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 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모세가 장차 들어가게 될 가나안에서 생활 지침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아직 광야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매년 지켜야 할 삼 대 절기가 있습니다. 삼 대 절기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23, 34, 레위기 23장 등에 자세히 나옵니다.

삼 대 절기에 대한 규례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절기를 지키는 행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행사를 통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서 모세가 반복하여 전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로부터 칠 주간 지난 후에 맞이하는 절기입니다. 나중에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에 의해 오순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 절기는 밀과 보리를 수확하기 때문에 맥추절(麥秋節)이라고 합니다. 또한 첫 열매를 거둔다고 해서 초실절이라 하며 유월절 이후 칠 주 만에 거둔다고 하여 칠칠절이라 합니다.

➌초막절은 715일부터 한 주간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풀로 집(草幕)을 짓고 잠시라도 그곳에 거합니다.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추억하기 위해서 입니다.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특별히 이 절기는 일 년간 수고하여 거둔 곡물을 저장한다고 해서 수장절(收藏節)이라고 합니다. 추수한 것을 창고에 들여놓는다는 뜻입니다.

이 삼 대 절기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은혜받은 대로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20세 이상 남자(23:17)는 모두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 절기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본주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23:14, 34:23).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복을 따라 믿음으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또 다른 감사의 거리로 이어짐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말에는 감사의 표현이 고마움입니다.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거워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나타난 감사는 의미가 다릅니다. 감사하다(תּוֹדָה 토다)는 뜻을 가진 동사는 대부분 희생 제사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며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찬양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 22:29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초막절 절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수확을 따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드리게 하십니다. 유월절, 맥추절과 더불어 자손 대대로 기쁨이 넘치는 명절로 지키라 하십니다. 초막절을 수장절이라 한 것은 단순히 창고에 저장한다는 뜻만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창고에 들여놓는 것을 모를까 싶어 저장하라고 하셨습니까? 그 저장된 곡식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2. 초막절은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이스라엘은 초막절을 맞아 하나님의 각종 복과 번영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취하여 초막을 짓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냅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돌아보며 추억에 젖습니다. 장차 들어가게 가나안의 꿈을 꾸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12:18, 16:11, 15)

 

16:14 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절기의 기쁨을 누렸으면 이제 그 즐거움을 사회로 옮겨와야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누려야 합니다. 즐거움을 공유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입니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특별한 직책을 받아 수고하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따로 생계를 위한 분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신령한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입니다. 당연히 사회는 그들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3대 약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즐거움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어떤 축제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이들과 함께해야(14:27~29) 합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시절을 잊지 말고 낮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동족은 내 가족이다. 라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통해 나눔을 명령하신 것이 단지 외롭고 힘든 사람을 돕는 구제만이 목적입니까? 물론 소외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이 구제가 현재 처지가 좀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불쌍함을 통해서 그들의 깊숙한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는 것이 구제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받는다면 누구에게로 가라는 말씀으로 들립니까?

정말 불행하고 취약한 곳에 머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것은 복음을 듣지 못해 영혼이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희망 없이 사는 사람이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입니다.

 

요 04:3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은 불붙는 마음입니다. 그들이 비록 마음을 열지 못하여 배척할지라도 그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마음을 품고 가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가야 합니다.

 

렘 20: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십시오. 인사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꼭 찾아서 감사와 인사를 전하십시오. 꼭 만나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영혼이 헐벗음을 당해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들입니다. 방황하는 복음을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은 자기의 유익과 상관이 없습니다. 거저 주는 데 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눈앞의 내 문제에만 집착하면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넓게 봅시다. 크게 봅시다. 멀리 봅시다. 그러면 이웃이 보입니다.

 

 

3. 초막절 감사와 이웃 사랑은 항상 실천해야 합니다.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 절기를 자손 대대로 지켜야 할 규례로 선포합니다. 규례(規例)란 지켜야 할 일정한 규칙과 정해진 관례를 말합니다.

과거 광야 생활 40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한 법입니다.

 

이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인 710일이 막 지난 후에 지키는 때로서 반성과 회개를 거친 후 기쁨의 자리에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 감사주일은 북아메리카 전통에서 유래합니다. 미국은 11월 넷째 목요일에 지키고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지키고 우리나라는 11월 셋째 주일에 지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초막절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바울이 전하는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자들입니다. 몰라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일을 하던 우리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허물로 인해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02:01~06).

초막절에 해당하는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왔음을 확인하는 절기입니다. 앞날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받기를 원하는 절기입니다.

 

슥 14:18 이집트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어울리지 않으면, 그들의 땅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은 이방 나라들에게 내리실 그 똑같은 재앙을 그들에게도 내리실 것이다(새번역).

 

하나님께서 초막절 예배를 드리러 오지 않는 자에게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선언하십니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복의 상징입니다.

비가 끊어지는 것은 복에서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복을 상징하는 비가 우리의 삶에 날마다 내려야 합니다. 영원히 내려야 합니다.

비가 끊어지지 않는 비결은 대대로 영원한 규례라는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난날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일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주실 은혜에 대한 감사를 앞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믿음의 씨앗을 뿌렸습니까? 어떻게 믿음으로 수확하셨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십니까?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는 믿음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가?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감사에 비례합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감사는 풍요로운 삶의 재료이며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초막절은 복을 받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감사해야 할 상황인데도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사의 방해 요소를 능히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방해 요소가 무엇입니까? 탐욕입니다(11:04). 받은 은혜에 대한 망각입니다.

과도한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음을 아십니까? 인간의 욕심은 무엇을 가지면 계속 더, , 더 원합니다. 통제하지 못하면 탐욕이 됩니다. 탐욕이 있는 한 인간은 만족이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감사를 생활화하고 감사하는 소리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왕입니다.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를 보면 감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를 했고 형통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심지어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감사했고 반역자 압살롬에게 쫓기면서도 감사했습니다. 그런 다윗은 하나님께서 더욱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시 0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원상 복구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죄의 길로 나갈 때는 이방 나라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여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돌아올 때는 상하고 터진 곳은 싸매어 치료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읍을 중건(重建)하게 하고 거기서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예수님께서 맞아 주십니다. 나아가 신령한 이스라엘인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아멘입니까?

이런 곳에 감사의 소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소리는 원망과 불평의 소리입니다. 우리 모두 원망 뚝 불평 뚝. 그리고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게 합시다.

 

불평을 생활화 한 사람은 감사할 일이 있어도 불평으로 마무리합니다. 반면 항상 감사하는 사람은 불평할 일을 만나도 감사로 마무리합니다. 불평은 자기를 늘 억울한 피해자로 만듭니다. 그런 마음 자세는 늘 불행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이런 악순환을 우리가 계속 품고 살아야 합니까? 오늘 감사주일을 맞아 생기가 있는 감사의 마음 자세를 가집시다.

그러면 행복한 인생으로 바뀝니다. 이것 하나 기억하십시오.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자는 큰 것에도 감사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과 감사의 본을 보이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