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한국 침례회 소속 이윤호 목사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 1999년 베다니 출판사」라는 책을 시중에 내어놓았습니다. 가계(家系)에 흐르는 저주란 예수님을 믿어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저주가 가계(핏줄)를 통해 흐른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요약하면 현재의 질병이나 잘 풀리지 않는 어떤 일의 유전자가 가계를 통해 흐른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나 조상들 죄까지 회개하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조상과 후손 사이에 연대성이 매우 강한 사회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주장은 일시적으로 상당한 호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계 저주론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가계 저주론을 주장한 이윤호 목사는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본인도 가계 저주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결국 예장 합신 교단지(기독교개혁신보, 2013년 8월 29일 자)에 자기주장을 철회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예장통합과 합신은 2013년 9월 11일 총회 결의를 거쳐 이단 규정을 해제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믿음을 떠나면 그런 복은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의 가문은 화(禍)가 삼사 대까지 이릅니다(출 20:05~06). 성경에는 자자손손 내려가는 믿음의 가문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곳에도 가계 저주론을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자식에게 미치는 부모님이 지은 죄의 영향력이 심각함을 가르칠 뿐입니다.
잘 되는 사람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도 잘 되는 가정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가정은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울의 가정은 안 되는 가정이고 다윗의 가정은 잘 되는 가정입니다. 결과는 자기 몫이지 하나님 탓도 아니고 남 탓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앞세우고 나아가는 신실한 가문에는 많은 복을 주십니다. 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나 그 가문에는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여러 정황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따라서 말씀 제목을 「강하여 가는 집 약하여 가는 집」으로 정했습니다.
1. 사울의 가문과 다윗의 가문을 비교하겠습니다. |
0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울(שָׁאוּל)은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입니다. 기원전 11세기 후반 이스라엘과 유다가 흩어져 살던 부족 사회에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세운 인물입니다.
그의 준수한 외모와 훤칠한 키로 인해 40세에 왕이 되기까지 인기가 높았습니다. 삼상 09장~11장을 보면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할 때 일입니다. 일부의 불량배는 너 같은 베냐민 지파의 작은놈이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며 면 전에서 조롱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조롱과 무시 앞에서 참아냈습니다.
삼상 10:27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이렇게 사울이 기분 좋게 왕도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왕가의 가문은 쇠하여 갔습니다. 가면 갈수록 그의 신앙 품성이 불신자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윗(דָּוִד)은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입니다. B.C. 1030년경~970년경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가에 등장하여 40년간 통치한 인물입니다.
다윗은 청소년기 시절을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이 적국인 블레셋과 대치할 때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면서 중앙정치에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사울 왕은 다윗을 신임하였고 음악 실력을 인정하여 연주도 가끔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여자들이 사울은 천 명을 죽였고 다윗은 만 명을 죽였다며 칭송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다윗의 10년간 도망자 생활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01절을 보십시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오랫동안 전쟁하였다고 나옵니다. 양가의 가문이 계속 불편하게 지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서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사무엘 선지자라고도 하고 또 익명의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기록 목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울 왕가의 몰락과 다윗 왕가의 정착 및 중흥 과정이고 둘째는 메시아 왕국을 대망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무엘하의 저자는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즉 두 가문 사이를 전쟁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두 집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전쟁이라고 하였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싸움은 이기고 지는 일이고 전쟁은 죽이고 살리는 일입니다. 여기의 전쟁은 실제 전투는 아닙니다. 사울은 왕권을 이용하여 근 10년간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하였고 때로는 삼천 명 특공대를 조직하여 추격한 때도 있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몸을 던진 다윗에게 일부의 사람이 칭찬 좀 하자 그만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었습니다. 사위까지 되었는데도 죽이려 달려들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한쪽은 죽이기 위해 몰아붙이고 한쪽은 살기 위해 피해 다녔습니다. 이를 저자는 전쟁으로 보았습니다. 일방으로 쫓겨 다니는 전쟁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관계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자기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하기까지(삼하 04:05~12)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문을 놓고 다윗이 쫓겨 다닌 십여 년을 오랫동안이라고 말합니다.
2. 하나님 말씀 순종을 기준으로 가문이 강하고 약하고 합니다. |
0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0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오늘 본문 구조를 보시면 01절이 핵심 구절처럼 보이고 나머지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01절과 나머지 02~11절은 격이 안 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오늘 본문을 놓고 01절로 할 것인가 11절까지로 할 것인가를 많이 고심했습니다. 그러다 11절까지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01절을 빛나게 하는 부분이 바로 02~11절이기 때문입니다. 02~11절이 있으므로 01절이 더욱 빛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3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7년 반을 통치하는(삼하 05:05) 동안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02절부터 05절 사이에 다윗이 낳은 여섯 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암논, 둘째 길르압, 셋째 압살롬, 넷째 아도니야, 다섯째 스바댜, 여섯째 이드르암입니다.
반면 사울 왕가는 점점 손이 귀해져 갔습니다. 다윗 왕가는 때를 기다리는 사이에 헤브론에서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집이 점점 강하여 가는 모습입니다.
본서 저자가 다윗의 여섯 아들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하신 일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입니다.
물론 한 아내에게서 여러 아들을 낳은 것은 아닙니다. 왕정제도에서는 많은 아내를 거느렸지만 이런 일부다처제는 성경이 제시하는 결혼제도는 아닙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을 비교한 01절과 이어지는 다음 본문을 잘 보십시오. 이스보셋의 권세가 약하고 다윗의 권세가 강하는 현장을 보십시오.
이 현장이 사울의 가문과 다윗의 가문이 대립하는 전쟁입니다(01). 저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가문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 다윗과 이스보셋이 잠깐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 상황을 아십니까? 북 이스보셋 왕국이 남 다윗 왕국보다 월등하게 규모가 컸습니다.
그런데도 북 이스보셋 왕국은 군대장관 아브넬이 자기의 비리를 묻기 위해 이스보셋을 제거하고 다윗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역적모의입니다. 그러나 아브넬은 요압의 계략으로 헤브론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암살당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 왕도 절망에 빠집니다. 하루는 이스보셋이 무방비하게 낮잠을 잡니다. 이 현장을 레갑과 바아나 형제가 보고 그만 암살해버립니다(삼하 04:05~12). 그리고 수급을 다윗에게 가져다 바칩니다. 이스보셋 왕국은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이유는 사울 왕이 하나님 말씀에서 이탈함으로 인한 죄의 결과입니다(삼상 13:08~14, 15:10~31).
이 불신앙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하면 자녀도 역시 그 길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왕조에서 왕이 우상 섬기는 일을 하고 죽자 그 아들이 역시 본받아 행하다가 망한 사실을 소개합니다(왕상 16:15~34).
그 불신앙을 표현한 호칭이 북이스라엘 왕국 첫 왕 여로보암의 행적입니다(왕상 12:20).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여로보암의 집처럼(왕상 16:26, 31, 21:22, 왕하 13:02).
다윗의 집이 점점 강하게 된 것은 사울의 끈질긴 핍박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믿음으로 된 일을 소개하기 위해 사울과 다윗의 이름을 대조시킵니다.
3. 가문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해야 합니다. |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 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다윗이 가문은 점점 좋아지고 사울의 가문은 점점 나빠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느냐? 함께 하지 않느냐입니다. 사무엘상 16:14, 23, 18:10, 19:09 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날 때마다 악령이 내렸습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큰 불신앙 사건을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소멸하는 곳에는 반드시 악령이 역사합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런 사실을 확인합니다.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의 가문이 점점 강해 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울의 가문이 점점 약해 가는 이유는 악령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는 사람과 악령이 지배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문이 영원히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도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여야 합니다. 다윗의 여러 고백 가운데 중요한 고백 하나를 보겠습니다.
시 139:0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다윗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복된 가문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합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갔다는(01) 말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므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가문은 복에서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고도 후손이 없으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복에서 떠난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대를 이어 섬기는 복을 최고의 복으로 알았습니다.
이 복을 영원히 누리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믿음의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가문의 번성입니다(창 13:16. 26:24, 28:14).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대를 이어갈 자손이 없자 탄식한 일을 아십니까? 본래는 압살롬에게 세 아들과 한 딸이 있었으나 모두 조사(早死)하였습니다.
대를 이을 소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변칙의 방법으로 비석을 세워 자기 명예를 후대에 전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비석은 오히려 자기 탄식을 전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삼하 18: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대가 끊긴 가문 얼마나 초라합니까? 현재 우리의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는 일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의 대를 잘 이어가는 것 복 중의 복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은 복을 받은 가정입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이스라엘 사회가 아닙니다.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일이 꼭 육신의 혈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를 피붙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받는 자녀의 계보로 편입시키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기쁨입니다(마 18:13, 눅 15:07, 32).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오늘 말씀은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을 대조하여 어떻게 하면 가문이 점점 좋아지는가? 어떻게 하면 가문이 점점 나빠지는가를 안내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곗바늘을 수천 번을 뒤로 돌려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입니다. 지나간 시간이 후회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다가올 미래가 나의 가문에 복이 되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가정을 굳건하게 세우는 결단입니다. 천대 만대까지 복의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하나님 영으로 무장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불행한 가문이 된 사울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일을 고치고 하나님께로 울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욜 0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돌아가는 일은 내가 치러야 할 몫입니다. 희생을 각오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합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나빠지는 가문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에서 이탈한 가문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십시오. 믿음을 물려주십시오. 다음 세대에게 믿음으로 복을 받는 길을 잘 안내해 주십시오.
믿음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초라해집니다. 불행해집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그러면 사울과 같은 무너지는 가정이 되지 않습니다.
출 20: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은혜의 강단 > 2023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행 28:30~31). (2) | 2023.11.25 |
---|---|
[추수감사주일] 나는 초막절 감사를 드립니다(레 23:33~44). (2) | 2023.11.18 |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았더라(왕하 04:42~44). (1) | 2023.11.04 |
먹을 수 있는 국이 되었습니다(왕하 04:38~41). (1) | 2023.10.28 |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왕하 04:08~37) (1) | 2023.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