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모세 이후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가 엘리사(אֱלִישָׁע)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여러 선지 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길갈 신학교, 벧엘 신학교, 여리고 신학교 세 곳입니다. 이 가운데 길갈 신학교에는 백여 명의 신학생이 수학하고 있었습니다(43).
엘리사 선지자는 세 곳을 정기 순회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신학생이 죽은 사건(01~07) 이후 다시 길갈 신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그곳에 흉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흉년이 든 것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가끔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연평균 강우량도 매우 적습니다.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따라서 농사는 자주 멈추게 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인근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흉년과 기근(飢饉)이 든 일을 자주 소개합니다(창 26:01, 룻 01:01, 왕상 18:02). 엘리사의 스승 엘리야 선지자 때는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일이 있습니다(눅 04:25, 약 05:17).
엘리사가 길갈 신학교를 찾았을 때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아합과 그의 이방인 여자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이 설치던 때입니다. 하늘이 닫혀 비가 오지 않던 때입니다. 이때의 가뭄 기간이 무려 7년이나 됩니다(왕하 08:01).
이렇게 가뭄이 길게 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런 환경에서 엘리사가 길갈 신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일어난 한 사건을 전하겠습니다.
솥에 끓인 국이 먹을 수 없는 독 국이 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가루를 풀어서 국에 넣으므로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먹을 수 있는 국이 되었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당시의 신학생들 처지를 보겠습니다. |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다시 길갈에 왔다는 말을 보십시오. 길갈(גִּלגָּל)은 수레바퀴라는 뜻입니다. 요단으로부터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성입니다.
성경에 길갈이란 지명이 몇 곳 있습니다. 세겜 동남방 4km 지점의 길갈(왕하 02:01), 그리심산 동쪽 2㎞ 지점의 길갈(신 11:30),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경계에 있는 길갈(수 15:07), 갈릴리 지방 고임 왕의 성읍 길갈(수 12:23)입니다.
오늘 살펴보는 길갈은 여리고 동쪽의 길갈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옴으로써 과거 애굽에서 겪은 노예의 수치를 굴려 버렸음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수 05:09).
길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 진(陣)을 친 곳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과 사사 시대 및 초기 왕국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정치, 군사, 종교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이 길갈에 엘리사가 다시 왔습니다. 길갈 신학교 학생들을 격려하고 교육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왔다는 말은 01~07의 한 신학생이 죽은 후 그 부인이 사정이 딱해서 엘리사에게 나아와 문제를 해결한 후에 이내 왔다는 뜻입니다.
길갈 신학교에는 학생들이 합숙하며 지냈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왔으니 그 앞에 모여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비서인 게하시에게 큰 솥을 걸고 신학생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명합니다. 특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국을 끓이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엘리사가 전하는 말씀에 집중한 학생들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학생 수가 많으니 국의 양도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큰 솥에 끓이라고 하였습니다.
게하시가 큰 솥을 걸고 국 끓일 준비를 하는 사이에 한 사람이 들로 나갔습니다. 길갈 신학교에는 국에 넣을 마땅한 재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가뭄과 흉년이 이어지는 데다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의 극심한 박해 때문에 신학교에 후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국을 끓이려 해도 영양가 있는 재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에 넣고 끓일만한 채소가 있는가? 찾아보기 위해 들로 나갔습니다. 온 땅에 오랜 기간 흉년이 들었는데 어디에 가서 찾아본들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들을 헤매고 다녀도 마땅히 먹을 만한 채소가 없습니다. 힘들게 들로 찾아다니다 마침내 들포도 덩굴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들포도 덩굴의 열매인 이 들호박을 봅시다. 들호박은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열매라 어떤 열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70인(LXX) 역에 의하면 콜로신드(Colocynth)라 불리는 식물입니다.
이 콜로신드에는 둥글고 황갈색을 띤 오렌지 같은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들호박은 쓰디쓸 뿐만 아니라 먹으면 복통과 신경통을 일으킵니다.
먹지도 못할 열매인지조차 모르고 옷자락에 채워 왔습니까? 이런 것을 국 끓이는 솥에 썰어 넣을 정도가 신학교의 경제 여건입니다. 길갈 신학교가 처한 환경입니다.
2. 애써 끓인 국이 독이 되었습니다. |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먹을 것이 제대로 없는 현실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흉년이 오면 곡식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풀까지도 나지 않거나 말라 죽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흉년의 충격이 길갈 신학교에도 미쳤습니다. 산으로 들로 다녀도 먹을 것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들에서 채소 대신 들포도 덩굴 열매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가 식용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능히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이 귀하다 보니 주의력이 떨어졌습니다. 그저 괜찮을 것으로 여기고 국거리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다 보니 식용에 대한 판단력을 잃고 만 것 같습니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큰 솥에서 국을 끓인다는 뜻은 요리한다는 뜻입니다. 그 속에 여러 채소와 고기와 밥을 넣고 끓인 국밥 정도의 잡탕을 의미합니다.
마침내 정성껏 끓인 국을 퍼다 학생들에게 먹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학생들이 먹어보니 너무나 강한 쓴맛이 납니다.
그걸 먹은 학생들은 순간 솥에 독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학생들은 엄청나게 쓴맛 때문에 독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국을 마시면 사망의 독이 있어서 죽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사실 이 콜로신드를 다량으로 섭취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먹을 만큼 당시의 경제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국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음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수박을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하죠? 요즘 정치권에서 수박 논쟁하는 일이 개그처럼 재미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먹을 수 있는 양식과 먹을 수 없는 양식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음을 아시죠? 성경에 관한 진리 말씀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속을 짐작합니다. 겉이 좋으면 속도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몸이 건강해야 신령한 영적 생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좋은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생명을 해치는 독약이 가득 들어있는 이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런 것들을 잘 분별해야 하는 합니다.
일본의 스포츠용품 회사 가운데 아식스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 제품인 운동화와 트레이닝 옷 등 여러 제품이 우리의 주변에 있습니다.
제가 이 회사의 제품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표의 의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운동화에 부착한 아식스 상표 모양이 약간 길쭉하게 뻗은 #와 흡사합니다. 상표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아식스(ASICS. Anima Sana In Corpore Sano).
본 의미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까지 깃들어야 할 텐데 정도의 뜻입니다. 이탈리아어 근원인 라틴어(Latin 語) 격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공감이 가는 격언(格言)입니다.
3. 결국 먹을 수 있는 국이 되었습니다. |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 지니라.
힘들게 국을 끓였는데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것도 독 국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때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그 누구도 왜 이런 국을 끓였느냐며 원망하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이 슬픈 현장을 보고 독을 제거하기 위해 처방전을 발행하였습니다. 처방전 내용이 무엇입니까?
가루를 내게로 가져오라는 처방입니다. 여기 가루는 맷돌로 갈아서 평민들이 먹는 밀가루(קֶמַח 케마흐) 입니다(사 47:02). 사르밧 과부의 주식과 같은 가루입니다(왕하 17:12).
엘리사는 가져온 가루를 솥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국에 들어 있는 독이 제하여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가루는 솥의 독을 제거하는 일의 매개물이지 자체에 능력이 있는 신비한 가루가 아닙니다. 독을 약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매개물이지 해독제가 아닙니다.
이런 원리를 따라 사용된 물질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이후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여리고 성읍 주민들이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집니다(왕하 02:19).
그러자 엘리사가 말합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 그러자 성읍 주민들이 소금을 가져왔습니다. 엘리사가 즉시 물 근원으로 가서 소금을 가운데 던지며 말합니다.
왕하 0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가루를 솥에 뿌려서 먹을 수 있게 한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합니까? 여기에는 놀라운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밀가루는 떡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이 가루는 바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론만 알고 내게 영생 관계로 연결하지 않으면 그것은 곡창(穀倉) 문 앞에서 굶어 죽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말씀을 먹음으로 우리의 신령한 기갈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 하심은 예수님은 생명이신 동시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유한 일은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요 0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엘리사가 솥에 뿌린 밀가루의 신령한 가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주신 구속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매일 해독제 역할을 하는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확실한 해독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국솥과 같은 세상에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인 말씀의 기근을 해갈할 수 있습니다. 기근의 한 가운데 놓인 우리를 풍성히 먹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엘리사의 비서나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들로 가서 들호박을 따 온 사람 모두 이 들호박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오기 전에도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았을 것입니다. 들호박이 맺혀 있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따지 않았습니다. 따지 않은 이유는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들 판단력이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먹을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그만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면 독 국과 같은 것을 끓이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공동체에도 자칫 방심하면 독이 퍼질 수 있습니다.
입으로 마시는 독보다 더 무서운 독, 우리 마음에 퍼지는 독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무관심, 예배에 대한 무관심, 교회에 대한 무관심은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독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미움의 독, 불신의 독, 염려의 독이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을 약속하셨습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은혜의 강단 > 2023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하여 가는 집 약하여 가는 집(삼하 03:01~11) (1) | 2023.11.11 |
---|---|
여호와의 말씀대로 먹고 남았더라(왕하 04:42~44). (1) | 2023.11.04 |
엘리사를 섬기는 수넴 여자(왕하 04:08~37) (1) | 2023.10.21 |
우리도 빈 그릇을 빌려 채웁시다(왕하 04:01~07). (2) | 2023.10.14 |
우리는 하나 된 가족입니다(엡 04:01~06). (1) | 2023.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