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강단/2023년 말씀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복을 주십니다(창 39:01~06).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3. 8. 26. 08:10
728x90

웬만한 크기의 책을 쓰려면 약 2만 개의 단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하루 약 3만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한 말을 책으로 인쇄한다면 하루에 한 권 정도의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평생 쏟아낸 말을 모으면 하나의 도서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언어 장애인이 아닌 이상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냅니다. 그 말이 쌓이고 쌓임으로 우리의 앞날이 결정됩니다. 이왕 세상에 왔으니 좋은 말을 남기고 가야지요.

 

어떻게 하면 영향력 있는 말, 덕을 세울 수 있는 말, 복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은 그 사람의 쌓은 성품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12:34).

 

책을 삼킨 작가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라인 킹(Theodore Reinking)이라는 작가가 1646년 쓴 책에서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천 4세를 헐뜯은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자 국왕은 그 책을 삼키든가 사형당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라인 킹은 살기 위해서 책을 갈기갈기 찢어 수프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고 합니다. 문서로 남아 있으면 글이 되고 입에서 나오면 말이 됩니다.

 

말은 막강한 생산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내공을 잘 쌓아 관리해야 합니다. 믿음의 내공을 쌓은 만큼 언어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언어는 우리의 인격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이미 쏟아진 말은 꼬리표를 만듭니다. 나라는 꼬리표입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대신하는 상표입니다.

 

우리는 가끔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표현을 합니다. 누가 뭐래도 말은 자기의 표현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변명해서 안 됩니다. 언어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담고 있는 인격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격과 믿음 하나로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셉을 우리 삶에 비교하여 말씀 제목을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복을 주십니다.로 정했습니다.

 

 

1.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심을 주위에 보여줍니다.

 

0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01절 말씀은 요셉이 이스마엘 상인들에 의해 바로의 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 왔을 때의 일입니다(B.C.1898). 요셉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팔려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을 따라 애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15:12~15, 45:04~05).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섭리란 자연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원리와 법칙을 말합니다. 그래서 언약의 하나님을 뜻하는 여호와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에 잘 쓰임을 받는 것은 복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요셉은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과 무조건 함께하십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렸습니다. 그 결과가 애굽 보디발의 가정에 종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왔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귀염둥이 모습에서 종의 처지로 전락하여 낯선 타국으로 팔려 왔습니다. 요셉의 처지에서는 이런 생이별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잃어버린 절망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한 가지 잃지 않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잘 간직하고 있는 증거가 바로 요셉의 꿈 이야기입니다(37:05~09).

 

창 37:0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0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요셉이 다른 것은 잃어도 이 믿음 하나만 확실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살길을 열어줍니다. 이 믿음이 앞날의 모든 일을 열어갑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잘 되게 하는 복을 베푸십니다. 형통함을 베푸십니다.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번영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잠깐 잘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셉이 하는 일마다 눈에 띄도록 돋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애굽 사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요셉을 볼 때 어떤 신의 보살핌과 도우심이 있음을 충분히 감지하였습니다.

 

요셉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도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삶의 가치관이 분명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를 압니다. 요셉은 삶의 목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보디발의 가정에 팔려 온 종의 처지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들어 쓰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꿈이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형제들이 요셉을 놓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꿈꾸는 자(37:19).

 

, 요셉은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믿음의 꿈을 꾸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펼쳐나가십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막을 수 없습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에게 형통함을 주십니다.

 

0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범사에 형통(צָּלַח 찰레아흐)하게 하심을. 형통(亨通)이라는 말은 자기가 계획한 대로 정확한 때에 정확한 방법으로 별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03절에서 형통은 세상 사람이 말하는 형통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형통은 믿음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은 앞으로 나가다. 뛰어넘는다. 번영하다. 이런 의미입니다.

 

창세기 39장은 형통으로 시작해서 형통으로 끝납니다(02, 23). 우리가 창세기 39장을 주의 깊게 읽으면 중요한 한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말과 형통이라는 말이 계속 병행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임마누엘의 결과가 형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그때 믿음의 형통도 함께 진행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요셉은 세상 사람에게도 인정받았습니다.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았고 주위 요셉을 아는 사람에게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그때부터 형통한 삶이 열립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39장에서 말하는 형통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해 주시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 그 자체가 형통입니다. 이 형통으로 인해서 하는 일이 잘 풀립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울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와 병듦과 고통도 이겨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까?

 

요셉이 평안하게 지낼 때 함께하셨고 요셉이 인생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낼 때 꿈을 두 번이나 보여 주셨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 하며 밑바닥 생활할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03절을 잘 보십시오. 요셉의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보디발이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요셉은 사람이 몰라주어도 모든 일에 신실함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도 어떤 형편에 처하든 그 삶에서 소금과 빛 된 생활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벧전 0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요셉의 신분은 종입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요셉과 밀착해 계심 때문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형통한다고 고난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여 이겨낼 뿐입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뛰어넘을 때 형통이 옵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고난은 긴장과 더불어 인생의 묘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 15: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3.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십니다.

 

0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요셉은 이웃을 복되게 하는 복의 통로였습니다. 요셉 혼자만 형통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주인 되는 보디발까지도 복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는 때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때가 언제입니까?

요셉이 가정 총무가 되어 그가 맡은 모든 소유물을 주관한 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를 한 때부터 복을 내리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안사람 모두가 복을 받았습니다한 마디로 요셉은 복을 불러오는 통로입니다. 요셉이 뜻하지 않게 감옥에 들어간 일 기억나십니까? 그때도 하나님께서 복의 통로인 요셉을 위하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39:21~23).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하나님께서 감옥에 있는 요셉과 함께하시는 모습입니다. 요셉이 지난날 아버지 집에 있을 때도 돌아보셨고,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도 돌아보셨습니다. 이제 보디발의 아내 모함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돌아보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결과론을 놓고 볼 때 곧 임할 칠 년 풍년과 칠 년 흉년에도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일하시는 과정 중에 극적인 부분이 어느 부분입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 왕에게 요셉을 소개하는 현장입니다. 그 일로 인해 요셉이 애굽의 총리직에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마다 요셉을 돌아보심으로 가능하였습니다.

 

창 41: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복의 통로라면 그 원조가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그만 복의 통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복의 통로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의 통로를 회복하였습니다(05:12~19).

 

이제 우리는 가는 곳마다, 내가 머무는 곳마다 복의 통로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12:01~03). 요셉처럼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가운데 야곱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고달프게 지낼 때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야곱이 라반의 말을 받아 이렇게 답을 합니다.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는 장인어른의 소유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떼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하는 수고를 보시고 장인어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30:30).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웃에게 멀리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복의 통로가 됩시다.

오늘 말씀을 듣고 복의 통로 역할을 주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일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히브리인 요셉은 애굽이라는 비 히브리인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히브리인으로 사는 것은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핍박받으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믿음 줄 하나 붙잡고 우상의 나라 애굽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모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믿음의 습관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불신자 속에서 믿음을 증명하는 인증샷을 받았습니다. 복을 받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복의 통로 역할을 잘하였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선지자 다니엘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말로 들어왔다가 말로 나갑니다. 복된 말에 복의 통로가 열리고 잘 안될 것이라는 말에 복의 통로가 막힙니다.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의 통로가 막힙니다믿음의 언어를 잘 전해야 하고 믿음의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의 말속에 복의 통로가 보입니까? 여러분의 말속에 성공이 자라고 있느냐 말입니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말이 씨가 된다는 사실 아시지요복을 불러오는 일, 복을 떠나보내는 일 모두가 내 입에 달려 있습니다

금년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교회입니다(55:01~05). 또 예배를 마치며 고백하는 비전 선언문 네 가지를 알고 실천합니까?

 

이 가운데 세 번째 선언이 무엇입니까? 나는 복을받는교회 일꾼답게 불평과 원망을 일절 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나 때문에 주변이 복을 받는 일을 합시다. 불평 뚝 하며 삽시다. 요셉처럼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보여 주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