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한 길에 들어서서 꼭 같은 십자가 하나를 주셨습니다. 나는 이 길 끝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각자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메고 갑니다. 반면 두 번째 제자는 매우 힘들어하면서 뒤처져 겨우 앞의 제자를 따라갑니다.
십자가를 진 지 하루 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주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잘했다. 반면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아래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주님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제가 이제야 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요.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그러자 두 번째 제자가 묻습니다. 그러면 앞의 제자는 아주 쉽게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저는 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쩔쩔매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탓하지 마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한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가 늘어났다.
앞서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십자가를 옮길 수 있었지.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십자가와 같은 짐도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십시오. 그러면 감사하며 질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짐은 내게 너무 무겁다고 불평해 보십시오. 더욱 원망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억지로 지고 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로 정하고 강론하겠습니다.
1. 구레네 시몬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는 현재 아프리카 북부 지방 지중해 연안에 있는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라는 도시입니다. 시몬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트리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교통이 불편한 그 시절 구레네 시몬이 예루살렘까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왔으니 일단 그 믿음을 높이 사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유월절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러 온 사람으로 인해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축제 속에서 예루살렘에는 엄청난 배신과 음모와 모략이 진행되었습니다.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모략입니다.
사람들이 꾸미는 이 모략은 먼저 그를 따르던 제자가 배신합니다. 이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선동 받아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밤에 체포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결국 사형을 판결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형입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 반역을 저지른 정치범이나 그와 유사한 죄인을 처형할 때 적용하는 형입니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사형입니다.
십자가형은 매우 잔인한 방법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이런 형벌을 가하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형을 선고받으면 사형 당사자는 자기가 달려야 할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을 밝히며 재판 받는 가운데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직접 달릴 형틀을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다 탈진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가다가 쓰러지고 몇 걸음을 가다가 또 쓰러지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로마 병사가 길에 나와 구경하는 한 사람을 지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고 가던 십자가를 대신 지워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 이름은 구레네 출신 시몬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은 곱슬머리입니다. 체격이 건장한 흑인입니다.
유대인은 혈통을 따질 때 부계 중심의 혈통이 아닌 모계 중심의 혈통을 따집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유대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그 사람은 정통 유대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시몬으로 나옵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아프리카 사람이 쓰는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 사이에서 쓰이는 이름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레네에서 온 시몬은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은 이스라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2. 구레네 시몬은 원하지 않는 십자가를 졌습니다. |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십자가형을 집행할 때는 사형수가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지름길로 바로 가지 않습니다. 옷을 벗기고 태장으로 채찍질하여 최고의 고통을 가한 후 먼 길을 돌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혹 억울한 일로 사형당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증거나 증인이 나타나서 사형수를 변호해 줄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로마 제국에 반기를 들면 이런 일을 당한다는 일종의 경고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종의 전시효과를 노리는 셈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시가지를 먼저 돈 후 성 밖으로 나갑니다.
마침이라는 부사(副詞)의 의미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구레네 시몬 앞에서 쓰러졌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더 이상을 지고 갈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 병사에 의해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혹자는 십자가를 안 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로마 병사가 군사 목적으로 판단하고 지목하면 그 사람은 감당해야 합니다. 당시 식민지국 백성이 당하는 억울한 법이지만 오리까지는 지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법을 인용하셨습니다.
마 0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 사형장까지 갔습니다. 시몬은 그저 구경 나왔다가 로마 병사에게 징발당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세상 말로 하면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십자가는 우연한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시몬을 등장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시몬의 만남을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욥바로 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욘 01:0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된 극적 장면을 우리의 인생살이에 적용해 보면 어떨 것 같습니까? 죄를 지을 때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타락하고 유혹 받을 때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관점에서 볼 때 우연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져 갑니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불평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넓은 자세를 가집시다.
그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현장에서 유독 아프리카에서 온 시몬이 거기에 발탁되어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시몬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나도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까? |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억지로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억지로 무슨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이 하였습니까?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 것보다 억지로 공부도 했겠지요? 억지로 직장생활 했고, 부모님 말씀 들었고, 순종하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일하는 것보다 억지로 하면 같은 짐을 져도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더 힘들게 여겨집니다. 더 짜증스럽습니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고난 주간이 되면 특별히 가톨릭 국가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십자가를 지고 고행을 체험하는 행사를 합니다. 손에 못을 직접 박기도 합니다.
필리핀 칠레 브라질 같은 나라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 모형을 지고 가는 흉내도 냅니다. 예수님 역할을 기쁨으로 자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시몬은 왜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졌습니다.
내가 왜 이런 짐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내가 지고 가야 한다는 말인가 하며 마음으로는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병사의 창칼 앞에 어쩔 수 없이 지고 갔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증스러운 일이어서 원망과 불평으로 지고 갔을 수도 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억지로 했던 일들, 지겹고 고통스러웠던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기쁨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지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의식이 빈약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직장생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직장생활은 그만큼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기도하고 억지로 교회 와서 예배 드리고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성경공부하고 억지로 끌려다니다 보면 무척 피곤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더 겸손하게 다듬기 위해서 나를 더 많이 기도하기 위해서 나를 하나님 앞에 더 무릎 꿇도록 십자가를 주셨다고 받아들입시다. 이런 긍정의 믿음이 복을 받는 길목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모두가 기쁨으로 순종하며 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은 십자가를 피하려 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십자가 없는 면류관만 바라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릅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각오를 오늘 다짐합시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롬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에 남긴 말씀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속의 의미를 모르고 졌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 사건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20여 년 이상 세월이 흐른 후에 마가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동안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고 그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로 쓰임 받았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지내 놓고 보니 자기 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시몬의 아내를 바울은 믿음의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라 할 만큼 존경받는 분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짐과 같은 짐은 억지로라도 지면 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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