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는 세상을 사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무너지면 교회 생활에서 직분을 안 받는 것이 자기와 공동체를 위하여 좋습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는 사람은 그 삶의 기준이 분명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거나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벨론 포로 칠십 년 동안 믿음 줄 하나는 잘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세울 때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렘 29:10).
렘 25:11….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 29:10….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우리가 바벨론 칠십 년 포로 생활이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입니까?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과 포로에서 돌아오는 과정을 알아야 구약 시대 말기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 70년을 보겠습니다. 제1차 포로로 잡혀갈 때가 B.C. 605년입니다. 이후 B.C. 538년 고레스 왕이 등장하여 포로 귀환령을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서서히 예루살렘 귀환을 준비하여 1년 뒤인 B.C. 537년 마침내 제1차 포로 귀환이 진행되었습니다(스 01:05, 11, 03:01). 다음 해인 B.C. 536년 2월 돌아온 자들에 의해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스 03:01, 08). 이 기간을 바벨론 포로 칠십 년이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라 01장에 이어 포로 귀환을 통해서 이들이 행한 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헌신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들」로 정했습니다.
1. 세 차례 포로로 잡혀갔고 세 차례 돌아왔습니다. |
0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바벨론 제1차 포로]. B.C. 605년 여호야김 제3년(단 01:01 느부갓네살 원년)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여러 귀족이 끌려갔습니다(단 01:03).
이때 여호야김(제18대) 왕은 등극하여 처음 3년은 바벨론을 섬겼습니다. 이후 애굽과 동맹하여 반바벨론 정책을 펼치다(왕하 24:01) B.C. 602년 쇠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제2차 포로]. B.C. 597년 여호야긴(제19대)이 즉위하여 3개월 10일을 통치하고 느부갓네살 8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왕하 24:08~12).
이때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갔rh(왕하 24:12, 15). 에스겔 선지자와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의 조상도 포함되었습니다
[바벨론 제3차 포로]. B.C. 586년 시드기야(제20대) 제11년, 느부갓네살 19년 바벨론에 함락당하고 말았습니다. 30개월을 맞섰지만 결국 무너졌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기근이 심하여 자녀를 잡아먹을 정도의 참상이 빚어졌습니다(애 02:20, 사 09:20).
결국 4월 9일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기간 내내 이날을 금식과 애통의 날로 지켰습니다(슥 07:05, 08:19).
성이 함락될 때 시드기야는 밤에 도망하다가 갈대아 군사에게 잡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는 사슬에 결박되어 죽는 날까지 옥에서 지냈습니다(왕하 25:04~07, 렘 39:04~07, 52:07~11).
[바벨론 제1차 포로 귀환] 이스라엘 백성은 B.C.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렘 29:14).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은 B.C. 537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44:28, 45:01~03)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25:11~12, 29:10, 14)대로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勅令)를 발표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대하 36:22~23, 스 01:01~04). 이때부터 페르시아 각처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3차에 걸쳐 돌아오게 됩니다.
제1차 포로 귀환 지도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여호수아)입니다. 당시 총 49,697명이 귀환하였으며(스 02:64~66) 데리고 온 짐승은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낙타 435마리, 나귀 6,720마리 등 모두 8,136마리였습니다(스 02:66~67, 느 07:68~69).
[바벨론 제2차 포로 귀환]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79년 후인 B.C. 458년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제2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율법에 통달한 학자 겸 제사장입니다.
아닥사스다왕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귀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신분의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➊성전을 중심으로 한 언약 공동체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➋성전 제사의 회복에 필요한 물질을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➌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성전 제사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레위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스 08:15).
즉시 성전 봉사자 레위인 38명을 모집했고 레위 사람을 수종들 느디님 사람 중에 220명을 모집했습니다. 당시 약 1,775명이 귀환했으며 여자와 어린이는 통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스 08:21).
[바벨론 제3차 포로 귀환] 제3차 귀환은 B.C. 444년경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경호실장(관원장) 제3세대 유대인으로 짐작되는 느헤미야의 인솔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제3차 귀환 목적은 ➊성벽 재건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함과 ➋개혁과 부흥 운동을 통하여 성결함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페르시아의 술 관원이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성문은 불탔으며 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즉시 아닥사스다왕에게 성벽 중건을 위해 자기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왕은 그 청을 허락하고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여 성전 건축 자재까지 들려 돌아가게 했습니다.
제3차 귀환 때는 몇 명이 돌아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느헤미야만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돌아와서 12년을 일하다(느 02:05~08, 05:14) 돌아갔습니다. 이후 다시 유다로 돌아왔습니다(13:06).
2.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최고를 드립니다. |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69 힘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몇 족장은 다른 귀환자들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 건축 터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B.C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된 곳으로 무려 50여 년 세월이 지났어도 그 흔적은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성전을 세울 터전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땅(창 22:02, 대하 03:01)입니다. 이미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이곳에 다시 성전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여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스 01:0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0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돌아온 자들이 우선으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물을 드리는 일입니다. 드리되 기쁘게 드렸습니다. 자원해서 즐겁게 드렸습니다. 진정한 헌금의 가치입니다.
즐겁게 드리게 된 배경은 예물의 사용처가 성전 건축에 쓰이는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드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 드리는 일이야말로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만일 성전 건축이 아닌 왕궁을 건축하는 일이라면 과연 이만큼의 정성을 기울였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이기에 헌신하였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우리 믿음의 가족이 가져야 할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믿음으로만이 가능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든든한 동력이며 성령님의 불이 타오르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69 힘자라는 대로. 자기가 드릴 수 최대한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자세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유대인을 돕는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 헌금 원리와 같습니다(고후 08:03). 그들이 넉넉해서 많이 드렸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교회 성도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니 오직 사랑으로 넘치는 예물을 풍성하게 드렸습니다(고후 08:01~03).
하나님은 기쁨으로 드리는 예물을 기억하십니다. 성도의 자원하는 예물은 건축을 비롯한 교회의 각종 사업에 중요한 힘이 됩니다. 봉사하며 섬기는 일에는 자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물을 드린 이들이 무엇인가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드렸습니까?
성전을 세우는 일이기에 그저 감사함으로 드렸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광야 시대에 성소와 그 안의 모든 기물을 짓는 일에 예물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너도나도 자원하여 예물을 가지고 와서 마음껏 드렸습니다. 그 일을 주관하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모세에게 말합니다. 지금 예물이 너무 많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습니다. 그만 가지고 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모세가 명령을 내립니다. 그만 가지고 오시오(출 36:01~06).
출 36:06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3.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념되었습니다. |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모두 성전 봉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자들입니다. 성전 봉사자들 가운데 일부는 예루살렘을 본성으로 삼고 살았고 일부는 인근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02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잘 보십시오. 먼저 스룹바벨이 나옵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식의 이름으로 바벨론에서 태어났다. 라는 뜻입니다.
페르시아가 성전 건축을 위해 임명한 총독으로서 다윗의 후손 답게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호수아입니다. 모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을 인도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신명 31:01~08)가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 유다 왕국의 마지막 제사장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수아입니다(왕하 23:08). 제1차로 돌아온 사람 중에 핵심 인물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에서도 공직에 진출하여 자리를 잡고 안정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폐허가 된 옛날 시온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바벨론에서 성공된 삶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나라를 위한 애국입니까? 이 일도 중요했겠지만, 무너진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돌아오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매우 험난한 일입니다. 돌아오는 길이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 길을 헤쳐가면서 와야 했습니다. 힘들게 오는 길에 강도와 도둑이 우글거렸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표적 대상입니다. 생명을 걸고 와야 하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에도 많은 대적이 있었습니다.
제1차 포로 귀환자들 봅시다. 70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1세대들은 거의 죽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옛 조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자유를 선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 제2세대입니다.
제2세대가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1세대 같으면 예루살렘은 분명히 꿈에도 그리운 고향이지만 제2세대들은 예루살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부모님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성전 건축을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회복에 쓰임 받기 위해서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세상 목적이 아니라 신령한 목적을 위해서 돌아왔습니다.
02절에 기록된 지도자들 이름을 보면 모두 열한 명입니다. 평행본문 느 07:07에는 나하마니라는 이름이 추가되어 열두 명입니다. 제1차 포로 귀환자가 남녀 아이들까지 합해 총 49,697명입니다. 특별히 활동한 사람은 개인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지면상 일일이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러 돌아온 누구의 자손 몇 명 등에 들어 있습니다(스 08:20).
0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성전 건축을 위하여 헌신한 자들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 알려진 자도 있고 무명의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용기 있는 이들의 이름을 무명으로 처리했지만 하늘나라에는 그 이름이 생생히 빛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보여준 헌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성전 건축을 위해 최고의 예물을 기쁨으로 드린 일입니다. 그 명세(明細)를 보겠습니다.
금이 육만 천 다릭(דַּרכְּמוֹן 다르케몬). 다릭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고대 페르시아의 화폐 단위입니다. 금의 무게를 잴 때 통용된 단위로서 현재 영국 파운드로 환산하면(11대1) 671,000£로 한화(韓貨) 약 9억 천만 원 정도 됩니다.
은이 오천 마네(מָנֶה). 마네는 바벨론에서 주조된 은화로 현재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34대1) 170,000$입니다. 따라서 오천 마네는 한화 약 2억 2천만 원 정도 가치입니다.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 이것은 특별히 준비한 예물입니다(삼상 02:19). 일백 벌은 상당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오직 제사장을 위해 드린 예물입니다.
돌아온 자들이 드린 예물 가운데 제사장 옷을 백 벌이나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물질보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올리는 제사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쌓은 모든 것을 두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헌신하기 위해 왔습니다. 모든 삶을 성전을 위하여 드리면서도 아까워하지 않고 즐겁게 드렸습니다.
지금 복을받는교회는 당시 헌신자들처럼 오늘의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 가운데 헌신자를 부르십니다. 기쁨으로 재능을 드릴 일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재능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는 지금입니다. 내일 일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오늘 이 부르심에 자원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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