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어버이주일

2022, 05, 08. 어머니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룻 01:12~18).

복을받는 교회와 나 2022. 12. 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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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연안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줄도화돔(농어목 동갈돔과)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줄도화돔은 부화 방법이 아주 특이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알을 입에 담아 부화시킵니다. 그리고 알에서 부화 후에도 독립할 때까지 치어들을 입 안에 머금고 삽니다.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안전히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줄도화돔은 오랜 시간 수정란과 치어들에게 신선한 물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만 가끔 입을 뻐끔거립니다. 그래서 치어들이 성장하여 수컷의 입을 떠날 때쯤이면 전혀 먹이를 먹지 않은 수컷은 점점 기력을 잃어 대부분 죽고 맙니다. 

 

수컷이 혹 죽음의 위기를 만나면 입 안에 있는 알이나 치어를 내뱉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정란이나 치어를 입속에 넣고 보호합니다.

부성애가 매우 강한 물고기입니다. 이 줄도화돔 같은 사랑의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자기의 시간, 물질, 사랑, 감정 등 모든 것을 자녀 행복을 위해 쏟습니다. 자기의 이름 석 자도 뒤로하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자녀의 방패막이가 되어줍니다.

 

오늘은 일 년 중 5월 둘째 주일에 지키는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지금 효도해야 합니다.

오늘부터이지 내일부터가 아닙니다. 더러는 살아생전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않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장례식을 좀 거창하게 치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효도는 나중이 아닙니다. 내일도 아닙니다. 효도를 받을 수 없는 나중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방인 모압 여자 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오는 과정에서 시어머니를 향한 룻의 각오입니다. 어떤 각오입니까? 제목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을 「어머니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로 정했습니다.

 

 

 1. 룻은 시어머니의 길을 따르기로 작정합니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늘 말씀이 기록된 당시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간 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즉위하기 전까지 약 3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동안 열두 명의 사사가 그때마다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사사 옷니엘을 필두로 에훗, 삼갈, 드보라(女), 기드온, 삼손 등 이들은 군주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웠습니다.

 

엎치는데 겹치는 격으로 이스라엘 땅에 기근(飢饉)이 찾아왔습니다. 기근이란 흉년으로 인해 먹을 양식이 없는 절대 빈곤의 환경을 말합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과 룻기의 첫 절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왜 베들레헴에 흉년이 왔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에 군주제도가 도입되기 전입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던 때입니다(삿 21:25). 이어 룻기를 여는 첫 말씀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나옵니다(룻 01:01).

이 기근을 이기지 못한 베들레헴의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웃 나라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안정되면 속히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간 것 같습니다. 그 가정의 세대주(世帶主)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엘리멜렉입니다(02).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고 그 두 아들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여기서 베들레헴이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מִבֵּית לֶחֶם(베들레헴). מִבֵּית(베이트, 집)과 ֶלֶ֣חֶם(레헴, 떡)이 합해진 떡집이란 의미입니다. 엘리멜렉은 큰 흉년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웃 나라 모압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을 떠나서 간 모압에서 엘리멜렉의 가정이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안타깝게도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어 두 아들이 결혼은 하였으나 후손을 두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남은 가족은 엘리멜렉 부인 나오미와 모압에서 얻은 두 며느리입니다.

한 가정에 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세상 말로 치면 이런 기막힌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지금이라도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에게 권합니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겠다.

 

각각 새로운 남편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고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작별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에 두 며느리가 크게 울면서 말합니다. 우리도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극구 말리자 큰 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며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납니다. 반면 룻은 더욱 시어머니 곁에 달라붙었습니다(08~14).

 

 

 2.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로 작정합니다.

 

16 룻이 이르되….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시어머니를 향한 효부 룻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을 보십시오.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룻의 처지에서 보면 자기 고향에 남으면 지금보다는 더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습니다(09).

집안도 있을 것이고 결국 재혼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룻은 친정 부모와 친척 그리고 일찍부터 섬겨오던 신 그모스를(왕상 11:07) 떠나 육신의 차원에서 거의 희망이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결단합니다.

 

이는 단순한 효도나 애정을 초월한 믿음에서 나온 자세입니다(17). 동시에 나오미도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모압 출신 며느리에게 자기가 믿는 여호와 신앙을 잘 물려 주었습니다. 믿음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본을 보여주어야 형성됩니다(롬 10:14).

나오미는 비록 외국인 땅 모압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믿음 줄 하나만은 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룻도 시어머니를 섬기는 믿음의 효도 줄을 잘 붙들고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 효도 줄 입니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고백을 잘 보십시오. 단순히 시어머니에 대한 공경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가 성장한 모압은 이스라엘의 동쪽 요르단 지역 국가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고 이스라엘의 처지에서는 눈엣가시처럼 껄끄러운 나라입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지도 않는 나라입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모압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여 갈 때 자기들의 땅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은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사람과 통혼하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 하였습니다(신 23:03~04).

 

신 23:0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런 과거의 사건을 보면 모압 출신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모압에는 친정과 친척도 있을 것입니다. 고향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저버리고 베들레헴으로 오는 것은 희생의 길입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올 때, 주위 사람들이 룻을 어떤 태도로 보겠습니까?

외국서 온 여자라고 괄시할 것입니다. 인종 차별의 서러움이 능히 예상됩니다. 룻은 결혼은 실패했지만, 아직도 젊은 여자입니다.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죽는 날까지 시어머니와 생사고락을 같이하겠다는 믿음의 각오입니다.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요즘 며느리에게 이런 효도가 있습니까? 오히려 시어머니와 뜻이 안 맞는다고 헤어져 삽니다. 멀리멀리 떨어져 삽니다. 

아파트 이름도 정말 외우기 힘들고 찾아오기도 힘든 곳으로 가서 삽니다. 심지어는 당사자들도 아파트 이름을 잘 기억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룻이야말로 신실하게 효도하는 며느리입니다.

 

 

 3. 룻은 시어머니에게 진정과 믿음과 행동이 담긴 효도를 전합니다.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나오미는 룻에게 여러 차례 돌아가라고 권하였습니다(01:08~15). 시어머니 나오미의 강권함에 큰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 혼자만 편하겠다고 시어머니를 떠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설득합니다.

어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묻힐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7).

 

사람은 환경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룻은 달랐습니다. 아주 단단하게 각오합니다. 진정과 믿음과 행동으로 효도를 고백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더 이상 만류를 안 했습니다. 왜입니까? 룻의 그 마음가짐과 효도가 믿음 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룻의 이런 확고한 마음을 알고는 더 이상 돌아가라는 말을 그쳤습니다.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여기서 하나 점검하고 갑시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길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길입니까? 혹은 시어머니가 고향에 묻어 놓은 재산 가치가 될만한 것이 좀 있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따라갈 만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시어머니를 위해 각오해야 할 일이 있다면 노후를 책임지고 봉양하는 일입니다. 만일 룻이 자기의 노후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시어머니를 따라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강권할 때 동서 오르바처럼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 자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나오미입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이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같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 모압에서 살 때 섬기던 그모스 신과는 차원이 다른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알았습니다. 자기도 그 백성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았습니다. 이런 신령한 깨달음이 세상 것을 내려놓게 하였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느닷없이 포옹하면서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왠지 안겨드는 모습이 좀 서투르고 어색했지만 처음 아들한테 안겨보는 포옹인지라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기대하면서 집에 들어서니 아들이 전과 같이 본체만체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예야, 오늘은 왜 안기지 않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히! 하며 어제는 선생님이 엄마 아빠를 포옹해주라는 숙제를 내렸기 때문에 숙제를 한번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랑해야 한다고 하니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야 안 되겠습니까? 우리 좀 어색하겠지만 평소보다 좀 더 찐하게 사랑을 선물합시다. 19금보다 조금 낮은 18금 정도로 옆에 분과 앞뒤 분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봅시다.

진정성 있게 말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자녀는 이 시간은 말뿐이지만 앞으로 행할 일과 함께 부모님에게 감동되는 효도의 말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꾀꼬리 틀의 단장(斷腸)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어숙권이라는 식물학자가 꾀꼬리 어미와 새끼들을 칸을 막아 분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굶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꾀꼬리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꾀꼬리 어미는 밤낮으로 구슬프게 울기만 했습니다.

얼마쯤 지난 후에 어미와 새끼를 만나게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꾀꼬리는 곧바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미 꾀꼬리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18토막이나 나 있었습니다. 어미는 새끼들 때문에 애간장이 녹아 창자가 잘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사는 지혜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잘되면서 오래 사는 최고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복의 통로는 불효로 막히고 효도로 뚫린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여러분의 가문에 복의 통로가 막혀 있습니까? 열려 있습니까? 룻은 신실한 효도를 통해 메시아의 가문에 참여하는 복을 받았습니다(룻 04:13, 마 01:05). 

 

복을받는교회 가족 여러분, 복의 통로를 불효로 막고 있습니까? 아니면 효도로 뚫고 있습니까? 복의 통로가 막힌 가문은 어떤 가문입니까? 

복의 통로가 뚫린 가문은 어떤 가문입니까? 그 기준은 효도입니다. 여러분은 대대로 복을 받는 길 효도를 어떻게 해 오셨습니까? 지금은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